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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Mar 30. 2018

여수의 봄

 일주일 전 만해도 매스컴에서는 역대 최악의 꽃샘추위 운운할 정도의 한파가 있었으나, 언제 그런 적이 있었느냐는 듯싶을 정도로 날씨가 변했다. 바람이 불고 눈비가 오는 바람에 지난주에는 아침 운동을 이틀이나 걸렀다. 비가 그친 다음날에도 날씨는 쌀쌀했으나 걸으면 더워질 걸로 생각하고 가볍게 입고 금오도행 배에 올랐다.


 바닷바람을 너무 얕보았던가. 3, 4코스를 걸었는데 땀이 날 때까지는 추었다. 걷다가 만나 일행이 된 분과 4코스가 끝나는 마을의 구멍가게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중에도 땀이 식자 한기가 느껴졌다. 길에서 만난 분에게 들은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일흔 살이 되었다는 그분은 5년 전에 하던 사업을 접고 은퇴했는데, 은퇴한 사연으로 부인의 유방암을 들었다. 친구 부부와 골프를 치러 용평리조트에 숙박하고 돌아오는 길 차에서, 자신이 유방암 진단을 받고 내일 수술하러 입원한다는 말을 부인에게 처음 들었다. 왜 그걸 지금에야 말하느냐고 했더니 미리 말해서 달라지는 게 뭐가 있느냐고 담담히 말하는 부인은 너무 태연했다.


 그 길로 사업을 정리하고 부인을 위해 남은 인생을 살기로 했단다. 5년이 지난 지금은 암은 극복된 것 같다고 했다. 길에서 만난 사람은 길에서 헤어지는 게 예의다. 이름도 기억할 필요가 없으니 통성명을 하지도 않았다. 그분은 배를 타고 여수로 돌아갔고 나는 한 시간 이상을 더 걸었다.


 지난 주말을 지나면서 봄은 완전히 무르익었다. 어제부터는 새벽에도 기온이 10℃ 안팎으로 올라 얇은 옷을 입고 뛰는데도 땀을 뒤집어썼다. 곧 반팔과 반바지를 입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늦추위로 인해 지난 주말 예정된 이곳 진달래 축제도 일주일 연기했다. 산에는 진달래가 꽃봉오리를 아직 터뜨리지 않았다고 전한다.


 봄은 여인의 옷차림에 먼저 온다고 했던가. 오늘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는 반소매를 입은 여인들을 처음 보았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미세먼지로 시끄럽지만 은퇴한 사람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미세먼지가 있는 날에는 안 나가면 그뿐이다. 게다가 어제 JTBC 뉴스에 의하면 전국에서 미세먼지 영향이 가장 덜한 광역 자치지역이 전남이었으며 그다음이 제주라고 했다.


 그 옛날 연탄을 때던 시대에 일산화탄소와 아황산가스, 단칸방에 다섯 식구가 살던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방에서 피는 담배연기를 같이 마시고도 살아남은 생명력이었는데 그까짓 미세먼지쯤이야. 봄을 맞이하기 위해 오늘 아침 보일러를 온수전용으로 돌려놓았다. 그래도 실내는 지금 23℃를 넘는다. 두터운 옷이 거추장스럽다.


 새 계절을 맞이하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겨우내 쌓인 먼지를 털어내야겠다.


▼ 빛깔이 너무 고운 금오도의 하늘 어디에도 미세먼지는 없다.

▼ 백야도에서 바라본 고흥반도. 저 멀리 건설되는 다리가 보인다. 남해안의 다도해를 일직선으로 잇는 대공사다.

▼ 백야도를 육지와 이어주는 백야교.

▼ 금오도의 어느 빈 집에서

▼ 매화의 모습이 동양화를 닮았다.

▼ 금오도의 어촌 직포

▼ 아래는 비렁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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