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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Jun 19. 2018

6·13 지방선거 관전기

평범한 사람이 보는 6·13 지방선거 

 옛날 바둑을 한참 배울 때의 일이다. 대학 입학 시절 9급이었던 기력이 3학년 때 1급을 두기까지 실력이 늘었던 배경에 복기가 있었다. 학교 휴게실에서 두었든 기원에서 두었든, 진 바둑은 반드시 복기를 해서 어떤 수를 잘못 두었는지를 되돌아보고 패배한 이유를 분석하며 실력을 늘렸던 기억이 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개선도 발전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진리라면 과거의 실수나 잘못으로부터 교훈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과거로부터 깨닫는 것이 있어서 스스로를 고치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남의 탓으로 돌릴 뿐 자신의 잘못을 부인만 하는 사람도 있다. 반성과 후회의 차이다.


 지난 2년 간 한국의 정치지형은 상전벽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크게 변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년 초부터 여당이자 152석으로 국회 과반수의 새누리당은 꿈의 의석수라는 180석 확보를 공공연하게 자신할 정도로 자만에 빠졌고, 친박과 반박으로 나뉘어 박근혜 대통령과의 친분으로 공천을 심사하는 폭거를 자행함으로써 소위 유승민의 탈당과 김무성의 ‘옥새 들고 나르샤’로 일컬어지는 분열을 초래했다.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은 20대 총선에서 180석은커녕 과반수에도 크게 못 미쳐 여소야대의 국회를 자초했고 국회를 장악한 야당은 최순실 국정농단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되고 조기 선거로 급기야 여야가 바뀌었으며, 야당으로 전락하고 1년 후에 실시된 지난주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은 TK에 한정된 지역정당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정치 비전문가로 원인을 분석할 능력이 없다는 것은 알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정치 사회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지난 2년 동안 열심히 댓글 활동을 했던 배경으로 복기를 해본다.


 근본적인 원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그 이전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모략과 탄압으로 노 대통령이 사망하지 않았다면 국민 문재인은 양산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낼 사람이었다. 노 대통령의 죽음은 문재인을 정치판으로 불러냈고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MB는 국정원 공무원과 군인을 동원한 불법 정치공작으로 박근혜 당선을 도왔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될 인물이었다. 무능한 사람이 권력을 가졌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은 강남의 졸부들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 남의 눈을 의식해서 외모와 외양을 중시하고 권위와 돈으로 사람을 모으고 아부와 아첨을 좋아하고 쓴소리를 멀리 한다.


 아래 기사를 보자.


 "박근혜 대통령의 영국 국빈방문 공식 환영식이 열린 5일(현지시간). 아침부터 비를 퍼붓던 런던의 하늘은 환영식이 시작될 즈음부터 개기 시작했다. 마침내 오후 12시 10분 행사가 시작되자 잔뜩 찌푸린 하늘 뒤에 숨었던 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을 태운 왕실 마차가 버킹엄궁에 들어설 때는 햇빛이 쨍쨍 비췄다." - "朴대통령, 버킹엄궁 들어서자 비 그치고 햇빛 쨍쨍" (2013. 11. 5. 이데일리 피○○ 기자)


 "흔치 않은 자연현상이 나타날 때 '서기(瑞氣:상서로운 기운)'로 여기는 일이 많다. 특히 날씨가 그렇다. 옛 시절에는 자연현상으로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치기도 하고 앞날을 예견하는 운명의 '복선' 쯤으로 여기기도 했다. 이번 중국 국빈방문 중 박근혜 대통령과 날씨의 상관관계가 회자됐다. 방중 첫날인 6월 2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단독·확대정상회담을 성공리에 마치고 이틀째인 28일에는 전날 국빈만찬에 이어 특별 오찬까지 하는 최고 예우를 받았다. 이날 저녁 베이징에는 드물게도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다. 


 낮에는 찜통더위와 높은 습도로 가만히 있어도 등에 땀이 흐를 정도이고, 불쾌지수마저 꽤 높았던 데다 각종 매연과 안개가 뒤섞인 스모그로 목이 따가울 정도로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이날 비는 베이징 하늘에 켜켜이 쌓인 오염을 말끔히 씻어 내릴 만큼 시원함과 상쾌함을 선사했다. 연평균 강수량이 500㎜ 정도에 불과한 '마른하늘'의 베이징에서 모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라는 게 현지인들의 반응이다."

 - (2013. 7. 1. 파이낸셜뉴스 정○○ 기자)


 이쯤 되면 연산군의 간신 임사홍이 울고 갈 정도다. 아마도 박근혜가 부러웠던 사람은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을 이끌고 있는 메르켈 총리가 아니라 황금마차를 타고 손이나 흔들며 요란한 옷을 입고 인형이나 다름없는 역할의 영국 왕실의 엘리자베스 여왕이었을 것이고 그 역할이라면 잘 어울렸을지는 모르겠다. 분단 한국이 필요로 하는 지도자는 메르켈이지 엘리자베스는 아니었다.


 반성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을 바꾸지만, 후회는 남을 탓할 뿐 스스로는 변하지 않는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패한 민주당은 패인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자신을 바꾸었다. 분열과 계파를 과감히 청산한 것이다. 안철수와 박지원이 계파 갈등으로 분당을 추진했을 때 집까지 찾아가 설득하는 진정성은 보였지만 과거처럼 타협하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 잡음 없이 일관성이 있는 모습은 국민에게 신뢰를 주었다.


 반면에 후회하는 측은 정반대로 행동했다. 정권을 잃은 것은 종북좌파에 의한 촛불 탓이고, 박근혜 탄핵과 이명박 구속은 정치보복이라며 남의 탓만 했다. 과거 자신들이 했던 것이야말로 정치보복이었는데도. 심지어 여론조사마저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이유로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총장까지 낙마시켜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만들고 언론을 장악해서 정부의 홍보수단으로 추락시킨 것이 자신들이었으면서도 적반하장이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을 시인하는 반성은 용기가 필요하지만 다른 이들을 설득하기 쉽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서 억지논리를 펴고 변명을 늘어놓는다면 구차하게 보일 뿐 타인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언론을 탓하고 검찰을 원망하고 재판 결과를 부인하는 것은 똥고집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추하게 보일 뿐이다. 반성하는 사람은 진실을 볼 수 있어도 자신만 옳다고 고집하는 사람은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의 일관된 진정성이야말로 여당 승리의 동력이었다. 노무현과는 다르게 문 대통령은 격하지 않고 시종 침착한 모습으로 비정상적인 트럼프와 비정상국가의 지도자 김정은 사이에서 화해와 평화를 위한 줄타기를 하며 최선을 다하는 분단국가의 지도자다운 모습에 국민은 감동했다. 독일 통일을 이끈 ‘헬무트 콜(Helmut Kohl, 1930~2017)’ 서독 수상의 인내력과 협상력을 연상시켰다. 문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주장이 대세가 되었다.


 바뀐 세상도 큰 역할을 했다. 70년대에 태어난 소위 ‘X세대’가 어느덧 4~50대로 한국사회의 ‘오피니언 리더’가 되었다. 그들에게 좌파는 북유럽의 복지국가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로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보수의 종북몰이가 그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바뀐 세상에는 SNS와 팟캐스트도 있었다. 특히 서울시 교통방송의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균형 잡힌 시각으로 사실을 알리는데 기여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기에 가능했겠지만.


 예상했던 대로 여당은 압승했고 야당은 폭망 했다. 조국과 민족의 미래를 위해 좋은 일이다. 단, 부정부패와 권력의 갑질 횡포를 막을 수만 있다면.


<후기>

 지난 2년 동안 포털사이트에서 댓글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을 바탕으로 이번 지방선거 관전기를 글로 옮겨보았습니다. 2012년 국정원과 사이버 사령부의 댓글 활동 보도에 열 받아서 시작했는데, 좋은 세상이 왔으니 이제는 그만둘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살기 시작한 2011년 이후로 암울한 세월을 보냈었는데, 지난 2년은 바람직한 뉴스 속에서 정의가 구현된 것 같아서 흐뭇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5년 단임제의 헌법 때문에 4년도 못 남은 문 대통령의 임기가 아쉽지만, 언젠가 반드시 이루어질 통일을 위한 초석은 다질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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