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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Apr 02. 2018

우측보행

한국에서 사는 스트레스

 어제 있었던 일이다.


 컴컴한 새벽에 조깅을 했으나 춘분을 지나면서 날이 길어졌을 뿐 아니라 늦게 일어난 탓에 뛰는 도중에 날이 훤해졌다. 반환점을 돌고 돌아오는 길은 우측이 바닷가로 1미터 남짓한 시멘트 담으로 바다와 도로를 구분해 놓았다. 얼마 가지 않아 맞은편에서 천천히 뛰어오는 분과 마주쳤다.


 우측통행이 원칙인지라 나는 내 쪽을 고수했는데 그분이 길을 비키지 않았으므로 설 수밖에 없었다. ‘우측통행하세요!’라고 말했으나 그분은 대뜸 ‘운동하는데 오른쪽 왼쪽이 어디 있어요?’하며 반발했다.


 그분과의 조우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비키지 않는 그분 때문에 항상 내가 비키는 편이었으나 언제부턴가 짜증이 났다. 다른 사람과도 그런 일이 있는 경우가 간혹 있었는데 서로 양보하는 바람에 멈칫대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측보행이라는 공중질서를 지킨다면 그런 일이 발생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사실 바닷가 길은 자전거도로를 겸비하고 있을 정도로 충분히 넓어서 비켜가도 상관없으나, 조깅을 끝내고 언덕을 올라가는 인도는 좁아서 두 사람이 마주치면 몸을 옆으로 세워야 할 만큼 좁다. 얼마 전에 그 길에서도 그분을 마주친 적이 있어서 큰소리로 ‘우측통행하세요!’라고 말했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이 양반이 전화기 스피커로 음악을 들어서 못 들을 것 같아서이었다.


 그때는 비켰던 이 양반이 어제는 꿈쩍도 안 하면서 억지를 피우는 것을 보고 순간 화가 치밀었다. ‘이 양반아 그런 억지는 집에서나 피우고 밖에서는 질서를 지키세요!’라고 소리쳤다. ‘나는 못 비키니까 맘대로 해요.’라는 말을 듣고는, ‘이 양반이 나이를 똥구멍으로 드셨나!’라고 말하며 그 사람과 바닷가 담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버렸다.


 물론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경우에 어긋나는 것을 보면 잘 참지를 못하는 것도 정상은 아니다. 그래서 이민도 떠났을 것이다.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는 살아남기 힘든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사람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이민뿐이었으니까.


 자신이 태어난 사회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고 이민에도 실패하고 돌아온 사람으로서 한국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런 일을 만날 때는 스트레스가 여전하다.


 어제 환한 탓에 처음으로 그분의 얼굴을 보았는데, 나보다는 최소한 몇 살은 많아 보였다. 그래서 그렇겠지만 뛰는 속도는 내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항상 두툼해 보이는 빨간색 재킷을 걸치고 걷는 것처럼 뛰는데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고 전화기 스피커를 최대로 키운 채로 듣는다. 사람이 거의 없는 새벽 거리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예절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그 양반을 눈여겨보았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살면서 가장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이런 일들이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무례함, 공중도덕과 질서를 무시하는 행위,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함부로 버리는 쓰레기, 그리고 그런 무질서에 엄격하지 못한 법집행은 정말 못마땅하다.


 하지만 나도 참 문제다. 그냥 비켜 지나가면 아무 일 없을 것을 꼭 따져야 직성이 풀리니 말이다. 불쑥불쑥 불거지는 성질을 어떻게 해야 다스릴까. 얼마나 더 살아야 철이 들까.


▼ 오늘 산에서 만난 벚꽃과 개나리


▼ 벚꽃이 화려하다.


▼ 오랜만에 보는 진달래는 시골처녀의 수줍음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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