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stalgia’님의 블로그에 새로운 글이 있어서 여느 때처럼 퍼왔습니다. 140번째 글입니다. 읽기 편하게 약간의 편집을 거쳤습니다. 원글보기)
8.22.2018
대한민국 헌법 제14조는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국민정서에 반하는 대표적인 헌법불합치(憲法不合致)조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조된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약 올리는 조항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구나 대궐 같은 집에서 거주하고 싶고 미국 같으면 베버리힐스, 한국 같으면 강남으로 이전해서 살고 싶을 것입니다.
중국,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는 정치가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하지만, 자본주의 국가는 '주조된 자유'가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합니다. 그래서 한국이 돈이면 다되는 '진정한' 자본주의 국가라면 헌법을 이렇게 바꿔야 합니다.
'모든 국민은 돈이 있으면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이래야 현실적이고 조금 덜 화가 납니다. 주조된 자유를 향유할 기회를 좀 더 많이 가지려고 한국에서 미국에 이민 올 때는 이민법이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지만, 나이 들어 역이민으로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도 주조된 자유가 해는 져서 어두운데 앞길을 막습니다.
이미 200년 전에 도스토옙스키는 돈 문제가 일상적인 삶과 직결되는 현재에도 섣불리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돈을 추구하는 것을 저급하고 속물적인 일로 치부하는 시대적 분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은 먹고살 돈을 벌기 위해 팔리는 소설을 쓴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며 '돈은 주조된 자유다'고 합니다. 인간의 영혼까지 얼어붙는 시베리아 허허벌판의 감옥에서 절절히 느낍니다. 신체적 자유가 제한되는 감옥에서도 주조된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빚쟁이에게 시달리던 도스토옙스키가 1865년 브랑겔 남작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빚을 다 갚고 다시 자유로운 몸이 될 수만 있다면 나는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도 좋습니다.'
얼마나 고통을 받았으면 경제적 자유가 육체적 자유보다 더 소중하다고 호소할까요?
그는 정치적 탄압으로 감옥에 갔고 도박 때문에 평생을 어렵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는 평화롭게 갔습니다. 반면 톨스토이는 평생을 부유하게 보냈지만, 마지막에는 간이역에서 고통스럽게 객사했습니다.
돈과 시간은 함께 가지만, 결국 돈만 남게 됩니다. 젊은 시절은 남는 게 시간이고 없는 게 돈이지만, 시간으로 돈을 산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돈을 쓰기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한데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돈은 상속되지만, 시간은 상속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돈이 기본이 되는 사회이기에 우리는 흔히 돈을 번다, 또는 돈을 모은다고(저축) 표현하지만, 사실은 돈을 사는 것입니다. 인간은 노동과 시간을 제공하고 돈을 사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시급을 시간당 10,000원으로 올리느니 마느니 야단인 것도 보면 시간으로 돈을 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축은 돈을 모으는 것이지만, 투자는 돈으로 돈을 사는 것입니다.
돈은 시간입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시간은 돈이다.'가 도스토옙스키에게서는 뒤집힙니다. 시간은 돈이고 또 돈은 시간입니다. 인간은 돈을 위해 시간을 제공하고, 또 돈을 주고 시간을 삽니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둘 다 부족하다는 사실.
세상에는 달러의 자유, 유로의 자유, 원의 자유가 넘쳐 남에도 불구하고 이 자유를 조금밖에 향유 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그래서 투르게네프는 이렇게 불평했습니다.
'돈은 천하를 유랑하는 것이다. 다만, 항상 내게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유'가 많은 은행은 주조된 자유를 제조하는 곳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은행에 돈을 맡기며 저축한다고 하지만, 저축한다는 말은 은행이 만들어 낸 말입니다. 여러분이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은 여러분이 은행에 돈을 빌려주는 것입니다.
돈을 빌려줄 때 채권자는 두 가지를 보장받아야 행동합니다. 돈을 되돌려 받을 신용과 수익(이자)입니다. 은행은 이 두 가지를 보장하기에 우리는 은행에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이자라도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고객들로부터 돈을 빌리지 않는다면 저축한 돈에 대한 이자를 줄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보관료를 받아야 합니다.
은행의 이자가(수익률) 적은 이유는 안전하게 보관하는 기능과 자신들의 수익을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예대 마진(차익)이라고 합니다. 저축(빌린 돈)이자 적게 주고 대출이자 많이 받는 것입니다. 은행은 남의 돈 갖고 장사하는 곳입니다.
자유, 제조하지 않습니다. 여성과 데이트할 때 속물처럼 돈 있는 것 자랑하지 말고 이렇게 부드럽게 말하십시오.
"오빠, 자유 많아"
결혼한 사람은 아내한테 쓰면 안 됩니다. 쥐뿔도 없다는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글을 대학생들이 많이 읽기에 한 수 가르쳐 드렸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골치 아파요. 웬 질문이 그렇게 많은지, 싹수가 파랗습니다. 아주 좋은 현상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존 왕'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 난 가난할 때는 돈 많은 게 죄악이라고 지랄할게고, 돈을 벌게 되면 거지가 악덕이라고 외칠 것이다.'
돈이 없으면 슬픈 일입니다. 젊어서는 희망이라도 있지만, 나이 먹어서는 지는 해만 봐도 눈물이 나듯이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돈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돈이 넘친다는 것은 두 배로 슬픈 일이다.'
세 배로 슬퍼도 돈 없는 고통보다 낫습니다. 제가 사는 심심한 천국 미국보다 나의 모국 재미있는 지옥 한국을 제가 좋아하는 것처럼. 돈은 육체적, 심리적 자유를 보장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승자는 푸시킨, '돈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