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 상류사회, Newness
공작(工作)
배우 황정민이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 볼 정도로 그의 팬이다. ‘너는 내 운명’이라는 영화를 우연히 본 이후 그의 연기에 매혹당하고 말았다. 한국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장동건의 연기를 보고서 달라졌고, ‘너는 내 운명’에서 황정민이 전도연을 면회 간 유치장에서 사랑한다며 울부짖는 명장면을 보고 완전히 빠졌다.
그가 출연한 ‘행복’이나 ‘신세계’ 같은 영화를 지금까지 기억하는 것은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좋았다는 점도 있지만 그의 빼어난 연기력이 없었다면 그저 그런 영화로 남았을 수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에 대한 선입관은 신성일과 엄앵란이 나오는 옛날 영화에서 대역한 성우의 어색한 목소리였다. 성우가 대역하지 않게 되고 연기력이 음성 영역까지 확장되면서 영화의 질적 수준이 혁신적으로 향상되었다.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을 가진 ‘박채서’라는 실제 인물을 영화화한 ‘공작’은 스파이물로 영어 제목은 ‘북으로 간 스파이(The spy gone north)’다. 영화 자체는 생각만큼 재미없었다. 스파이물치고는 액션이 없어서 밋밋하고 긴장감을 억지로 유발하려는 시도는 유치해서 긴장은커녕 몰입도를 떨어뜨렸으며, 배역이 잘 맞지 않은 탓인지 황정민의 연기도 별로였다.
그래서일까, 영화보다는 실제 사건이 흥미를 더 자아냈다. 지난 9월 8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나는 조국을 배신하지 않았다 - 흑금성, 두 개의 공작’을 방영했다. 박채서 소령은 뛰어난 군인임에도 3사관 출신이라는 배경 때문에 야전군 지휘관에 보직되지 못하자 다른 길을 찾는다.
당시 안기부에 소속되어 신분세탁을 거친 후 사업가로 변신하여 북한의 대외경제협력부를 접촉한다. 임무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현황을 조사하는 것으로 그의 공작은 거의 성공해서 북한의 김정일을 면담하는 단계까지 이른다. 얼마나 사실적으로 묘사했는지는 몰라도 김정일 면담 장면은 신선해서 인상적이었다.
1997년 대선에서 DJ에 대한 국민지지도가 올라가자 DJ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안기부는 북풍을 기획하고는 북쪽에 거액의 달러를 제공하여 휴전선에서의 도발을 유도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박 소령은 그 사실을 DJ 측에 흘림으로써 세간에 총풍사건이 알려지는 실마리가 된다. 박 소령의 애국심이 안기부의 협잡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MB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1997년을 기억하는 인사들은 박 소령에게 치졸한 보복을 가한다. 그에게 보안법 위반의 모든 혐의를 씌어 2010년 6년 형을 선고하고, 그는 만기복역 후 2016년에 출소한다. 정권을 위해서라면 김정일에게 달러를 주고 휴전선에서 남쪽을 향해 총을 쏴달라고까지 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자세히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이미 한국을 떠났으며 한국에 대해 관심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저지른 더러운 음모를 부끄러워하는 대신, 진실을 밝힌 사람에게 더러운 보복을 감행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무엇이 수치고, 무엇이 부끄러운 것인지조차 모르는 정치인들은 지금도 종북이니 좌파이니 몰아대면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화해 노력을 깎아내리려고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상류사회
모처럼 영화의 재미를 만끽했다. 영화에 대한 평론가나 네티즌의 평점이 10점 만점에 5점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재미있게 보았다. 역시 영화에는 어느 정도 야한 장면이 들어가야 하는 것은, 영화가 인간의 생활을 실제처럼 영상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며 인간의 삶은 성(姓)과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의 많은 소재 가운데 가장 자주 채택되는 게 불륜이다. 혼외정사를 저지른 남편이나 아내가 그 사실을 숨기려다가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되는 과정이, 불륜을 소재로 한 영화 줄거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일은 뉴스에서도 종종 접한다. 몰래 촬영한 사진을 무기로 협박하여 돈을 갈취하다가 살인이나 자살이라는 비극적 종말을 맞게 된다. 첩보영화에서도 미인계는 흔하다.
그런 뉴스나 영화를 볼 때 드는 안타까운 생각은,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기 전에 남편이나 아내에게 이실직고하고 용서를 구하지 못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진심이지 실수가 아니다. 본심이 남편이나 아내를 배신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면, 그것이 어떤 것이라도 다른 일은 용서가 되어야 마땅하다. 정직이 최선의 전략이라는 격언도 있지 않은가.
이 영화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은, 평소에 가졌던 그런 소신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진심과 정직이며, 그것만 지켜진다면 이 세상 모든 갈등 대부분은 해결된다고 믿는다. 누구에게 또다시 어떤 배신을 당하더라도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소신만은 지키고 싶다.
Newness
3년 전 동남아를 여행할 때,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만난 젊은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결혼관이나 여성 편력을 듣고 매우 놀란 적이 있다. 당시 마흔 살이었던 그들의 섹스관은 상상 이상이었다. 우리 세대는 상상해본 적이 없는 프리섹스에 가까웠다. 이혼하고 중학생이 되는 딸 하나를 키우는 친구는 유부녀들과 만난다고 했고, 첫사랑과 헤어지고 그때까지 미혼인 친구도 결혼 생각 없이 여러 여성을 만난다고 했다.
급변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이유를 직업과 수입, 즉 돈만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인간 삶의 한 축인 성생활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 질문에 대한 답까지는 아닐지라도 방향을 제시해주는 영화가 ‘Newness’다.
올해는 밀레니엄베이비가 18세가 되어 성인으로 진입하는 첫해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스마트폰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던 아이들로, 구글이나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가 자연스럽게 생활의 한 부분이 된 신인류들이다. 그들은 SNS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 친구를 사귀고 이성친구나 애인을 만나는 방법도 우리 세대로서는 완전한 새로움(Newness), 그 자체다.
2천 년대 중반 HBO에서 방영된 ‘Rome’이라는 드라마를 본 분이 많을 것이다. 드라마가 얼마나 역사적 사실에 충실했는지 알 수 없으나, 그 드라마에서 섹스는 일종의 오락으로 취급된다. ‘Newness’에서도 마찬가지다. SNS로 무장한 젊은이들에게 섹스는 유희이자 오락일 뿐으로 정조 개념은 전혀 없다. 돌고 도는 역사처럼 섹스의 개념도 그런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아무리 불편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사랑하는 사이의 젊은이들에게는 프리섹스가 그리 편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며 끝난다. 비록 한 사람만 상대하는 것이 지루한 일이더라도 그것이 그들에게는 최선이라며 갈등을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