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것의 의미
나이가 들면서 변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노안이 와서 가까운 곳이 희미하게 보이고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은 일반적 현상이며, 신진대사가 떨어져서 쉬 피곤해지고 회복도 늦어진다. 성욕감퇴는 물론 오줌발도 약해져서 소변기에 가까이 다가서지 않으면 엄한 곳을 적시고, 머리숱은 적어지는 대신 귓구멍이나 콧속 털이 삐져나올 정도로 자라서 수시로 관리하지 않으면 추접스레 보이기까지 한다. 젊었을 때의 힘차고 아름다운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물론 대체로 그렇다는 것일 뿐,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젊었을 때 꾀죄죄했던 모습이 오히려 늙어가면서 점잖고 넉넉한 풍채로 바뀌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근시였던 사람이 노안이 오면서 안경을 벗고도 가깝고 먼 곳이 모두 잘 보이는 황금 원시도 드물지만 있다고 들었으나, 그런 행운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라면 늙어가는 모습은 대부분 비슷하다.
하지만 나쁜 점만 존재하는 일이란 없는 것이 세상 이치다. 육체적으로 노쇠해지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자연현상이라더라도 정신적으로는 젊음의 유치함과 옹졸함에서 벗어나 원숙해진다. 사고의 폭과 시야가 넓어지고 이해의 깊이가 더해지며 너그러워진다. 과거에는 눈앞의 이익만 보고 내 앞가림만 해왔다면, 지금은 먼 곳을 보고 자신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이 무엇인지도 제법 따져본다. 이처럼 나이를 먹으면서 육체적 쇠락과 함께 정신적 성숙을 동반하는 것이 보통이다.
현명해지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사람마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서로 다른 이유를 얼마든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풍부한 경험에서 온다든지, 은퇴하고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그렇다든가 아니면 지난날 잘못에 대한 반성과 깨달음이 원인일 수도 있다. 원인을 연역법과 반대인 귀납적 방법으로 따라가 본다.
젊었던 시절에 어리석었던 원인은 주로 교만이었다. 다른 의견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좀처럼 꺾을 줄 몰랐고, 자신의 능력은 외면한 채 만족하지 않았으며, 어리석게 가족에게도 화를 자주 냈다. 지혜를 부르는 것은 겸손이다. 따라서 세월과 동행하는 현명함은 겸손에서 오며 겸손은 죽음을 의식하는 순간 강해진다.
- 선배, 심장 수술하러 병상에 누운 채 수술실 문을 들어가는 순간, 살아서 다시 그 문을 나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 순간 인생관 자체가 송두리째 바뀌는 거야. 살아온 모든 것이 덧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그렇게 흐르더라. 그동안 회사에 충성한 것도, 돈에 집착한 것까지도 쓸데없었다는 느낌이었어. 아내와 딸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그렇게 후회가 되고.
몇 년 전 십수 년 만에 만났던 후배에게 들었다. 직장생활을 같이 할 때 매우 똑똑했던 그 후배가 겸손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수술 앞에서 죽음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역사 속에 존재했던 인류의 스승들이 한목소리로 전하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죽음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겸손이 자리했다.
태어날 때, 자신이 영원히 살 거로 생각하지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자라면서 병이나 사고로 죽는 지인을 보면서 간헐적으로 죽음을 인지하더라도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오만한 탓이다. 세상의 모든 약속 중에서 죽음만큼 완벽하게 지켜지는 약속도 없다. 이미 부모 세대에의 죽음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으며 우리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며 기다려야 할까. 사람마다 다르다. 젊었을 때의 계획을 실천하는 이도 있고, 무언가 생각하며 보잘것없는 글로 옮기면서 시간을 보내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흡사한 것은 나이가 들어 죽음을 의식하면서 겸손해지고, 겸손은 모든 인간에게 사고의 폭과 깊이를 더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오래 살고 싶은 것이 갑남을녀의 인지상정이더라도 죽는 순간까지 오래 걸리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오래 살더라도 뇌졸중으로 쓰러져 움직이지 못해서 똥오줌을 남의 손에 기댄다거나 치매에 걸려 아들을 옛날에 죽은 남편으로 착각하는 삶을 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고속도로에서 졸음운전을 하는 고속버스에 받힌다거나 고층아파트에서 아이가 실수로 떨어뜨린 화분에 맞아 창졸간에 맞이하는 죽음을 원하는 이도 역시 없다.
‘九九팔팔23死’가 모두가 원하는 죽음이라고 해서 모든 이가 그렇게 운이 좋을 수는 없다. 뇌졸중은 1~2분도 안 되는 시간에 죽음에 이르게도 하지만,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고 눈만 멀뚱거리며 10년 이상 살게도 만드는 병이다. 오래 산다고 좋은 일이 아닌 것은 두 말이 필요 없다. 죽음에 대한 희망사항을 요약하면, 길게 살되 고통 없이 신속하면서 우아하게 죽는 것이다. 인지력을 잃지 않고 자신의 손발을 움직여 음식을 먹고 화장실을 다니며 즐거움을 느낄 때까지 말이다.
그럴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한국인의 경우 65~69세 사이 치매 발병률은 약 3%인데 이는 다섯 살이 더해질 때마다 두 배씩 높아져서 80~84세가 되면 4분의 1이 치매환가가 된다. 2012년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의 치매 발병률은 9.18%로 여성이 남성보다 두 배 이상인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인 기대수명이 2017년 기준 90세(여)와 85세(남)인 것과 관련이 깊다.
2016년 28만 명 정도의 한국인이 사망했고, 암(28%), 심장(11%), 뇌혈관(8%) 및 폐렴(6%)과 같은 노인성 질환이 절반을 넘는다. 오래 사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도 수명에 관한 한, 미국인보다는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은 행운이다. 평균적으로 남녀 모두 5년 이상 더 산다. 2015년 미국인 사망자 250만 명 가운데 심장병과 암이 25%를 차지했다. 치매 발병률도 한국보다 50% 이상 높았다.
죽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면 짧은 고통으로 신속한(?) 죽음을 주는 심장병이 최선이다. 불행하게도 통계적으로는 80세 이후 죽음의 60% 이상이 우아한(?) 죽음은 희망 사항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 윤여정이 분한 죽여주는 여자가 있다면(?) 정말 고마운 일이다.
우리 세대는 전쟁이 끝난 직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다. 일반적으로 한국은 1954~1964년의 10년, 미국에서는 1946~1964년 사이의 18년 동안에 태어난 인구로 인구분포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미국에서 태어난 부머(Boomer)를 100명으로 보았을 때, 1명은 16세에 죽고, 마흔 살이 되었을 때 남은 인생은 40년이며, 63세부터 매년 한 명씩 사망해서 75세부터 사망자가 해마다 늘어나서, 100세가 되었을 때는 3명만 남는다고 한다. 작년에 당뇨 합병증으로 작고한 친구도 54년생으로 63세였다. - 한국의 유사한 통계는 찾을 수 없었다.
내년은 가장 빠른 한국의 부머들이 젊은 노인(Young old)이라는 65세로 진입하는 첫해다. 2%의 여성과 1%의 남성에게서 치매 증상이 나타날 것이고 삶의 질은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어떻게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행복한 삶을 이어갈 것인가? 세월이 부머들에게 묻고 있다.
<후기>
이 글은 ‘처음 늙어보는 사람들에게’라는 제목의 책을 읽은 느낌을 정리한 것입니다. 원제는 ‘Old Age: A beginner’s guide’로 미국의 저명한 정치 칼럼니스트 ‘Michel Kinsley (1951~)’가 저술한 책입니다. 저자는 43살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파킨슨병을 진단받고 남들보다 일찍 노인이 되는 경험을 2016년 책으로 펴냈습니다.
글에서 인용한 수치도 대부분 책에서 가져왔으며, 한국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6년 사망원인통계’에서도 인용했습니다.
참고로 보건복지가족부의 지원으로 시행된 2008년 전국 역학조사에서의 치매의 위험인자에 관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 고령(85세 이상이 65~69세에 비해 14.9배), 여성(남성보다 2.85배), 무학(교육연수 7년 이상보다 9.2 배) 이 치매 위험과 큰 연관성을 보였습니다.
- 사별, 이혼, 별거, 미혼 등 결혼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이 치매 위험이 2.9배가량 높았습니다.
- 중강도 이상의 규칙적 운동을 하는 사람의 치매 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교해 약 1/3 수준으로 낮았으나, 운동량 및 운동 종류와 치매 위험 간의 인과관계는 전향적 후속 연구를 통해 규명되어야 합니다.
- 10분 정도 이상의 의식장애가 있는 두부외상의 과거력이 있는 사람은 약 3.8배가량 치매 위험이 컸습니다.
-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약 3배가량 치매 위험이 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