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축제들
미국에 살면서 볼거리로 July 4th 불꽃놀이와 추수감사절 퍼레이드가 있었다. 한여름에 벌어지는 독립기념일 불꽃놀이야 타운마다 하는 행사니까 옆집에 놀러 가듯, 집에서 저녁을 먹은 후 돗자리나 들고 집 근처 공원의 야구장 스탠드에 앉아 폭죽이 터지는 바로 밑에서 구경했다. 이민 초기의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순순히 따라나섰으나 한두 해가 지나자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대신 친구들과 맨해튼으로 퍼레이드를 구경하러 다녔다.
뉴욕 근처에 살았던 덕분에 맨해튼에서 거의 매주 토요일에 벌어지는 각국의 각종 퍼레이드를 일부러 혹은 우연히 볼 기회가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일부러 가서 보았던 것은 추석 무렵에 벌어지는 ‘Korean Parade’이었고, 지나가다 우연히 구경한 것에는 'Brazilian Parade'가 있었다. 참가한 인원이나 규모면에서는 브라질 퍼레이드가 압도적이어서 맨해튼 어디에서나 브라질 국기를 본 딴 노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벌이는 행사로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미국인들 눈에 보다 이국적인 것은 한국 퍼레이드 같았다. 3월의 '성 패트릭 데이'에 벌어지는 초록색 행렬의 'Irish Parade'도 있다.
한국에 돌아와 살면서 생소한 것들에, 지방자치제도 영향일 것이라고 추측되는, 흔한 축제가 있다. 제주에서도 1년 열두 달 축제가 있었다. ‘정월 대보름 들불축제’에서부터 ‘왕벚꽃축제’, ‘방어축제’ 등 이름을 다 기억해낼 수도 없을 만큼이었다. 몇 번 가보았으나 즐비한 것은 먹거리나 장사치들뿐이어서 평소보다 훨씬 비싼 음식을 맛없게 먹은 기억밖에 없다. 들불 축제는 볼 만했지만 불과 2~30분에 끝나는 장관을 구경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교통시간과 기다리는 고생이 만만치 않아서, 아무리 가진 것이 시간뿐이라고 하더라도 두 번 다시 가고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여수도 제주만큼은 아니지만 축제가 있다고 해서 엊그제 가보았다. ‘거북선축제’라는 명칭이었다. 집을 나서기 전에 이웃에게 전화를 했던 것은 ‘소주(?)’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오후 4시부터 행사 부근 도로를 통제한다고 해서 그때부터 시작하는 줄 알고 정확히 시간을 맞추었으나 착각이었다. 예정된 교통통제는 전혀 없었고 행사가 시작하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이웃과 행사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바닷가 도로를 따라 영업을 준비하는 포장마차와 행사 텐트를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걷다 보니 시원한 막걸리를 생각나게 만드는 갈증 때문에 가장 큰 텐트에 들어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은 항아리의 막걸리와 작은 해물파전이 일반 장소보다 곱절 이상이었다. 그래도 막걸리 맛은 시원해서 충분히 즐거웠다. 왼쪽 옆자리에는 70대로 보이는 노인이 홀로 국밥을 먹고 일어섰고, 오른쪽 옆자리의 젊은 두 여성은 구운 돼지고기에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좋은 궁합은 아닌 것 같았다. 텐트 옆을 지나는 인파들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로 젊은이들 위주로 돌아가는 세상 이치를 느꼈다. 길쭉한 하체가 드러난 옷을 입고 다니는 아베크족들이 늘씬해서 보기 좋았다. 하긴, 축제에 60대가 가당치나 하겠는가. 무언지 모를 행사가 시작되려는지 여기저기서 풍악소리와 스피커 소리가 소란스러워졌을 때 일어났다.
날이 어둑해지면서 시작된 퍼레이드는, 여수시민의 10%는 참가했을 거라고 생각될 정도로, 상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거북선 모형을 들고 수군 복장을 한 행렬과 농악놀이 패들이 끝없이 한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교통이 통제된 거리는 퍼레이드 규모에 비해 한산해서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고 지금까지 본 어느 축제보다도 편하게 접근이 가능했고 내용도 알찼다. 퍼레이드는 계속되었으나 우리는 남은 일정을 끝내기 위해 인파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소주’였다. 돼지고기 수육과 소주 한 잔으로 축제를 마쳤으니 60대 은퇴자로서 그보다 알찬 하루가 있을 수 없다.
▼ 리허설이 진행 중인 행사장 주 무대. 선거철이니 정치인들이 나와 설칠 게 뻔하다.
▼ 군인인지 경찰인지 모를 의장대가 행진하며 행사가 가까웠다는 것을 알렸다. 멀리 보이는 것은 여수의 엑스포 부근과 돌산도를 이어주는 거북선 대교다.
▼ 행사를 위해 교통이 통제되어 한산해진 중앙로가 퍼레이드를 기다리고 있다.
▼ 도로의 좌측으로만 행렬이 지나가서 우측은 텅 비었다.
▼ 퍼레이드는 한복 차림의 여인들로 시작되었다.
▼ 전라 좌수영 수군을 필두로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 '만덕동'이라는 팻말을 보니 여수의 각 동마다 행렬에 참가한 것으로 보였다.
▼ 경찰인지 군인인지는 모르겠지만 현대식 복장의 출현은 어색했다.
▼ '임진난 호국수군 위령탑'이라는 한자가 보인다. 호남의 수군이 없었다면 조선도 없었다고 말한다.
▼ 조선 육군의 행렬인가?
▼ 다문화 가정도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 거북선 축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뒤이어 거북선들이 나타났다.
▼ 날이 어두워지면서 흐릿하게 찍혔다.
▼ 화려한 거북선도.
▼ 춤추며 흥을 돋우는 풍물패.
▼ 각종 이름을 붙인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 브라질 카니발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장식물들도.
▼ 이순신 장군의 존영도.
▼ 또 다른 풍물패
▼ 아이들 악대
▼ 영화 '명량'을 보면 스님들도 이순신 장군의 해전에 참여했다.
▼ 퍼레이드에 참가한 진짜 승려들. 이달 22일이 '부처님 오신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