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한국인
한반도를 떠나 외국에서 거주하는 한인들을 일컫는 공식 명칭은 재외동포다. 재외동포는 재외국민과 재외교포를 포함 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외국인까지 망라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재외국민은 영주권자 및 유학이나 업무 등의 사유로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 국적자를, 재외교포는 한국 국적이었으나 이민이나 망명 등으로 외국국적을 취득한 이민 1세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구분된다.
외국에서 국적을 취득하여 외국인이 된 한인들이 ‘외국국적 동포 국내거소신고증(이하 거소증)’이라는 긴 이름의 신분증으로 한국에서 거주할 자격을 얻게 된 것은 1999년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IMF 극복을 위해 재미동포의 자본을 끌어들일 구상을 하고, 관련법을 정비하여 1999년에 재외동포법을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이 법안에 의거 재외동포를 일반 외국인과 다른 출입국 혜택을 주었으며, 경제활동에 있어서도 외국인보다는 우대했다.
이는 부정적 표현인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신조어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 법의 시행 초기에는 한국경제에 도움이 되는 재미교포와 조총련계를 제외한 재일교포에게만 적용되었다. 하지만 2002년에 헌법재판소가 헌법의 평등 조항을 위반하는 위헌으로 판결함으로써 이때부터 재외동포법에는 재외교포뿐 아니라, 한국계 혈통을 포함하는 재외동포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이는 존슨 대통령의 제안으로 미국의회에서 1964년 개정된 이민법을 떠오르게 한다. 아시안에 대한 이민 차별이 사라지고 한국에게 이민길이 열린 것은 이때부터다.
2년마다 갱신되는 외교통상부의 최근 동포현황을 보면, 약 4.5백만의 재외교포와 2.5백만의 재외국민 등 총 7백만이 넘는 한인동포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다. 한국과 인접한 중국이 2.7백만으로 가장 많고 다음은 미국의 2.1백만이며, 백만 가까이 살고 있는 일본이 3위로 다음을 잇는다. 미국에 거주하는 217만 명의 한인 가운데 시민권자는 절반인 50% 정도다.
10년마다 인구센서스를 통해 발표되는 미국의 2010년 통계에 의하면, 전체 미국인의 5.6%를 차지하는 아시아계에서 한국계 미국인은 중국(아시아계 23%), 필리핀(19.7), 인도(17.4), 베트남(10.0) 다음으로 9.8%이며, 일본계는 7.5%를 차지한다. 일본 포함 아시아 주요 6개국 가운데 가구당 연평균 소득이 5만 불로 가장 적다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지만, 지난 글에서 어느 분이 주장한 대로 한국인들은 소득을 적게 신고하기 때문이라는 것에 무게가 실린다.
글의 서두를 거창하게(?) 재외교포의 통계를 싣고 시작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내란 중인 조국을 탈출한 예멘인 500여 명이 제주에 들어온 것을 갖고 나라가 망할 것처럼 요란을 떠는 일부 속 좁은 인사들과 언론의 행태 때문이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을 필두로 미국 초창기 이민도 그렇지만, 구한말 생존을 위해 연해주와 북간도로 떠난 선조들도 난민이나 다름없었다. 선조들이 청나라 사람들이나 그곳까지 식민지화한 일본인에게 차별은 받았어도 지금 예멘인들에게 한 만큼은 아니다.
몇 백 년 전의 일도 아니다. 불과 150년 전의 일이고 헐벗고 굶주렸던 50년 전까지도 그랬다. 세월이 지나 숱한 성공한 이민자도 나타났으나, 성공과는 거리가 먼 나 같은 사람이라도 고국에 대한 애착으로 한국식품을 사 먹고 회사에서는 ‘메이드 인 코리아’를 구입하였으니 고국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손해를 끼치지는 않았다. 오죽하면 IMF 시절의 김대중 대통령은 재미교포의 자금이라도 끌어오려고 법령을 만들었을까.
한국의 의료보험 덕을 보려고 일시 귀국하는 병든 동포들이 몇 명이나 된다고, 의료보험 재정이 거덜 날 것처럼 떠드는 일부 인사들의 억지주장을 보면 기가 막힌다. 하기는 500명도 안 되는 난민도 수용하지 못하는 국가라니! 그것도 인구 5천만이 넘는 나라에서, 그것도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라고 자랑하면서 말이다. 단 것만 삼키고 쓴 것을 뱉아버리겠다는 심보가 아니라면!
언젠가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서울 강서구민들이 장애인학교 설립에 반대하며 들고 일어섰다. 장애인을 가진 부모들이 그들에게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제발 학교 설립을 반대하지 말아 달라고. 반대하는 주민들의 하나가 장애인 부모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제발 다른 동네로 가달라고.
안에서 깨지는 쪽박이 밖이라고 안 깨질 리 없다. 두어 달 전 LA 한인타운에 24시간 노숙인 쉼터(emergency homeless shelter)가 들어서는 것에 반대하며 한인들의 시위가 있었는데, 미국인들은 노숙인 쉼터 설립을 반대하는 한인들에 대한 맞불 시위를 벌였다.
이럴 때면 쪽팔려서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문득 든다.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Humanity 때문이다. 불쌍한 처지를 보고도 측은지심이 없다면 인간 같다고 할 수 없다. 민족애보다 앞서야 할 것은 인류애다. 내 뒤뜰이 아무리 깨끗하고 아름다워도 이웃의 뜨락이 지저분하다면 볼품없게 변한다. 2천 년이 넘도록 예수님이 사랑을 강조하고 부처님이 자비를 가르쳐도 인간의 이기심을 이길 수는 없나 보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그렇게 속 좁은 인간보다는 그렇지 않은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도 태양은 동녘 창공을 붉게 물들이며 찬란한 모습으로 떠오른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세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