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임신
지난주 딸로부터 카톡 사진을 받았다. 태아와 산모의 건강을 체크하러 병원에서 찍은 태아의 초음파 검사와 배가 나온 모습을 보이기 위해 옆으로 찍은 모습의 사진이었다. 네 달째로 딸아이의 몸매는 별로 변한 것은 없지만 태아의 옆모습은 또렷해서 동그란 얼굴에 눈 코 입의 윤곽이 보이는데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미혼인 아이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결혼하고 4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이를 갖지 못하는 딸이 못내 안쓰러웠었다. 처음에는 일부러 안 갖는 것 같았으나 2년 전 한국에 온 사위를 만나 물어보니 가지려고 하는데도 생기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니 마치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졌다. 비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장인의 자격지심이겠지만.
아비로서 무언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년에 미국의 아이들에게 가보기로 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그것이었다. 뉴저지에 살 때 소문으로 알게 된 용하다는 한의사가 생각났던 것이다. 60대 조선족 여의사로 어느 집 초등생 아이가 오줌을 지리는 문제를 고쳤다고 했다. 게다가 제주를 방문했던 어떤 분으로부터 한약을 먹은 후 부인이 임신했다는 경험담을 들었던 것이 가만있지 못하게 만들었다.
젊었을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현대 교육을 받은 아이가 거부할까 봐 걱정했으나 다행히 딸은 내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작년 4월 말 딸을 데리고 필라델피아까지 찾아가서 한약을 지었다. 한의사는 자신이 불임 전문이라며 반드시 임신하게 될 것이라며 큰소리쳤다. 엄마가 데려오는 경우는 있어도 아빠는 드물다는 말도 덧붙였다. 돌아오는 길에 사위는 내게 고맙다고 했다.
아빠의 성의를 생각해서인지 풀 냄새나는 약을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먹는 아이를 보고 6월에 돌아왔다. 하지만 기다리던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제주에서 여수로 이사하느라 정신없이 몇 달을 보냈다.
추석 무렵 전화했던 아이는 8월 말부터 병원에 다닌다고 했다. 아비에게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나 불임클리닉에 다니는 것으로 보였다. 6개월짜리 프로그램인데 일주일에 두 번 방문하느라 회사에서 일찍 빠져나오는 게 힘들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오, 하느님!’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게 주는 시련으로는 부족합니까? 왜, 아이들에게까지 고통을 주십니까?
지난 연말 어느 날이었다. 미국 시간 토요일 이른 아침에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는 전화를 끊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로 수다를 떨며, 평소와는 달리 어떻게 지내느냐며 이것저것 물었다. 마침 LA에서 친구 부부가 손녀와 함께 여수를 다녀간 직후라, 손주를 본 친구에 대해 말하며 자신의 아이보다도 손주가 그렇게 예쁘다는 말을 하고는 곧 후회했다. 혹 아이가 상처를 받을까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때 녀석은 임신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전화한 건데 내가 너무 기대할까 봐 조심스러웠던 것이리라.
“아빠, 다음 달이면 성별을 알 수 있데.”
“아들이면 어떻고 딸이면 어떠냐? 건강하면 되는 거야, 열심히 기도해라.”
“맞아, 크크크,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시부모님들은 안 그런가 봐. 은연중에 아들이었으면 하더라.”
“거 못된 양반들이네, 아들도 괜찮고 딸이면 더 좋은 거야, 그딴 거 신경 쓰지 말고 마음 편하게 가져야 해.”
예비 할아비는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손자든 손녀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산모도 태아도 건강하게만 지켜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