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준의 하숙생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없이 흘러서 간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없이 흘러서 간다
내 인생 최초의 18번이었을 거다. 어렸을 때 라디오만 틀면 시도 때도 없이 노래가 흘러나왔고, 젊었던 엄마는 뜨개질하거나 구멍 난 양말을 깁다가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하숙생이라는 노래가 발표되었을 때가 1965년이었으니까, 용산에 살며 한강 국민학교에 다녔던 시절이었다.
엄마를 따라 흥얼거리던 꼬맹이는 저절로 가사를 외웠다. 크레용으로 그린 풍경화가 눈앞에 나타난다. 차가 다니는 신작로에서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듯한 좁을 골목으로 들어선 후, 왼쪽으로 한 번 꺾어져 몇십 미터를 가면 녹색 페인트칠을 한 대문이 왼쪽에 나타난다. 허리를 숙여야 하는 쪽문을 열고 들어서면 손바닥만 한 마당이 있었고 오른편에는 수돗가가 자리했다.
마당을 비스듬히 가로질러 오른쪽에는 부엌의 입구가, 왼편 윗부분이 유리로 된 미닫이가 마루를 통해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마루의 오른쪽에 안방, 맞은편에 건넌방이 자리했다. 창호지로 된 미닫이를 열고 안방에 들어서면 무언가 하는 엄마가 오른편 아랫목에 보였다.
미닫이 오른쪽 위에 걸린 작은 선반에 메줏덩어리만 한 크기의 파란색 라디오가 얹혀 있었다. 뒤쪽이었는지 앞쪽이었는지, 우측이었는지 좌측이었는지, 한 곳이었는지 두 곳이었는지도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두 군데는 깨진 흔적도 있었다.
온·오프 스위치와 볼륨을 겸한 다이얼을 시계방향으로 돌려 라디오를 켜면 소리가 나오기까지 한참 걸렸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엄마를 본 기억이 없고, 라디오 소리 없이 무언가 하는 젊은 엄마의 기억도 없다. 엄마의 두 손은 뜨개질이나 바느질로 잠시도 쉬지 않았고, 라디오 또한 소리 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인새앵은~♬ 나그네길~~♪’
라디오를 따라 엄마가 흥얼거렸고, 뜨개질하는 엄마 옆에 엎드린 채, 숙제를 끄적거리며 나는 엄마를 따라 최희준을 흉내 냈다. 어린 마음에도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를 따라 하고 싶었으나, 변성기 전 꼬맹이에게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엄마, 강화도령 시작했어!”
엄마가 설거지하는 부엌을 향해 소리치면, 엄마는 하던 일을 멈추고 젖은 손을 행주치마에 훔치며 쫓아 들어와 라디오 밑에서 귀를 기울였다. 아, 그랬다, 그때만큼은 엄마의 두 손도 가만히 있었구나! 청각을 시각으로 바꾸는 특별난 재주가 엄마에게 있었는지 모르겠다. 꼼짝 않고 라디오 밑에서 소리에 그토록 집중했던 걸 보면.
그 재주를 조금은 물려받은 것일까. 최희준 씨의 사망 뉴스에 나는 색 바랜 마음속 도화지를 꺼내놓고 크레용으로 열심히 칠했다. 아버지의 막걸리 심부름을 다니던 골목길에는 회색을, 대문에는 초록색을, 그리고 귀퉁이가 깨진 라디오에 파란색을 입혔다. 그곳에는 구름이 흘러가듯, 강물이 흘러가듯 그렇게 흘러가신 부모님이 계셨고, 기저귀를 찬 동생도, 숙제하는 나를 방해하는 동생도 있었다.
- 하숙생의 원로가수 최희준 씨가, 그가 불렀던 가사처럼 영원한 나그네 길로 떠났습니다.
엊저녁 뉴스에서 여성 앵커가 전했다.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코멘트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나그네 길을 떠났다고? 천만의 말씀! 나그네 길을 떠난 것이 아니라, 피곤했던 나그네 길을 이제야 끝내고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는 게 맞는 표현이라네! 이 엉터리 같은 친구야.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한 번이라도 보시게나!
‘인생은 나그네 길’로 시작하는 노래 하숙생은, 빛바랜 흑백사진이나 크레용을 잔뜩 칠한 도화지처럼 빈 여백이 전혀 없는 그림과 같은 추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