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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Jun 17. 2018

북미회담 독후감

어떤 이민자가 바라 본 북미회담

 2018년 6월 12일, 한민족 역사에 길이 기록될 하루였다.


 1945년 2월 4일부터 1주일간 크림반도에 있는 얄타에서 미국의 루스벨트, 소련의 스탈린, 영국의 처칠이 만나 막바지에 접어든 2차 세계대전의 군사 재편과 종전 이후 세계질서를 논의했고, 이 회담에서 독일 영토의 분할과 소련의 대 일본 참전 및 한반도 분할점령이 결정되었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점은 그들은 독일에 했던 것처럼 전쟁범죄국인 일본이 아닌 피해국인 한반도를 분할하기로 결정했을까.


 “이 회담은 비밀로 해둡시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맘대로 자기들의 운명을 재단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매우 불쾌해할 테니 말이오.”

 회담 후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이 했던 말이다.


 한민족의 비극을 만든 장본인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고 미역사상 전무후무하게 3선을 한 위대한 인물이지만, 우리 민족 입장에서는 최악이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인의 희생을 줄이고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소련의 대일본 참전을 허락했고, 그 결과로 소련군의 북한 진주를 용인함으로써 한국전쟁과 70년 넘게 이어지는 분단과 갈등을 초래한 근본 원인을 제공했다.


 그리고 73년 4개월이 지난 후 그 회담에 의해 탄생한 조선 인민공화국의 수뇌와 강대국의 힘으로 약소국의 운명을 제멋대로 재단했던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만났다. 일부 정치인이나 학자라는, 소위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CVID’가 어쩌니 저쩌니 떠들어도 두 사람이 만나 악수를 하고 평화에 대해 논의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7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돌이켜보면 자명하다.


 타고 갈 변변한 비행기조차 없어서 남의 나라에서 빌려준 항공기를 타고 간 김정은이 세계 최강국으로 국민소득이 천 배 가까이 되는 미국의 정상과 1대 1로 마주 앉아 회담을 하고 공동선언문에 동등한 자격으로 사인했다는 점에서, 김정은의 승리라느니 미국의 체면을 손상시켰다느니 의견이 분분하지만 부질없는 소리에 불과하다.


 누가 봐도 확실한 강자와 약자 사이에 평등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강자의 아량 때문이고 관용을 베푸는 측이 언제나 승리자이기 때문이다. 돈이 많다고 없는 사람을 무시하거나, 권력이 있다고 힘없는 사람을 내리누르거나, 남자라고 여성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행위에 대해서는 정의로운 척 반대하면서, 스탈린이나 루스벨트 대통령이 강대국이고 승전국이라고 해서 약소국의 운명을 함부로 결정한 갑질에 저항하지 않는 것은 위선적이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기준하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보다는 윈스턴 처칠 수상이 훨씬 인간적이고 정의로웠다. 물론 루스벨트는 세계의 평화라는 보다 큰 인류의 가치를 위해, 약소국을 희생시켜 소련에게 제물로 바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결과는 정 반대였다. 루스벨트의 결정으로 불과 5년 후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그로 인해 3년 동안 피아 4백만의 군인이 전쟁에 동원되었으며 3백만 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소련을 참전시킴으로써 줄일 수 있었던 인명손실과 앞당겨진 종전의 수십, 수백 배의 피해를 초래했다. 루스벨트가 얄타회담 두 달 후 사망했으니 망정이지, 그가 오래 살아서 한국전쟁의 진행을 지켜보았다면 어땠을지 자못 궁금하다.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가 루스벨트보다 위대한 대통령이라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는 측면에서 트럼프는 거의 최악이다. 동맹국을 무시한 독불장군 식의 행동으로 중동에서 화약 냄새를 피우고, 전임 대통령이 맺은 각종 협정을 폐기할 정도로 무모하다. 그가 살아온 인생에 근거해서 솔직히 평가하자면 북미회담이 열린 것도 트럼프의 가슴속에 깃든 평화에의 의지라기보다는 그의 머릿속의 존재하는 계산기 탓이 분명하다.


 러시아 스캔들과 동맹국들과의 마찰 등으로 추락하는 지지율을 만회하고 11월의 중간선거에 대비하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거래의 달인답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벤트를 하는 것일 뿐이고, 그의 계산대로 미국 내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으니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단지 트럼프의 계산이 한반도 주변 상황과 묘하게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한반도에 평화의 훈풍을 일으키고 있으니 이보다 더 다행스러운 일은 없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최고의 대통령으로 칭송받는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만들어진 한반도의 비극이, 계산적이고 자신의 이익밖에 모르는 최악의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개선되고 있으니 말이다.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촉매에는, 남북화해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진정성, 스위스에서 교육받은 김정은의 경제부흥의 의지, 노벨 평화상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트럼프의 열등감도 분명히 존재한다.


 또 있다. 50년 전에 배웠던 철의 장막도 걷히고, 죽의 장막도 사라졌지 않았나. 북한 주민들 손에 스마트폰이 들리고 장마당에서 시장 거래가 이루지는 현실에서 북한만 변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다.


 트럼프의 이번 이벤트를 보면서 과거 속의 두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오바마에 열등감을 가진 트럼프는 노무현 전임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인기를 시기했던 이명박 대통령을 기억나게 했고, 북미회담 이벤트는 최순실 사건이 드러나자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뜬금없이 개헌 의지를 드러냈던 박근혜 대통령이 연상되었다.


 어쩌면 트럼프는 대한민국 전임 두 대통령의 나쁜 점만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사익추구와 잔머리라는 점에서.


 그렇더라도 우리 민족에게는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정의란 따로 있는 게 아닌가 보다. 개인에게는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정의고, 나라와 민족에게 이로운 것이 정의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세상에는 이익만 있을 뿐 정의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적도 없고 변치 않는 우방도 없다는 게 역시 진리다.


 어쨌든 이번만큼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만세다.

 비록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 오늘 새벽 운동 중에 찍은 동녘 하늘. 한반도의 평화가 이처럼 솟아나길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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