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BI에 대해서
2016년 3월에 벌어졌던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은 인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대사건으로 역사는 기억할 것으로 생각한다. 모르긴 몰라도 인간의 달착륙이나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지동설에 버금갈 업적으로 후손들은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학습하는 기계가 인간의 사고력을 넘어선다는 것을 입증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랬기에 알파고 개발자 ‘데미스 하사비스’뿐 아니라, ‘에릭 슈미트’나 ‘세르게이 브린’까지 한국을 찾았을 것이다.
인간의 가치는 사고력에서 온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의 지적 활동은 사고력이 중심이며 사고력은 각자가 가진 재능과 지식에 따라 가치가 크게 변한다. 쉽게 말하면 인간의 생산 활동은 지식에 기반을 두며 지식이 많을수록 생산력이 향상한다. 학력이 높을수록 더 많은 임금을 받는 논리와 같다. 교수나 판검사만이 아니라 정치인도 학력이 높을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은가.
좌와 우,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치고받는 정치도 따지고 보면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최고의 방법을 찾자는 목적의 사고력 싸움이다. 경선을 거쳐 후보를 결정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국회의원이나 지방단체장과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도 국리민복 증진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찾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스스로 학습해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기계가 등장한다면 모든 것은 달라진다.
과거 수천 년 동안 발생한 모든 경우와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난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인공지능에 맡긴다면, 꼴 같지 않은 정치인들을 안 보고 살 수도 있지 않을까. 게다가 기계는 사리사욕이 없어서 뇌물을 받지도 않을 것이고 부정채용 압력도 넣지 않을 것이니, 정의와 공정함이 실현되는 꿈같은 사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난 30년간의 직장생활을 돌이켜보면 어느 하나 인공지능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이 없다. 있었다면 퇴근 후 동료들과 어울려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며, 낮 동안에 있었던 스트레스를 푸는 일 정도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란 게 지난 업무를 분석하고 평가해서 계획을 수립하고, 예하 사업장에 실행시키고 감독하며, 결과를 종합해서 보고서로 만드는 일이 쳇바퀴 돌 듯 반복된다.
아이큐 150이 넘는 천재로 십 년을 넘게 온 힘을 다해 공부한 이세돌을 스스로 학습해서 1년 만에 꺾는 알파고라면, 평범한 인물이 하는 그런 일쯤이야 식은 죽 먹기보다 간단할 것이다. 알파고는 이세돌과의 네 번째 대국에서 패한 뒤 한 번도 패하지 않았으며, 세계랭킹 1위인 중국의 커제마저 꺾은 후에는 바둑계에서 은퇴하고 사라졌다. 하사미스가 알파고에게 주식거래를 학습하게 시킨다면 세상의 모든 돈은 그의 것이 될지도 모른다. 요행수를 바라며 아전인수로 생각하는 인간은 알파고의 적수가 될 수 없다.
한국은 내년 최저임금의 여파로 시끄럽다. 자영업자들은 폭우가 쏟아지는 광화문에서 분노의 행진을 했다고 한다. 수입이 많아져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급여를 줘야 하는 반대편에서는 고통받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자본주의에서 약자와 강자 싸움의 결과는 뻔하다. 문제는 받는 종업원이나 주는 자영업자나 모두가 약자인 경우다. 건물주나 프랜차이즈 업체 같은 진짜 강자는 약자 뒤에 숨어 드러나지 않는다.
최저임금은 약자를 위한 좀처럼 드문 법이다. 강자들이 이를 그냥 두고 보기만 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알파고는 최저임금을 원하지 않는다. 게다가 소프트웨어란 어떤 비용도 없이 무한 복제가 가능하다. 운전은 자율주행으로, 식당 종업원은 로봇으로, 캐쉬어는 무인점포로, 딜리버리는 드론으로 대체하면 된다. 향후 10년 이내로 현재 존재하는 40% 이상의 직업군이 사라질 거라는 뉴스도 있다. 살아온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주목을 받던 내비게이션이나 MP3 플레이어, 만보기는 스마트폰이 일반화되자 자취를 감추었다. 20년 전에는 어느 길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DP&E 간판도 지금은 볼 수 없다. 3~40년 전 처음 IT에 종사했을 때 상상했던 대부분이 실현된 것은 물론, 그 이상이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는 것으로 판단할 때, 지금 상상하는 것들도 더 빠른 속도로 그 이상의 것을 현실화시킬 것은 확실하다.
단순한 지식을 반복적으로 가르치는 선생 같은 직업은 물론이고, 소방이나 경찰 같은 위험한 업무도 자동화나 로봇으로 대체가 충분히 가능할 뿐만 아니라, 판검사나 의사 같은 전문지식이 있어야 하는 직업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나는 글을 쓸 때 ‘아래아 한글’을 사용한다. 항상 최신 버전을 사용하는데 맞춤법 교정에 관한 한 환상적이다. 단순한 교정이 아니라 문장 내용을 인식하고 문맥에 알맞은 문구를 우선순위를 정해 제시해준다. 예를 들면, ‘최선의 방법’이라는 구절을 ‘제일 나은 방법’으로 고쳐주는 식이다.
아직은 초보적이지만 인공지능이 포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기능이 더 발전한다면 글에 대한 주제와 소제, 글의 길이만 간단하게 입력하면 프로그램이 알아서 글을 써주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40여 년 전 나는 변전소라는 시설을 자동화하는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나의 변전소를 주 7일 24시간 운영하는데 보통 7명의 교대근무 인원이 필요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아주 단순했다. 변압기를 감시하고, 계기를 읽고 기록하거나 스위치를 올리고 내리는 일이었다. 그때는 변전소 직원이 당연했으나 지금은 변전소에 근무자가 있는 것이 이상하다.
무엇을 의미할까? 40년 전에는 눈으로 계기를 읽고 기록할 줄 알아도 충분한 직업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런 직업은 없어졌다는 뜻이다. 대신 컴퓨터에 의해 기록되고 조작되는 시스템을 이해하고 설계하는 능력이 필요해졌다. 고등학교는커녕 대학을 나와도 쉽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대학을 나온다는 것은 예전의 중학교 정도의 학력이 되고 말았다. 석사도 모자라서 박사가 되어야 경쟁에 이겨서 제대로 된 직업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나는 그나마 운이 좋아서 대학을 나오고도 직업다운 직업을 갖고 살았다. 겨우 대학을 졸업한 내 아이들까지는 불확실하나 나처럼 은퇴하기 전에 걔들이 하는 회계나 설계, 개발 등의 일은 인공지능으로 넘어갈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석사나 박사가 될 수도 없다. 나는 지난 주말 공식적인 할아버지가 되었다. 외손녀가 출생했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모른다. 그전에 죽을 테니까. 그래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그 아이가 내 나이가 되는 6십몇 년 후면 인공지능과 로봇에 둘러싸여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여수에 살면서 대부분의 생필품을 인터넷에 의존하는 탓으로 마트에 갈 일이 없다. 육류는 물론이고 쌀이나 채소, 과일까지 인터넷으로 주문한다. 싼 것은 물론이고 현관까지 배달해주는 편리함까지 있다. 신선도를 요구하는 막걸리나 우유 같은 것은 가까운 슈퍼에서 구매하면 된다. 나 같은 사람이 점점 많아지면 마트나 시장은 사라질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자율주행 자동차와 드론만 있으면 된다. 천정부지의 건물 임대료도 그때는 껌값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의 가임여성 1인당 출산율이 0.97로 1명 이하로 떨어진 것은 유사 이래 세계 최초라고 한다. 42년 후인 2060년이 되면 한국은 10명당 65세 노인이 4명이나 된다며 호들갑을 떤다. 정부는 집값을 떨어뜨려야 함은 물론이고,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을 높여 결혼하고 출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최저임금도 올리고 셋을 가진 가정에 주는 각종 혜택을 두 명의 아이를 가진 세대까지 확대한다고 한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올리면 자동화는 더 빨리 진행되고 일자리는 더 빨리 없어질 것도 확실하다. 더군다나 IT 선진국 한국 아닌가. 깨질 것이 무서워 내려놓지도 못하고, 들고 있자니 힘이 들어 팔이 빠질 것만 같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방법은 없을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