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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Jul 28. 2018

무더위를 도서관에서

한국이 싫어서

 마지막으로 비를 뿌린 다음날인 7월 10일부터 시작된 무더위가 3주째 계속되고 있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은 청명한 아침 하늘이 오늘의 고문을 예고하는 듯하다. 죽어 지옥에서 당하게 될 찜통의 고통을 미리 맛보게 하려는 하늘의 배려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더라도 사양하고 싶어서 여느 날처럼 도서관으로 향했다.


 시립 도서관은 집에서 차로 5분 거리다. 덥지만 않다면 걷기에 적당할 정도의 2킬로에 불과하지만 아침이라도 30℃에 가까운 기온에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오늘로 8일째의 출근이다. 그동안 일곱 권의 책을 읽었다. 어제 읽은 장강명이 2015년에 발표한 ‘한국이 싫어서’라는 소설이 인상적이었다. 작가가 20년 정도 아래니까 젊은 세대의 생각을 엿보는 기회로 충분했다.


 한국에서는 행복하기 힘들다는 생각으로 캠퍼스 커플로 시작해서 오래 사귄, 좋은 집안과 직장까지 가진 남자가 결혼하자는 것까지 뿌리치고 호주이민을 선택한 스물일곱 살 ‘계나’라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일찍 결혼한 계나의 친구 ‘은혜’는 만날 때마다 시어머니 ‘년’이라고 부르며 시어머니 흉을 본다. 계나는 국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왜 내가 조국을 사랑해야 하느냐고 따진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시는 건 우리나라뿐인데, 개인의 삶은 도외시하고 보호하지 않는 국가에서 왜 살아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나처럼 이민사유가 ‘한국이 싫어서’였기에 눈길을 끌었다. 나도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생전 처음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갔었으니까. 취재를 얼마나 잘했는지 소설이라기보다는 사실 같았다. 서열을 정해 끼리끼리의 문화를 즐기는 한국인의 특성상 호주의 한인사회에 눈에 보이지 않는 서열이 정해진다고 한다. 시민권자, 영주권자, 유학생, ‘워홀러’의 순서다. ‘워홀러’란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1년 동안 일하러 온 젊은이들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인종들 간에도 서열이 정해져서 한인들은 백인을 위에 두고 다음은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며 밑으로는 중국인, 동남아시아인 이라고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유학생 리키의 눈에는 한국인의 그런 차별이 뚜렷이 드러난다. 빌딩 경비원으로 일하는 아버지를 둔 계나는 자카르타에 고급 호텔을 두 개나 가진 아버지를 둔 리키의 청혼을 거절한다.


 소설 속의 계나는 나와 분명히 달랐다. 한 세대 차이가 난다는 것만이 아니라 호주에서 4년 동안 모은 전 재산을 날리는 좌절을 겪고도 그녀는 여전히 호주를 선택했지만, 미국에서 좌절과 실패를 맛본 나는 한국을 택했으니까. 그녀는 모르고 내가 아는 것도 있다. 나이가 들면 생각이 바뀐다는 것. 늙어가면서 한국이 그리워질 거라는 것. 비록 호주의 맑고 푸른 하늘과 바다가 없더라도. 소설 속의 그녀가 바랐던 대로 행복을 찾았기를 바란다.


 도서관에 있으면 더위를 모른다. 며칠 전에는 기역자로 꺾어진 구석에 앉았다가 두 개의 코일에서 내뿜는 냉기에 추워서 시간마다 일어나 밖에서 몸을 덥히고 들어와야 했다. 이제 어느 자리가 가장 좋은 줄도 안다. 노트북 자판을 두드려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어서 좋다. 제주도서관에서는 자판소리가 신경에 거슬린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어서 글을 쓸 때는 휴게실 구석을 이용했었다. 제주에서는 일주일에 하루 휴관했는데 여수는 한 달에 하루만 휴관하는 것도 좋은 조건이다.


 열람실이 아닌 탓이다. 이용하는 자료실에 노트북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전원이 준비된 테이블이 있다. 장애인, 임신부, 섬에 거주하는 주민 등 대상이 제한되어 있지만 이곳에서는 책을 배달도 해준다. 택배비는 도서관에서 부담한다. 도서관에 없는 책을 보고 싶으면 신청하면 된다. 다른 도서관에 있는 책은 가져다주고, 없는 책은 구입해서 대출해준다. 도서관에 관한 한 한국은 앞서가는 선진국이다. 어느 나라에 이런 제도가 있다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불편한 것도 있다. 와이파이로 인터넷을 이용하는데 인터넷 강의에 접속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서 느리다. 글을 쓰는 목적으로 자료를 자주 찾는 사람에게는 불편하다. 평소에 도서관을 찾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한국의 도서관을 경험해본 나는 살 곳을 정할 때 도서관의 위치를 1순위 조건으로 삼았다. 여수에서도 그랬는데 정말 괜찮은 선택이었다. 사람은 지적 호기심의 동물이다. 모르면 당황하거나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되지만, 알면 달라져서 안심이 되고 편해질 뿐 아니라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다. 미지의 곳을 찾아가는 여행도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일이기에 즐거움을 동반한다.


 그런 의미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 얼마든지 있고, 그것을 볼 수 있는 시간을 마음대로 낼 수 있으니 은퇴자로서 행복한 인생이다. 아무리 책을 봐도 눈이 피곤하거나 아프지 않은 것도 신에게 부여받은 축복이다. 한여름의 무더위가 이토록 독서에 좋은 조건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지금 전화기에 문자가 왔다. 며칠 전에 신청한 도서가 다른 도서관에서 도착했으니 대출해 가란다. 600페이지 책 두 권을 읽으려면 앞으로 며칠을 정신없이 보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한들 겁날 게 무언가.


- 2018년 7월 27일 여수 쌍봉 시립 도서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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