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공연
미국에서 이민생활을 하면서 새삼 느꼈던 이민자들의 특징이 있다. 삼팔따라지 자식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 자신을 포함 제주에서 역이민자로 만나 사귄 분들은 물론이고, 지난주에 있었던 봄나들이에서 만난 분들 중에서도 몇 분이 함경도나 평안도 출신의 부모님이었다. 이번뿐이 아니었다.
지난 7년간 역이민 카페를 통해 만난 분들 중에는 이북 출신의 자식들이 특히 많았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가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차피 타의에 의해 정든 고향을 등지고 낯선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들이니, 타국으로 가는 이민도 고향이 붙잡는 분들보다는 훨씬 가벼웠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나도 그런 이들 가운데 한 명이다.
어렸을 때 시골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가진 아이들이 부러웠다. 삼팔따라지 자식들은 명절에 갈 곳이 별로 없다. 외가를 빼고 가장 가까운 친척은 아버지의 이모님이었고 다음으로는 아버지의 고종사촌 형님이 유일했다. 이민을 가려고 했을 때 고향이 없는 그만큼 결정이 쉬웠다.
‘평안남도 대동군 율리면 추빈리’가 월남하기 전 아버지가 살았던 고향마을로 평양에서 기차로 30분 걸렸다고 들었다. 해방 후 북한 당국에 의해 중화군으로 편입되었다가, 평양이 지속적으로 확장하면서 지금은 평양직할시에 편입된 곳이다. 대동군이라는 지명은 대동강에서 왔으며 율리면은 평양의 서쪽 인접지역이다.
이민생활 초창기에 다녔던 ‘뉴저지 엘리자베스 한인교회’에서 북한을 방문하는 노인들이 있는 것을 보고 시민권을 받으면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꼭 가보려고 했던 곳이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20년 전에 북한을 방문하려면 만 불 정도의 경비가 든다고 들었다. 북한을 다녀온 황 장로라는 분이 자신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동생들을 만난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이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게도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 배 다른 두 형과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던 1968년 무의식 중에 그렇게도 찾았던 이북의 부인이었다. - 현재 쓰고 있는 소설에서 아버지 이야기를 등장인물을 빌어 묘사했다. - 이런 삼팔따라지의 자식으로서 지난 1일 평양에서 있었던 남측 가수들의 공연 녹화방송을 보았다. 16년 전에도 비슷한 공연이 있었다고 하나 그때는 한국에는 관심도 없었던 이민생활 중이어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봄이 온다!’라는 공연을 보는 두 시간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곳에서 한국의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고, 아버지의 혈육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 공연을 보고 있었다. - 아버지에게는 세 분의 누님과 한 분의 여동생이 있었고 둘째 누님의 남편은 북한 보위부 평양 소속 간부였다고 들었으니 불가능한 상상은 아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끄트머리에 붙어있는 한반도는 분명 섬은 아니지만, 섬나라인 일본보다 훨씬 고립된 섬나라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하늘도 한국 항공기에 개방되어 있으나 북한의 하늘은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북쪽은 바다가 아니지만 바다보다도 훨씬 지독한 하늘까지 닿아있는 장벽이나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195킬로(121마일)밖에 안 되는 거리를 공연 팀을 실은 항공기는 서해로 빙 돌아갔다고 들었다.
중고등학생 때만 해도 한국, 독일, 베트남이 세계의 3대 분단국이라고 공부했다. 지금은 한국만 남았다. 공산주의의 원조이자 종주국으로 북한에 김일성 정권을 탄생시키고 한국전쟁을 조력한 소련도 해체되었다. 그런데도 북한의 김일성은 대를 이어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 무슨 가혹한 민족의 운명인가.
인민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할 뿐 아니라 생명, 자유, 행복추구권이라는 인간의 3대 기본권까지 박탈한 채 정권유지에만 급급한 그들은 도덕과 양심도 없는 인간 집단이란 말인가. 2000년 8월 15일 북한을 방문했던 박지원 의원에게 당시 김정일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장관 선생, 우리 공화국은 한국에 쌀을 구걸하는 거지면서도 한국 분들이 오시면 잘 사는 모습만 보여줍니다. 이번에 장관 선생은 우리 못 사는 곳 다 가보십시오.” (출처: 뉴스공장 4월 5일 방송분)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도 악마가 아니라 양심과 상식을 가진 인간이라는 뜻이다. 아니, 2천5백만이 넘는 나라의 국가원수라면 알고 있을 당연한 진실이다. 그들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하고 도발을 일삼는다고 해도, 조약이나 유엔의 권고 같은 국제규범을 어기고 약속을 수시로 번복한다고 해도 당근을 함께 사용해야지 채찍만으로 해결하기에는 전쟁이라는 위험이 너무 크지 않을까.
연평도를 포격하고, 천안함을 폭침하고, 연평해전을 도발했다고 해도 그것은 시대변화의 과도기 사건일 수 있다. 평화가 불리한 파당도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을 역사가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전쟁의 위협이 없으면 군대조직이 위태로워지고 범죄가 줄어들면 경찰 조직이 위축되는 법이다. 휴전선에서 총소리가 들려야 선거에 유리한 정당도 있지 않은가. 북한이라고 그런 조직이 없지 않을 것이고 그런다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그들이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지는 어리석음이 아닐까.
금강산 관광을 간 박왕자 씨가 북한 경비병에게 살해되었다고 금강산 관광을 중단한 것은 세월호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고 해경을 해체한 것과 다름없다. 자동차사고가 난다고 자동차 운행을 금지시킨다면 얼마나 멍청한 일일까. 아이까지도 총을 갖고 다니며 사람을 죽이는데도 총기 구입을 규제하지 않는 미국도 있지 않은가.
방귀가 잦으면 똥이 마려운 법이며, 아무리 원수 간이라도 왕래가 잦아지면 가까워지고 아무리 친해도 만나지 않으면 멀어지는 법이다. 그리고 어떤 사악한 사람이라도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이성과 양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봄이 왔으니(Spring has come) 열심히 노력해서 가을에는 풍성한 결실이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대해본다. 분단의 갈등과 전쟁의 위험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으니까!
라구요. (강산에가 부른 곡으로 함경도 출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노래라고 한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 건 내 아버지 레퍼토리
그중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고향 생각나실 때면 소주가 필요하다 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아버지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 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라고요.
눈보라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 건 우리 어무이 레퍼토리
그중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남은 인생 남았으면 얼마나 남았겠니 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어머니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 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라고요.
꼭 한 번만이라도 꼭 한 번만이라도 꼭 한 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라고요.
다시 만납시다. (공연 피날레로 모든 가수가 함께 부른 북한 노래)
백두에서 한라로 우리는 하나의 겨레
헤어져서 얼마냐, 눈물 또한 얼마였던가!
부모형제 애타게 서로 찾고 부르며
통일아 오너라, 불러 또한 몇 해였던가!
잘 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 가시라, 다시 만나요.
목메어 소리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