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월드컵 4강 예측
단조롭고 평화로운 일상으로 특별할 일이 없는 나 같은 건달에게 최고의 나날을 보낼 수 있게 한 월드컵이 준결승 두 게임, 결승전과 3, 4위전 두 게임 등 총 네 경기만 남긴 채 대단원의 막을 앞두고 있다. 역시 월드컵이었다.
지난달 김정은과 트럼프 간의 북미회담과 이어진 6·13 지방선거 같은 빅 이벤트로 월드컵은 여론에서 사라진 듯 관심조차 받지 못하다가 일단 시작하자 모든 관심은 러시아로 향했다.
덕분에 장마나 초여름의 더위도 지루함과 따분함을 느낄 새 없이 생동감이 넘치는 시간이 되었으며 긴장과 흥미 속에서 쏜살같이 지나갔다. 어떤 아마추어 팬이 예측한 대로 프랑스와 벨기에, 잉글랜드와 크로아티아가가 4강에 올랐다. 준결승에서는 프랑스와 잉글랜드가 이겨서, 도버해협 사이에 두고 마주한 영국과 프랑스의 월드컵 사상 최초로 영불전쟁이 일어나기를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이럴 경우 궁금증은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사람들은 누구를 응원할까? 비록 앙숙인 잉글랜드지만 영국(Great British)의 일원으로 잉글랜드의 우승을 바랄까, 아니면 잉글랜드가 우승하는 꼴이 보기 싫어 프랑스를 응원할까. 국제적으로 영국은 한 나라지만, FIFA에서는 서로 다른 팀으로 월드컵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스가 따로 출전한다.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각각 월드컵 우승을 한 차례씩 갖고 있는데, 모두 자국에서 개최되었던 1998년 프랑스 월드컵과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대회에서였다. 따라서 이번에 프랑스가 우승한다면 20년 만이고 잉글랜드는 52년 만일뿐 아니라, 제3 국에서 FIFA 트로피를 들어 올린 최초의 역사가 된다.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 잉글랜드 대회였다.
한국도 첫 경기인 스웨덴전만 제외하면 그런대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며 잘 싸웠다고 본다. 그라운드에서 혼신을 다하고도 실력이 부족해서 졌다면 하는 수 없다. 그러나 트릭이나 꼼수를 쓰다가 지면 지고도 쪽팔린다. 유효슈팅 제로를 기록한 스웨덴전이 후자의 경우고 멕시코와 독일전은 전자의 경우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스웨덴과 멕시코의 경우 엉성한 플레이로 수비하다가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허용하고 패배했다는 점이다.
멕시코전에서 종료 직전에 터진 손흥민의 중거리 슛은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갈 정도로 통쾌했다. 그가 왜 월드클래스 선수로 불리는지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이해하기 힘든 것은 한국전에서 자신이 없고 위축된 플레이를 한 독일이다. 긴장한 모습이 스웨덴전에서 한국이 보여준 것과 흡사했다.
이번 대회에서 숙적 일본이 보여준 경기력은 한국을 능가하는 것으로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전략도 뛰어났다. 폴란드전 막판 비겁한 플레이도 벨기에와의 16강전 플레이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체력이나 실력이 부족한 팀으로서 어떻게 우월한 팀과의 경기를 풀어나가는지를 교과서적으로 보여주었다. 비록 지긴 했지만 일본이 기록한 두 골, 특히 두 번째 골은 손흥민의 멕시코전 골이나 프랑스의 음바페, 벨기에의 데브라위너의 골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반면에 벨기에가 일본에게 기록한 첫 골은 정말 운이 따라주었기에 가능했다. 축구를 많이 보았어도 그렇게 엉성하게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슛도 아니고 센터링도 아닌 어정쩡한 헤딩이 빠르지도 않게 포물선을 그리며 골키퍼 머리 위를 지나 옆 그물 안쪽에 맞으며 떨어졌다. 축구에서 행운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증명한 골이었다. 언론에는 골키퍼의 어이없는 실수라는 전문가의 평이 있었으나 내 눈에는 무슨 실수를 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편 벨기에가 종료 직전에 만든 역전골은 역습의 진수를 보였다. 우측 사이드라인을 치고 들어가는 벨기에 선수는 붙잡고 매달리는 일본 선수까지 이겨내며 역습을 완성했다. 반칙을 하는 것도 실력이지만, 반칙을 이겨내는 것이야말로 실력 위의 실력인 셈이다. 어설픈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허용한 한국 선수들의 실력이 비교되는 순간이었다. 피아를 떠나 그렇게 멋진 플레이를 보는 것은 축구팬이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이다.
한국 축구는 숙적 일본 축구가 있어서 더 발전할 것은 틀림없다. 대학시절 빠른 시간에 바둑실력이 1급이 된 것도 이웃에 숙적이 있어서 가능했다. 인류의 발전도 그렇게 진행되어 왔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무역장벽 높이기는 어리석은 행위임에 틀림없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알게 된 인물이 있다. 이강인이라는 열일곱 살 소년이다. 16강에서 탈락한 스페인이 다음 월드컵을 위해 귀화를 원하는 선수로, 불과 7살에 축구신동으로 불려 스페인 발렌시아 유소년 팀에서 유학해서 발렌시아 소속인데, 현재 호날두의 레알 마드리드와 영국 EPL 1위인 맨시티에서 영입하려고 교섭 중인 축구천재다. 4년 뒤에 벌어지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이런 선수가 손흥민, 이승우와 함께 한국을 16강에 올려놓기를 기대해보자.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하하하.
4강에 오른 벨기에는 소질을 보이는 선수들을 귀화시켜 어릴 때부터 육성했다고 한다. 스페인이 이강인을 귀화시키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만큼 축구는 국가 간 전쟁이다. 생존을 위해 사냥할 동물을 쫓아다니는 원시적인 인류의 행위를 스포츠화 한 것이 축구라고 한다. 브라질과 우루과이, 멕시코,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포르투갈이 탈락한 것을 보면, 축구는 개인이 아닌 11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하는 스포츠가 분명하다.
그래서 지구인들은 무엇보다 축구에 더 열광하지 않을까?
<후기>
자정과 새벽에 벌어지는 경기를 보느라고 컨디션이 엉망입니다. 오늘은 연장전과 승부차기까지 가는 바람에 운동도 못하고 컴퓨터로 월드컵 기사만 훑었습니다.
한국은 날씨나 아주 좋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홍수와 지진으로 시끄럽지만, 이곳은 반팔 셔츠로는 추위를 느낄 정도로 선선해서 여름 같지 않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측한 대로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결승에서 만난다면 이번 주말은 정말 시끄러워질 것 같습니다. 저는 잉글랜드 우승, 프랑스 준우승, 벨기에 3위, 크로아티아 4위를 조심스럽게 예측합니다. 왜냐고요? 손흥민이 뛰고 있는 토트넘 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