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상념
중고등학생 시절 내 번호는 항상 30번대이었다. 키 작은 순서로 번호를 매겼던 중학생 시절에는 삼십몇 번이었고, 큰 순서로 번호를 매겼던 고등학생 때는 이십몇 번이었다. 60명 중에서 중간이라는 것은 크지는 않지만 작지도 않았다는 의미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였던가, 신체검사에서 신장을 재면 170센티에서 172까지 왔다갔다 했다. 그 이후로 항상 170은 넘었으면 넘었지, 그 이하로 나온 적은 없었다. 군대 신체검사에서도 비슷했는데 당시 한국인 남성의 평균은 160 몇 센티였던 것으로 기억하니까 평균 이상은 되었던 셈이다. 미국에서 운전면허증에 신장을 기록할 때도 171센티를 환산해서 5피트 7인치라고 적었다.
미국에서는 키 잴 일이 전혀 없었다. 한국에서 2년마다 받는 정기 건강진단을 받을 때 첫 순서가 체중과 함께 신장을 재는 것이다. 몇 년 전이던가, 간호사가 169점 얼마라고 불러주었다. 어, 키가 줄었나? 간호사가 잘못 잰 것 아니냐고 생각하면서 별로 마음에 두지는 않았다. 몇 밀리미터야 차이가 날 수도 있을 테니까.
두 달 전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은 후 우편으로 받은 결과 통보서에 키(㎝) 168.4, 몸무게(kg) 72.2로 기록되어 있었다. 몇 년 사이에 키가 계속해서 줄었다. 지난 기록을 전부 찾아보았다. 2012년 170.5에서 출발해서 2014년 169.8, 2016년 169.4로 변했고 올해 드디어 168센티대가 되었다. 정확히 쟀다는 가정하에 20대의 한창때와 비교하면 최소 2센티 이상 쪼그라든 셈이다.
그렇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노안이나 건망증 같은 소프트웨어만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장이나 체중과 같은 하드웨어도 변한다. 다시 말하면 죽음으로 한 발짝씩 서서히 다가가는 것을 의미한다. 작아진다는 것은 뼈가 수축한다는 뜻으로 몸조차도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 조금씩이라도 준비하고 있다는 또 다른 표현이지 않겠는가. 줄어들지 않는 것은 영원히 살 것 같은 어리석은 마음과, 끝을 모르는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뿐이다.
어제는 이웃이 족발과 소주를 사 들고 마실을 왔다. 거나해진 취기 탓이었을까. 나는 스캔해놓은 사진을 보여주며 잡담의 소재로 삼았다. 60이 넘어 만난 친구와 우정을 키우는 지름길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방법이 최선이니까. 거기에는 선친의 회갑 기념사진이 있었다. 삼십몇 년 전에는 부모 회갑에 회사에서 축의금까지 나왔던 시절이었다. 사진 속의 아버지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지금의 내가 사진 속의 아버지보다 두 살이나 많았는데도.
7월이 되어 죽음의 향기를 의식한 것이 3년째다. 정확히 3년 전 오늘, 7월 18일 자연으로 돌아감으로써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친구 ‘Lawrence’님은 추억 속의 친구로 남았다. 그분이 돌아가시기 한 달 전 남긴, ‘여러분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는 마지막 말이 되었다. 코앞에 닥친 죽음을 보고서도 마치 남의 일인 듯 웃었다.
- 시외버스 매표구에서 표를 사는데, 말이 입안에서만 돌뿐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거예요. 이런 적은 없었거든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온 모양입니다, 하하하.
3년 전 봄 밀양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이렇게 전하며 전화기 건너편에서 크게 웃었던 분이었다.
빈부 차이와 지위고하 불문 누구나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형이하학적 불평등을 형이상학적 평등으로 완성한다. 우리 세대의 젊은 시절, 벗이나 직장 동료와의 술자리에서 안주로 가장 자주 등장했던 3김시대가, 지난달 마지막 김종필 씨의 운명으로 종영을 고했다. 무엇을 뜻할까. 그들은 아버지 시대의 사람들이었다.
우리 차례가 되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아버지 세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지난 30년 동안 세상을 떠났듯, 그들을 쫓아 우리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떠날 것이다. 내 아버지가 그랬듯 ‘Lawrence’를 비롯한 몇 분 친구들은 누구나 가야하는 그곳으로 앞서 떠났고, 3김 씨가 그랬던 것처럼 나를 비롯한 누군가는 뒤에 따라 나설 뿐이다. 그때가 오면 ‘Lawrence’님을 흉내 내야겠다.
‘제 글에 관심을 주신 여러분, 그동안 베풀어주신 관심과 지지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10년 일지 20년 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시간이 문제일 뿐이지, 반드시 온다는 사실뿐이다. 30년 후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깝겠지만, 하하하.
▼ 요즘 젊은이들은 정말 큽니다. 서울에서 지하철에 타면 어떨 때는 걸리버 여행기 속에 있는 듯합니다.
▼ 의식하든 하지 않든 우리는 서서히 죽음을 향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