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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Aug 10. 2018

한여름의 블루

Summer Blue

 소나기라도 내려주려는 듯 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다. 덕분에 오늘은 집에서 지낼 생각이다. 한 달 넘게 이어지는 무더위를 피해 출근하다시피 다니는 도서관은 시원하다 못해 춥다는 장점도 있으나, 자유가 없고 느려 터진 인터넷이라는 불편도 있다. 싸구려 노트북도 글 쓰기에는 데스크톱에 비해 턱없이 불편하다.


 한낮에는 34~5℃를 넘나들고 한밤에도 25℃를 훨씬 넘는다. 에어컨 없이는 잠들기도 쉽지 않다.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 없이 지낸 작년보다는 수월하고, 수년 전 에어컨을 점검하느라고 LA 인근 리버사이드 쇼핑몰 지붕 위에서 경험했던 뜨거운 햇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망각이라는 편리한 도구가 어제의 고통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오늘의 괴로움만 불평하게 만든다.


 그날 엄지손가락이 잘리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할 만큼 다치는 바람에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가 3천 불이 넘는 고지서를 받게 된 것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009년 8월의 일이었다.


 며칠 동안 우울한 마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지난 주말 동생 가족이 다녀간 뒤끝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서도 비슷했다. 한국에서 지인이 방문했다가 돌아가는 날, 공항에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이 그랬다. 어떨 때는 무너지는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40년 동안 사귄 친구와 지인들을 버리고, 낯선 땅에 와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놈들과 이 무슨 지랄인가!’라는 자책감을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커다란 덩치의 조카들이 동행한 것은 모처럼의 가족여행이라는 제 엄마의 강요를 이기지 못한 탓일 거다. 술 좋아하고 활력이 넘치는 20대 조카들과 대화하느라 모처럼 말문이 터진 시간이었다. 은퇴한 홀아비가 혼자 사는 곳이라 대접할 수도 없어서 마음이 애잔했는지, 책을 읽지도 글을 쓰지도 못하는 며칠을 보내고 나서야 블루 무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조카들과 함께 지내면서 떠오른 것은 ‘태평성대’라는 단어였다. 길지 않은 육십 평생에서 요즘처럼 태평성대인 대한민국은 처음이었다. 최소한 조카들에게는 그랬다. 35년 전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만났던 미국 젊은이들을 다시 보는 듯했다. 철저한 개인주의와 하고 싶은 일과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다녔다. 신나게 연애를 했고 자유분방하게 취미를 즐겼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 태어났음에도 스스로 공부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해서, 20대에 승용차를 가졌고 1년에 몇 차례씩 해외여행을 다녔다. 35년 전 내가 그 나이 때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 너는 여자 친구도 있는데 언제 결혼할 거냐?

 - 3년 후에 하려고요.

 - 왜 3년이지, 이유가 뭐야?

 - 지금 대학원생이거든요. 졸업하고 취직해서 돈을 좀 벌어야 결혼하지요.

 - 그래라, 어쨌든 라이프플래닝을 잘해서 일찍 너 좋아하는 여행을 실컷 할 수 있게 은퇴를 준비해라.


 찾아간 음식점은 실내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만원이었다. 바깥에 놓인 테이블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여수에 살면서도 처음 온 음식점은 조카들이 인터넷으로 미리 조사한 곳으로, ‘하모(장어 샤브샤브)’를 전문으로 하는 허름한 음식점이었다. 이곳에 1년 살았어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음식이었다. 1인분에 3만 원이나 하는 음식을 기다리며 큰놈과 나눈 대화다. 그 식당의 캐쉬어에 쌓인 매출전표를 보니, 얼추 계산해도 하루 매상이 최소 3천만 원은 될 것 같았다.


 - 삼촌이 그런 말 하실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음식점을 나와 돌아오는 차에서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쁜 여자가 좋지 않으냐는 작은놈의 주장에, 단거리 경주가 아니고 마라톤과 같은 인생에서는 외모보다 지향하는 바가 비슷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더니 녀석이 반응했다. 주장을 좀처럼 굽히지 않는 녀석다운 발언이었다. 젊은이들과 싸워서 어떻게 이길 것인가. 아니, 이긴다고 해서 득 될 것도 없다. 결국, 살아보고 나서야 깨닫는 게 인생 아니던가.


 하하하, 못 들은 척 침묵했다. 하고 싶은 말을 눈치 보지 않고 말하는 자신감이 부러웠다. 약점을 언급할 때 반발하는 것은 약점을 더 크게 할 뿐이니까. 그렇더라도 생각까지 침묵한 것은 아니었다. ‘이 녀석아,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것도 모르느냐, 그래서 내가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 거야!’

 - 인턴 때가 가장 힘들다는데 너는 어떠냐?

 - 괜찮아요, 요즘은 옛날 같지 않아요. 옛날같이 그랬다가는 큰일 나죠!

 대화 소재를 바꾸었을 뿐이다.


 블루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딸아이에게 보낼 패키지 덕분이었다. 출산 예정이 한 달밖에 안 남은 딸이, 미국에는 배냇저고리가 없다는 이유로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건을 소포로 보내 달라며 집으로 배달시켰다. 뜯어본 패키지에 손싸개나 발싸개 같은 작은 헝겊과 함께 있는 배냇저고리를 보니 행복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더는 블루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더위를 피해 도서관을 찾은 덕분에 모처럼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 덕분에 글 소재도 많이 얻었을 뿐 아니라 글쓰기 공부도 되었다. 쓰다가 중단한 소설은 1년이 되었든 2년이 걸리든 완성한 다음에 발표할 생각이다. 제대로 된 글을 쓰려면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적인 책은 ‘열국지’였다. 장장 300페이지 책 10권을 다 읽고, 다른 사람이 번역한 책을 다시 읽고 있다. 원본에 가장 충실하다는 평 때문이다. 이번에는 600페이지 책 다섯 권이다. 다 읽는다면 총 3천 페이지를 읽은 셈이 된다. 천 명이 훨씬 넘는 등장인물과 550년 춘추전국시대를 기록한 연의(註: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소설)라 읽고 나서도,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식자인 척하는 사람들이 곧잘 인용하는 고사성어 대부분이 이 책에서 왔다. 한여름 휴가지에서 읽기에 이만한 책도 없을 것 같다.


 소나기라도 한바탕 쏟아지면 좋으련만, 보낼 듯 말 듯 한 표정만 짓고 있는 하늘이 참으로 인색하다. 아무리 그렇게 붙들고 늘어져도 이번 여름도 끝 무렵이다. 가는 여름을 어찌 잡을 것이며, 오는 가을을 어찌 막을 것이냐!

 남은 인생에서 만나야 할 여름의 숫자가 이렇게 해서 하나 줄었다.


▼ 조카들이 늦잠을 자는 사이에 동생 부부와 미평 편백나무 숲을 찾았다.


▼ 딸아이 페이스북에서 가져온 딸과 사위 사진. 우울해질 때는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에서 활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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