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BI란?
차를 쓸 일이라고는 도서관이나 마트에 갈 일밖에 없으니 99.9%는 주차장에 세워져 있다. 생산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제로에 가깝다. 반세기 전 전화를 위한 통신망이 거의 전부였을 때는 전화기를 들지 않으면 신호를 전달하기 위한 구리선은 빈 상태였다. 전화를 사용할 때만 전기 신호로 바뀐 음성이 빛의 속도로 통과하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구리선에 존재한다. 99.9%는 전봇대 위를 지나거나, 땅속 배관 속을 지나는 구리로 만든 전선은 사용되지 않았다. (이해가 쉽게 기술적 디테일을 생략했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사람(음성)이 아닌 기계(컴퓨터)가 통신망을 접수하자, 1%도 사용하지 못했던 구리선의 이용이 99% 이상으로 높아졌다. 사람과 달리 컴퓨터는 전원만 켜놓으면 휴일도 없이 밤새도록 동영상이나 음악 등 미디어 데이터를 실어 날랐고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는 돈을 벌었다. 이용률을 높여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가치가 창조된 것이다.
나이키는 생산공장을 갖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공장 하나 없이 하도급 업체만 거느리고 세계적인 회사가 되었다. 디자인과 마케팅, 품질만 관리하면서도 운동화로 시작해 패션과 생활용품까지 점령하며 세계적인 회사가 되었다. ‘우버(Uber)’는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도 세계적인 운송회사가 되었으며, ‘에어비앤비(Airbnb)’는 호텔이나 모텔 없이도 세계적인 숙박업체가 되었다.
1,550억 달러의 자산가로서 세계 최고 부자로 알려진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를 위해 일하는 직원들 3분의 1이 저소득층 지원제도인 푸드스탬프를 이용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온라인 도서 판매로 시작한 아마존은 농장이나 공장 하나 없이 이 세상에서 거래되는 모든 상품을 팔고 있으며, 끊임없는 자동화와 무인화로 미래의 상거래를 혁신함으로써 가장 가치 있는 회사로 등극했다.
세계 최고 부자와 그 부자를 위해 일하는 저소득층 직원이라니, 이 얼마나 기막힌 조합인가! 이보다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해주는 것은 없다. 물론 아마존의 모든 직원이 저임금을 받지는 않는다. 저임금으로 사람을 고용할 수 있는 환경(플랫폼)을 개발하는 직원들에게는 엄청난 대가를 지급할 게 틀림없으며, 그들은 스탠퍼드나 UC에서 석사나 박사학위를 받은 첨단지식의 소유자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개발한 플랫폼에 의해 저소득 직원들의 일자리마저 사라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한국에 최저임금이 시행된 것은 1988년이었는데 시간당 462.5원이었다. 내년이 8,350원이니까 31년 만에 18배가 된 셈이다. 1인당 국민소득 통계가 나와 있는 2017년을 1988년과 비교하면, 국민소득이 7.4배 오를 때 최저임금은 그 두 배인 14배가 올랐는데 이는 첫 최저임금이 너무 낮게 산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1988년 말 환율을 적용했을 때 약 67센트로, 올림픽을 전후해서 연평균 성장률이 10%가 넘었던 그야말로 최고의 호황기였으며, 말단 과장으로 직장 생활하는 내 월급도 다달이 올랐던 기억이 있다.
적은 금액에서 출발한 최저임금의 14배는 국민소득 평균치의 7배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 최저임금소득은 평균소득과 비교하면 몇 분의 1에 불과하다. 절대 금액의 차이는 훨씬 더 벌어졌다. 여기에 숨겨진 사실도 있다. 당시 신(神)과 다름없던 사장의 월급이 하찮은 신입사원의 10배를 넘지 않았다는 거다. 이미 미국에서는 수십 배나 수백 배 많았으나 한국에서는 공식적인 차이만큼은 크지 않았다. 지금은 달라졌다. 미국과 차이가 없다. 수십 배를 넘어 수백 배를 받는 임원이나 CEO도 많다.
삼성전자의 이 회장이나 현대자동차의 정 회장의 연봉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돈은 어디서 올까. 그것은 삼성전자의 하도급 업체나 현대자동차의 인력파견회사의 계약직에서 올지도 모른다. 반도체 제조 설비에서 발암물질에 노출된 채 일하는 10대 여공들의 위험에서 올 수도 있고, 정규직원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반의반에 불과한 보수를 받는 계약직 직원에게 돌아갈 급여일 수도 있다.
과거에 미국에서 일했던 회사도 그랬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말단 직원은 시간당 10불이나 12불 정도의 임금으로 채용했다. 생산성은 직원의 숙련도가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 개선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저임금을 주는 대신 프로그램을 개선하거나 그들이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직원들은 꽤 괜찮은 보수를 받았다. 저임금의 현장 직원들은 수시로 회사를 떠났어도 고임금 직원들은 자리를 지켰다.
내가 만든 역이민 카페는 ‘Daum’이라는 포털에 있다. ‘Daum’이나 ‘Naver’ 같은 포털에 그들이 생산한 콘텐츠는 거의 없다. 플랫폼만 제공할 뿐이다. 거의 전부가 신문이나 방송이 제작한 것이거나, 카페나 블로그 가입 회원이 작성한 것이다. 지난 8년 동안 나는 1,500개가 넘는 글을 게시했으며 회원은 7천 명이 넘고 하루 방문자만 3천 명에 이른다. 이런 카페가 포털마다 수만 개에 달하고 회사는 카페 하단에 ‘프리미엄 링크’라는 광고로 수익을 낸다. 네이버를 창업한 이해진 씨는 20년 만에 한국 30위권의 부자가 되었고 구글은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되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번다는 속담이 이보다 어울릴 수가 없다. 최저임금을 받고도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이나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 혹은 자동화나 무인화로 최저임금 일자리마저 없애는 기술을 만드는 사람들은 엄청난 부를 누리는 대신, 저소득으로 살아야 할 사람은 점점 많아지고 최저임금을 받는 일자리마저도 점점 줄어드는 사회가 된 것이다. 즉, 양극화가 심화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완벽해졌다.
이런 시스템 하에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가능할까? 소득주도 성장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을까? 양극화가 해소될까?
미국이나 한국이나 경쟁 사회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경쟁에서 압도적 1위인 구글 주변 주택은 부르는 게 값이다. 경쟁이 바로 싸움이라면 승리하기 위해서는 좋은 무기가 많아야 한다. 무기는 지식과 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무기이자 권력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의 자녀가 석·박사를 따려고 대학원에 진학할 확률은 거의 없다. 전 세계에서 대학 학자금이 비싸기로 1위와 2위인 미국과 한국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힐러리와 경선했던 샌더스 상원의원이 주장한다. 아마존의 CEO 제프에게 아마존 직원들에게 주는 푸드스탬프 비용을 세금으로 청구하자는 것이다. CEO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주기 위해 저임금을 받는 직원들에게 지출되는 세금을 직접 거두겠다는 발상이 꽤나 공정해 보인다. 두어 달 전 서촌 ‘궁중 족발집’ 사장이 건물주에게 망치를 휘두른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다. 임대수입을 노리고 건물을 매입한 새 건물주가 임대료를 네 배나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작년 여수를 방문한 분에게 들었다. 어렸을 때 종로에 살았던 그분의 친구 가운데 빌딩 소유자가 있다. 한 달 임대료 수입만 1억에 이른다. 룸살롱에서 친구들과 예사롭게 천만 원을 쓸 수 있는 것도 불로소득이기에 가능하다. 아무리 자기 돈이라고 하나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역사를 돌이켜보면 모든 전쟁의 발단에는 항상 양극화가 있었다.
이 모든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는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아직 극소수이긴 하지만 일부 학자나 정치인의 주장에 의하면 있다고 한다. 바로 UBI(Universal Basic Income, 일반 기본소득)가 그것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