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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Aug 15. 2018

링컨에게 배우는 교훈 - 연장전

 “우리가 간절히 희망하는 것은 하늘의 무서운 응징인 이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250년간 노예들의 무보수 노동의 대가로 축적된 모든 부가 없어질 때까지, 채찍질에 흘린 모든 핏방울이 전쟁으로 인한 피 흘림으로 갚아질 때까지, 이 전쟁이 계속되는 것을 바라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3천 년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지금도 ‘하느님의 심판은 모두에게 참되고 정의롭다.’라고 말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누구에게도 원한을 갖지 말고, 모든 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게 하신 그 정의로움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갖고 지금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끝내기 위해서, 우리 사이의, 그리고 모든 나라와 정의롭고 영원한 평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일을 다 하기 위해 매진합시다.”


 1864년 선거에서 링컨이 재선 할 수 있었던 것은,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승리한 후 전세가 급격하게 북군 측으로 기울어진 덕분이었다. 전쟁 중에는 말을 바꿔 타지 않는다고 했던가. 재선에 성공한 후 링컨은 대통령 취임식 연설을 했는데, 이것은 그의 마지막 연설이었으니 결국 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1865년 4월 남군의 사령관 리가 항복하고 엿새 후에, 링컨은 열성적인 남부 지지자이자 명성에 욕심이 있던 젊은 배우 존 윌크스 부스에게 암살당한다.


 ‘250년간 노예들의 무보수 노동의 대가로 추적된 모든 부가 없어질 때까지, 채찍질에 흘린 모든 핏방울이 전쟁으로 인한 피 흘림으로 갚아질 때까지’라는 문장이 시선을 끈다. 링컨은 보수를 주는 대신 채찍을 사용하여 노예들을 착취한 부(富)를 부당한 것으로 판단했다는 증거다. 그토록 링컨을 괴롭히며 끔찍했던 전쟁을 4년이나 치르면서도, 링컨은 ‘누구에게도 원한을 갖지 말라’고 부르짖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던 때였다.


 이렇듯 관대하고 온화한 성격의 링컨도 용서할 수 없는 이들이 있었다. 분리 독립주의자로 의심되는 사람은 재판 없이 가두거나 구금 조처를 했다. ‘정의롭고 영원한 평화를 이루는 데’ 있어서 분리주의자들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으며 조치는 과감했다. 개인적으로는 불행했지만, 국가의 지도자로서는 더없이 훌륭했다. 나라를 하나로 통합하는데 필요한 화해와 용서에 앞장섰으며 방해되는 요소의 제거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같은 성격의 내란이라도 한국전쟁 당시의 지도자들이 미국 링컨의 대응과 크게 달랐던 것은 친일세력의 개입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대신에 이념을 앞세워 민족의 분열을 꾀했다. 이완용이나 민병석 같은 매국노의 후손들은 좌익세력과 타협하고 절충하는 대신에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을 비껴가기 위해서 그들을 탄압하여 혼란을 일으키도록 충동질을 했으며, 사회 혼란을 그들의 탓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고 그들을 척결하는 선봉대에 섰다.


 냉철히 분석하면 혼란한 시기에 숱한 지식인이 좌익이었던 것은 그들이 그만큼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어느 나라고 좌익사상이 지식인 사이에서 전염병처럼 번지던 시기였다. 따지고 보면 미국 남부가 노예 문제로 연방에서 탈퇴 선언을 한 것도, 노예 제도를 지키는 것이 진영에 이익이 되니까 애국하는 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을사오적이나 경술국적 8인처럼 나라를 팔아먹는 짓은 결코 아니었다. 애국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이었다.


 무지하고 가난한 양민들이 빨랫비누 몇 장, 보릿고개에 사용할 양식 몇 되를 받느라고 ○○동맹이니 △△여맹이니 하는 곳에 가입하여 지장을 찍었다고 해서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 행위는 광기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나라를 팔아먹은 이들의 자식이 경찰서장, 검찰총장을 차지하고 앉아 광기를 부르고 나라를 되찾으려고 재산과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의 자식을 검거하고 재판을 해서 투옥시켰다.


 빛을 찾았다고(光復) 하나 빛은 여전히 친일세력을 위한 것이었고 빛을 찾아 투쟁했던 이들에게는 여전히 어둠만 존재했다. 링컨의 연설에 따르면, 일제 36년 동안 왜놈들에게 흘려야 했던 핏방울에 대한 대가가 공정 무사한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아직 부족한 모양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증오에는 증오, 학살에는 학살로 대응하는 모습이, 왼뺨을 때리거든 오른쪽도 내밀라는 사랑의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많이 부족할 듯도 싶다.


 언어도 다른 사람들과는 몇 년을 타협하고 절충해서 그 어려운 FTA도 타결하면서, 통역이 필요 없는 사람들은 네 탓이라며 손가락질만 할 뿐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것은 이유를 막론하고 누군가의 잘못이다. 링컨에게서 교훈을 배워야 하는 이유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문제에 집착해서 미래를 외면하는 것은 현명한 사람의 일이 아니다. 후손들에게 갈등의 씨앗을 대대로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링컨을 롤모델로 삼았던 대통령이 있었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그는 세계에서 링컨의 전기를 쓴 유일한 대통령이었고 책은 링컨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양극으로 분열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미국 역사상 가장 심하게 분열되었던 시대에 나라를 분열에서 구한 대통령에게 교훈을 얻고 싶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는 인생까지도 링컨을 닮았다. 남부와 북부 모두에게 비판을 받았던 링컨은 사후에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고,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비난을 받았던 대통령은 죽은 지 10년이 다 된 지금, 진보나 보수, 여야 구분 없이 모두가 그의 정신을 언급하고 있다.


 심지어 ‘환생경제’라는 제목의 15년 전 국회 연극에서 극 중 부녀회장(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박순자 의원)이 대통령을 풍자한 극 중 ‘노가리’에게 “육실할 놈”, “개잡놈”,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불알 값을 해야지”, “죽일 놈”, “거시기 달고 다닐 자격도 없는 놈” 등의 막말을 했던 지금의 자유한국당이 비대위원장으로 당시 정권에서 장관을 지낸 김병준 씨를 임명했다는 것이 격세지감을 생각하게 만든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현명하고 어진 이들은 생전에 핍박을 받다가, 죽은 뒤에야 재평가되고 인구에 의해 칭송되었던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링컨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분열되는 것을 막았듯이, 링컨을 닮고 싶어 했던 대통령의 정신이 빛을 발휘해서, 73년 동안 계속되어 온 갈등을 풀고 반만년의 역사를 하나로 이어가는 기적을 창조하기를, 일흔세 번째 광복절을 맞이해서 간절히 소망해본다. (끝)


 <후기>

 주제넘은 글이라 조심스럽게 쓰느라 힘이 들었습니다. 게르만 민족에게 히틀러와 같은 존재인 김일성의 악행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네 탓 내 탓을 따지는 것은 달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 따지는 것과 같이 끝없는 소모전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 한쪽의 잘못만 언급한 이유이었습니다.


 개인의 갈등이든 집단의 싸움이든 갈등을 해소하고 싶다면, 자기 쪽 잘못부터 인정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국리민복을 도모하는 지도자라면 반드시 합의점은 있습니다.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는 그들의 몫이고,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겠지요. 이런 문제에 관심이 가는 것을 보니 나이를 먹긴 먹은 모양입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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