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동안 하릴없는 건달들의 버거운 무채색의 시간을 화려하게 만들어준 월드컵이 프랑스의 우승으로 끝났다. 전 세계 축구 애호가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전 세계 도박사들에게 좋은 건수가 된 월드컵에 대한 전문가의 평은 곳곳에서 볼 수 있으니, 비전문가의 평이 의미가 있다면 흔하지 않다는 희소성에 있을 것이다.
프랑스와 크로아티아의 결승전을 본 대부분 사람은 - 프랑스인이 아니거나 프랑스 승리에 돈을 걸지 않았다면 – 아마도 크로아티아를 응원했을 거로 생각한다. 우리나라 전라도와 경상도를 합친 면적을 가진 인구 410만의 작은 나라를 응원하는 것은, 약자를 응원하고픈 인간 본능 외에도 기적을 바라는 소시민들의 희망이기도 하다.
객관적으로는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FIFA 순위 같은 객관적 전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16강, 8강, 4강을 연장전(30분) 끝에 올라와 프랑스보다 한 게임(90분)을 더 뛴 데다가 휴식도 하루가 짧았으며 평균나이도 서너 살이 많았다. 상대팀에 비해 모든 것이 불리했다. 이긴다면 그야말로 기적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승리 여신의 미소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승리의 여신은 크로아티아 편이 아니었다. 프랑스 그리즈만의 할리우드 액션에 가까운 반칙으로 얻은 프리킥은 하필 자살골이 되었다. 운이 없었다는 것밖에 설명되지 않았다. 1대1이 된 크로아티아 페리치의 골은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곧이어 주어진 페널티킥도 불운이었다. 고의적이지 않았기에 넘어갈 수도 있었으나 심판의 판정은 결정적으로 프랑스에 행운이 되었고 크로아티아는 그렇게 무너졌다.
운도 실력이 있어야 따라주겠으나 승운이 반대로 작용했다면 크로아티아가 이기는 기적도 충분히 가능했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 어디 인생만이겠는가. 16강전에서 덴마크를, 8강전에서 러시아를 승부차기 끝에 이겼으니 그 또한 실력보다 승운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크로아티아의 운은 거기까지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번 월드컵의 주인공은 프랑스가 아니라 크로아티아였다.
그만큼 그들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잉글랜드전이 그랬다. 지고 있어도 포기할 줄 몰랐으며 열리지 않는 문을 믿어지지 않는 체력으로 끝없이 두드렸고 마침내 열었다. 그들이 잉글랜드전에서 보여준 두 골은 대단했다. 날아오는 공을 서서 수비하는 수비수 사이에서 먼저 움직이면서 정확히 차넣었다.
이전까지의 축구가 선(線)이었다면 작금의 축구는 점(點)이라는 것을 크로아티아가 증명했다. 골대 근처에서 머뭇거린다거나 공을 키핑한 다음 슛하는 것은 수비수에게 가로막혀 공이 골대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패스하는 사람도 패스를 받는 사람도 동작 중에 정확하게 하는 실력이 필요했고 크로아티아는 그것을 갖추었다.
다음은 체력이었다. 90분간 쉼 없이 뛸 수 있는 체력, 필요하면 연장전까지 소화할 수 있는 체력이었다. 잉글랜드는 연장 후반 10명이 싸웠다. 수비수 한 명이 다리에 쥐가 나서 더는 그라운드에 있을 수가 없었지만, 이미 선수교체 정족수를 채운 뒤여서 바꿀 수가 없었다. 크로아티아는 이미 직전 두 경기를 연장전과 승부차기까지 거쳤어도 잉글랜드보다 체력에서 앞섰고 그것은 곧바로 승리로 이어졌다.
그런 그들도 철인은 아니었다. 프랑스와의 후반전에서는 체력이 바닥난 모습을 드러냈다. 점으로 이어지던 볼을 선으로 끌다가 빼앗겼고 수비에 가담하는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졌다. 표정에서도 승리에의 집념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보여준 뒤였다. 그들은 세계인들에게 크로아티아를 확실히 각인시킨 용사들이었다. 모드리치, 만주키치, 페리시치. 비다 등 크로아티아 축구선수들의 이름은 오랫동안 지구인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오래도록 메시나 호날두의 명성에 싫증 난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물이 드디어 나타났다. 프랑스의 열아홉 살 축구 신동 음바페다. 그가 공을 달고 질주하는 스피드는 육상선수를 연상시킬 정도다. 때로는 스피드로 때로는 드리블로 수비수를 제치는 기술은 군계일학이었다. 아직은 덜 익은 느낌도 없지 않으나 또 한 명의 불세출의 스타 탄생을 기대하게 했다. 자기 관리를 얼마나 철저히 하느냐에 달렸겠지만.
지역 예선에서 미국을 탈락시키고 월드컵 본선에 처음 출전한 북중미의 소국 파나마는 잉글랜드에 6대0으로 지고 있다가 한 골을 넣고 그토록 기뻐했다. 그게 월드컵이다.
인구 13억의 대국 중국은 2002년 자동 출전하는 주최국 덕분에 진출한 게 유일하다. 시진핑까지 나서 ‘축구 굴기(崛起, 우뚝섬)’를 강조할 정도로 국민적 인기가 대단하고, 국내리그에 엄청난 돈으로 유명선수를 영입하는 등 축구팀만 3천 개가 넘어도 아직은 이렇다 할 전적이 없다는 것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다.
중국 선수는 국가적 지원과 국민적 인기 탓에 웬만큼 유명해지면 엄청난 부를 이룬다고 한다. 소위 배가 불러서 힘들게 노력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4년 뒤에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도 탈락할 정도로 지역 예선 통과가 어려운 관문이듯 한국도 더 발전하지 않는다면 본선 9회 연속 진출의 업적은 머나먼 추억에 머물 수도 있다.
부디 학연, 지연, 혈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축구협회가 환골탈태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지금의 모습을 일관한다면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남들이 벌이는 남의 잔치가 되기에 십상이다.
그나저나 월드컵이 끝났으니 이제 무슨 재미로 살아야 하나, 하하하.
한 달 후에 벌어지는 아시아게임이나 기다리며 글쟁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겠다.
더위를 이기는데 이보다 좋은 방법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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