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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Jun 19. 2018

월드컵 관전기

한국과 스웨덴전

 4년을 기다린 월드컵이었다. 그리고 첫 경기였다. 스웨덴은 F조에서 유일하게 승리를 기대할 수 있던 상대였다. 월드컵에서 준우승 경력이 있을뿐더러 FIFA 랭킹이 한국보다 높고 유럽의 강호 이탈리아를 물리치고 본선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12년 만에 본선에 진출한 팀이고 인구 천 만도 안 되는 나라이며 손흥민 같은 세계적인 선수를 보유한 나라도 아니니까.


 그러나 완전한 졸전이었다. 롱패스와 장신의 김신욱에 의존하는 공격은 단조로웠고 그나마 패스는 연결되지도 않았다. 1대 0이라는 결과는 차라리 행운에 가까웠다. 러시아에 5대 0으로 진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해 골키퍼를 제외하면 나을 것이 없었고 그 과정은 더 형편없었다.


 사실 스웨덴은 수비가 뛰어난 팀이다. 그걸 거꾸로 역이용하겠다는 게 신태용 감독의 작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김신욱만 원톱으로 적진에 박아두고 손흥민까지 내려오게 해서 수비에 치중시키면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진 스웨덴이 수비에 허점을 보일 것이고 그때 역습으로 승부를 내겠다는 작전 말이다.


 그러기에는 수비가 너무 약했다. 4-3-3 진용은 상대의 패스 한 번에 대열이 흐트러져 우왕좌왕했고 자기 진영에서도 패스가 원활하지 않아서 쉽게 빼앗겼다. 극단적인 사례가 전반 우리 진영에서 장현수가 박주호에게 한 패스다. 좌측 터치라인 부근에 홀로 있던 박주호에게 패스한 것이 형편없이 높아서 터치아웃되는 볼을 무리하게 키핑 하려다 같은 편 선수만 부상을 입었다.


 정확한 패스와 볼 키핑 능력은 축구선수의 기본이다. 기본기조차 부족한 선수들이 어떻게 국가대표가 되었는지 의심스럽다. 수비에만 전념하다가 종료 직전 상대 모로코의 자살골로 월드컵 사상 첫 승리를 기록한 이란을 부러워했던 것일까. 하지만 이란은 한국을 상대로 2011년 이래 져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한 골도 허용하지 않았을 정도로 수비가 뛰어난 팀이다. 그런 이란을 모델로 삼았다면 어불성설이다.


 김신욱은 가장 큰 선수였지만 스웨덴은 한국 팀보다 평균 신장이 2센티가 큰 팀이다. 그런 팀을 상대로 초반부터 김신욱의 신장을 이용하겠다는 발상도 비정상적이다. 비록 실패한 시도로 끝났지만 손흥민이 보여준 위협적인 돌파는 한국이 어떤 작전을 펼치는 것이 옳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김신욱의 신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작지만 민첩하고 빠른 이승우를 출전시켜야 했으며, 김신욱은 경기가 지고 있고 상대가 지쳐있을 때 조커로서 후반전에 출전시켜야 했다.


 수비가 장기인 팀에게 먼저 실점을 하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것을 몰랐을까. 수비를 깨뜨리는 유일한 수단은 선 득점밖에 없다. 한국의 유효슈팅이 한 개도 없었다는 것이 스웨덴의 수비 능력을 증명한다. 그런 점에서 손흥민을 풀백 라인까지 내린 것은 스웨덴에게 마음 놓고 공격하라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이란 같이 뛰어난 수비 능력이 없는 팀으로서는 최상의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는 것이 상식이다. 손흥민과 동급의 공격수이자 토트넘의 동료인 해리 케인은 튀니지와의 경기에서 두 골을 넣어 잉글랜드에 승리를 선물하지 않았나.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의 기세가 남아 있었던 것일까,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16강에는 들지 못했어도 1승 1 무 1패로 승점을 4점이나 얻었다. 심지어 결승까지 진출한 끝에 승부차기로 준우승한 프랑스와는 예선에서 1대 1로 비기기까지 했다. 물론 박지성이라는 한국 최고의 스타가 있어서 가능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전년도 유럽 챔피언이었던 그리스를 2대 0으로 물리치고1승 1 무 1패로 16강에 자력으로 진출했다. 월드컵 4강이 종이호랑이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세계에 각인시켰던 월드컵이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부터 한국은 추락했다. 골키퍼의 실수로 러시아와 겨우 비겼을 뿐으로 어떤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다.


 소설의 소재를 얻기 위해 2002년 월드컵 경기를 자주 보았다. 당시 한국은 환상적이었다. 논스톱의 짧은 패스로 적진을 뚫었고 덩치 큰 유럽 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도 쉽게 나가떨어지지 않았다. 김신욱보다 훨씬 작은 안정환은 헤딩으로만 두 골을 결정적인 순간에 성공시켰다. 공격수는 해리 케인처럼 적진에서 빛을 발한다. 본능적인 위치 선정과 골 감각으로.


 2002년 포르투갈 전에서 박지성이 보여주었던 그 환상적인 골을 다시 볼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오른발로 공을 띄워 수비수를 제치고 왼발 발리로 강하게 차 넣어 골키퍼가 손 쓸 사이도 없이 가랑이 사이로 빨려 들어가던 그 통쾌한 슛을.


 <후기>

 어제 경기를 보면서 이번 월드컵에서는 전 대회에서 거두었던 승점 1도 기록하지 못할 것을 확신했습니다. 로또에 당첨될 만큼의 행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혹자는 최선을 다한 국가대표를 왜 이렇게 비난만 하느냐고 나무랄지 모르겠습니다만, 애정이 있고 관심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게 이유 있는 비난이자 비평입니다. 우리나라 팀이라고 해서 무작정 좋게만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비록 축구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대한민국 축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무능과 무대책으로 일관한 축구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아무리 축구공이 둥글다고 해도 90분 내내 소극적이고 주눅이 잔뜩 든 자세로 아무 색깔도 없이 얼치기 수비에만 급급한 팀에게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서울의 도봉구만 한 인구 30만을 가진 아이슬란드는 아르헨티나에게 비겼습니다. 영화감독이 주업이라는 골키퍼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이 메시의 페널티킥까지 막아내는 기적을 만들었던 겁니다.


 어제 한국 팀의 경기에서는 붉은 악마의 안타까움과 탄식만 있었을 뿐, 선수들에게서 어떤 아름다움이나 창조적인 모습은 털끝만큼도 볼 수 없었습니다. 아시아 국가가 더 이상 망신당하지 않도록 일본이라도 열심히 응원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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