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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Aug 29. 2018

열국지로 읽는 오늘 (2)

 지난 글에 이미 언급한 대로 열국지가 지루한 까닭은 너무 많은 인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백 페이지 안팎을 읽으면 나라와 등장인물이 모두 바뀌거나 시간을 거슬러 오가기도 한다. 그런데도 읽는 재미가 있었던 것은 교수나 정치인 등 소위 식자(識者)라는 인물에 의해 자주 인용되는 사자성어의 출처라는 것과 작금 벌어지는 한국 정치나 세계정세를 이해하는 통찰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몇 개의 인상적인 명문(名文)이나 사자성어를 나열해본다.


○ 好事不出門, 惡事傳千里: 좋은 일의 소문은 널리 알려지지 않고 나쁜 일은 원하지 않아도 천리까지 간다.

○ 亡者不會, 會者不忘: 서두는 자는 일을 잘하지 못하고, 일을 잘하는 자는 서둘지 않는다. 

○ 동호직필(董狐直筆):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실을 기록하는 진(晉)나라의 사관 동호의 사례로, 소설의 배경이 된 역사가 기록에 의한 것으로 사실에 기반한다는 것을 의미.

○ 가도멸괵(假途滅虢): 길을 빌려 괵나라를 멸하다. 순망치한이라는 고사로 괵을 멸한 다음 길을 빌려준 우나라도 결국 멸망한다.


 이외에도 이미 잘 알려진, 관포지교, 결초보은, 문경지교, 오월동주, 와신상담, 합종연횡 등 수많은 사자성어의 출처가 되는 연의 소설로, ‘동주(東周)열국지’라고 불리는 까닭은 절세미인 포사(褒姒)에 의해 기울어진 주(周)나라가 서융의 침략을 피해 동쪽으로 천도하면서 열린 춘추시대와 함께 이야기가 본격화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임금이나 현재의 대통령이 막강한 권력자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전적으로 인사권 때문이다. 사사로운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백성과 나라를 위하는 충신을 등용하면 그 나라는 부강해지고 백성은 편안해졌으며, 뇌물을 받으며 사사로운 이익에 의해 국정을 운영하면 그 나라는 약해지고 백성들의 삶은 피곤해진다는 것이 이 책의 전하는 교훈으로 그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최순실이라는 사적 관계인을 가까이하는 바람에 탄핵 된 박근혜 대통령의 간신 등용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부친 박정희 대통령도 차지철이라는 간신을 가까이하는 바람에 죽임을 당했으며, 이승만 대통령도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는 말로 대변되는 간신들 탓에 국민에게 쫓겨나고 말았다. 만일 열국지를 읽었어도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책을 읽는 동안에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열국지는 모든 치자의 교과서로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나라의 환공이 춘추 5패의 첫 번째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오로지 관중을 재상에 기용하고 모든 정사를 그에게 맡긴 덕분이었다. 관중은 환공이 임금 자리에 오르기 위해 제나라로 돌아갈 때, 자신이 섬기는 주군을 임금으로 만들기 위해 환공에게 화살을 쏘아 죽이려고 했던 인물이었다. 그런 원수를 포숙자의 건의를 받아들여 재상에 임명했다. 관중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환공이 묻는다.


 - 우리 제나라는 선군이 정치를 방만히 하여 무척이나 혼란스럽게 되었소. 앞으로 무엇을 해야만 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겠소?

 ○ 예(禮), 의(義), 염(廉), 치(恥)는 사유라 하며 나라의 근본입니다. 지금 제나라의 어지러움은 모두 이 사유가 해이해졌기 때문입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법입니다. 주공께서는 먼저 나라의 법을 두루 살피시어 무엇이 백성에게 진정으로 도움을 주는 법인지 또 무엇이 백성을 해롭게 하는 법인지를 잘 가려내어 좋은 것을 남기고 나쁜 것을 없애버리십시오. 또 그렇게 법을 정한 뒤에는 함부로 법을 고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법을 정한 뒤에 주공께서는 몸소 모범을 보이시어 법을 지키십시오. 그러면 자연 백성도 주공을 따라 법을 지킬 것입니다.

 - 백성들이 법을 지키면 백성들을 잘 부릴 수 있소?

 ○ 아닙니다. 법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백성을 잘 부릴 수 없습니다. 백성을 부리고자 하면 먼저 백성을 사랑해야 합니다.


 - 어떻게 하는 것이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오?

 ○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백성에게 안정을 주어야 합니다. 사람이란 집안의 곡식 창고가 가득 차야만 비로소 예의를 알게 되고 의식이 풍족해야만 염치를 알게 되는 법입니다. 선비와 농민과 장인과 장사치를 사민이라고 합니다. 농민은 농사를 짓고 장인은 물건을 만들고 장사치는 장사를 하되, 못된 관리나 권세 있는 자가 함부로 이를 빼앗지 못하게 하면 모두 그 일을 열심히 배우고 익혀 각자 생업을 천직으로 여기고 열심히 종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백성이 안정될 것입니다.


 - 백성이 모두 생업에 안정되게 종사한다면 나라가 부유해질 수 있소?

 ○ 백성들이 모두 생업에 열심히 종사하는 것만으로는 나라가 부유해질 수 없습니다. 풍년이 들어 농사꾼의 창고에 곡식이 가득하다 할지라도 그 백성이 먹고 남은 것이 썩어 버린다면 풍년이 들었다 한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장인이 좋은 물건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사는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곡식과 물건이 잘 유통되어야만 비로소 그 쓰임을 다한다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주공께서는 광산을 개발하여 구리를 캐낸 뒤 이를 녹여 돈을 만드십시오. 세상에 물자가 원활히 유통되려면 가장 먼저 돈이 필요합니다. 우리 제나라는 동쪽 바닷가에 있어서 소금이 많이 납니다. 또한, 바다 생선은 제나라 특산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제나라의 소금과 바다 생선은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원하는 것입니다. 주공께서는 이런 물건들을 임치(서울)로 모아 각국에서 온 상인들에게 파시고 또 임치에 상인들이 불편 없이 지낼 수 있는 시설을 만드십시오. 그렇게 하면 천하의 상인들이 모두 제나라로 몰려들 것이고 우리 제나라는 자연히 부유해질 것입니다.


 - 나라가 부유해져도 군사가 약하면 어떻게 하오?

 ○ 군사라는 것은 예로부터 그 정예함을 중시하지 숫자를 중시하지 않는 법입니다. 만약 주공께서 백성을 징집하여 많은 병사를 거느리면 이웃 나라에서도 백성을 징집하여 군사의 수를 늘릴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함께 나라를 피폐하게 할 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지금 천하의 대세를 보면 정예한 병사 3만이면 능히 천하를 종횡할 수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백성 중에서 건장한 자 3만을 가려 뽑아 갖추어 두고 항상 무예를 익히게 하십시오. 이들에게 녹봉을 넉넉히 주고 항시 훈련을 시켜 둔다면 군사의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 나라가 부유하고 군사들이 강하면 능히 제후들 위에 군림할 수 있소?

 ○ 안 됩니다. 군사가 강하고 나라가 부유할지라도 주(周)왕실을 업신여긴다면 천하의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습니다. 천하의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는데 어찌 제후들이 복종하겠습니까. 주가 비록 쇠퇴했다 하지만 천하의 사람들은 모두 주왕실을 우러러보고 있습니다. 이전에 정(鄭)장공이 천하를 종횡하여 적수가 없었지만 아무도 그를 받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모두 정장공이 주왕실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주공께서는 정나라의 일을 교훈 삼아 항상 주왕실을 극진히 받들어 모시십시오. 왕실은 존중하고 이웃 나라와 친교 한다면 장치 폐업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소?

 ○ 나라의 방비를 굳게 하고 이미 침범하여 빼앗은 남의 나라 땅을 돌려주고, 다시 가축과 폐백으로 우호를 맺고 남의 나라 재물을 탐하지 않으면 천하의 모든 나라가 우리와 친교를 맺고자 할 것입니다. 그리고 천하에 사람을 풀어 널리 어진 사람을 구하고, 또한 그들로 하여금 천하의 정세를 살피게 한 뒤에 잘못 있는 나라만 공격하여 땅을 넓히고, 죄 있는 이만 골라 죽여도 능히 천하에 그 위엄을 떨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신다면 주공께서 비록 거절하신다 하더라도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주공에게 방백의 자리를 권할 것입니다.


 - 과인은 사냥과 여자를 좋아하오. 이것이 패자가 되는데 해롭지 않겠소?

 ○ 해롭지 않습니다.


 - 그럼 무엇이 해롭소?

 ○ 어진 이를 알아보지 못하면 해로우며, 어진 이를 알아보고도 쓰지 않으면 해로우며, 어진 이를 쓰되 신임하지 않으면 해로우며, 어진 이를 신임하되 소인을 참석시키면 해롭습니다.


 이 부분을 몇 번씩 읽으며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하여 노트북을 켜고 타이핑을 했다. 이게 어찌 2,700년 전에만(관중은 기원전 645년에 사망) 적용되는 논리란 말인가. 관중이 재상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면서 제나라의 국력은 크게 신장했고 환공은 모든 제후국을 다스리며 주왕실을 섬기는 첫 패자가 된다.


 패자가 된 후 제환공이 모든 제후국 군주들과의 회합에서 맹세한 내용은 이렇다.


 첫째, 불효한 자를 벌하고 세자를 바꾸지 않으며 첩으로 정실을 삼지 않는다.


 둘째, 어진 이를 존중하고 인재를 기르며 덕 있는 이를 표창한다.


 셋째, 노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아끼며 손님과 나그네를 소홀히 않는다.


 넷째, 선비는 관식을 세습하지 않으며 관의 일을 겸하지 않으며 선비를 등용할 때는 반드시 어진 이를 등용하고 함부로 대부(장관급 중신)를 죽이지 않는다.


 다섯째, 물길을 굽히지 않을 것이며 양곡을 거래하는 일을 가로막지 않으며 나라의 중요한 일은 맹주에게 반드시 보고한다.


 그러나 환공은 골방에 갇힌 채 홀로 비참하게 죽는 종말을 맞는다. 관중이 죽고 난 후 간신들을 가까이한 탓이었다. 원래의 세자를 폐위하고 애첩의 자식을 세자로 옹립하는 통에 자식들 간에 반란이 일어났다. 주위에 충신이 사라지자 다른 이들에게 강조했던 첫째 서약조차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모순을 범했다.


 이는 오늘에도 얼마든지 교훈이 된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공직자를 숙청했던 이명박 대통령과 정유라가 승마대회에서 준우승한 사건을 제대로 감사했던 노태강 문체부 체육국장을 좌천시킨 박근혜 대통령의 비참한 말로가 제환공의 그것과 오버랩되었다.


 어찌 한국뿐이겠는가! 미국의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다는 이유로 CIA 코미 국장을 해고한 것과 틸러슨 국무장관의 트윗 해고도 어처구니없지만, 존 매케인 같은 자타가 인정하는 애국자로부터 배척을 당한 것도 그가 혼군임을 증명하는 사실이다. 당장은 주가가 오른다며 좋아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근시안적일 뿐 궁극적으로는 미국에 해롭다는 것은 역사를 보면 명확관화다.


 혀끝에 단 것은 몸에 나쁘기 쉽고, 좋은 약일수록 입에 쓰다는 것이 오래전부터 알던 교훈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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