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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Oct 01. 2016

성공적으로 나이 들기 (15)

성인발달연구(Study of Adult Development)

"야, 이 새끼야! 네 동생이 내 동생을 때렸잖아!" 아마 중학생이었을 거다. 동네에서 별로 친하지 않게 지내던 녀석이 갑자기 내게 주먹을 날렸다. 생각이 있는 놈이라면 어린 동생이 싸운 걸로 형들이 싸울 필요는 없잖은가! 완전한 시비였다. 그 녀석과 엉켜서 땅바닥을 뒹굴며 싸웠다. 서로 코피가 터지고 상처를 입은 채 동네 사람들이 말리는 바람에 끝났다. 말로서 하는 싸움이 아닌 치고받고 하는 싸움으로는 기억 속에 있는 마지막 사건이었다.


살면서 예기치 않은 일을 만나게 된다. 스스로 계획해서 만든 일이라면 대응방법도 준비되어 있겠지만, 전혀 뜻밖의 사건이라면 대처하기 쉽지 않다. 중학생 시절의 주먹싸움은 가장 미숙한 대응방법이었으나 원인이 사소했기에 결말도 시시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에 만난 심각한 사건이라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인생 전체가 달라진다.


아버지가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다든가, 아무 생각 없이 받은 건강검진에서 암 진단을 받는다든가,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다든가, 자식이 크게 다쳤다든가 하는 사건은 방어기제(Defense Mechnism)에 따라 행·불행을 좌우한다. 대응방법이 성숙하냐, 미성숙하냐의 선택이 최선과 최악의 결과로 갈리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지식이 깊을수록, 경험이 많을수록, 여러 사람의 의견이 집약될수록 방어기제도 성숙해진다.


어린 동생들이 싸웠다면 형이 나서서 대신 싸울 것이 아니라, 왜 싸웠는지 들어보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도록 화해시키는 것이 성숙한 대응방법일 것이다. 이런 방어기제의 사용은 개인뿐이 아니라 국가나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기치 않게 발생한 세월호 사건에 대한 해경의 미숙한 대응방법이 참사를 키웠고, 거대 야당에 대한 방어기제로 이정현 새누리 대표가 단식이라는 미숙한 대응으로 여야 대립으로 치닫고, 북핵에 대응하는 방법이 사드 밖에 없었는지 몇몇 사람이 밀실에서 결정하지 말고 공론화함으로써 심사숙고했어야 했다.


사람을 수학으로 표현하면, y=f(t)라고 한다. 즉, 인간은 시간(t)이라는 함수에 따라 변하는 시간 방정식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생각은 시간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이가 든 사람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노년에 대한 낙관론자 빅토르 위고는 “젊음은 아름답지만, 노년은 찬란하다. 젊은이는 불을 보지만, 나이 든 사람은 그 불길 속에서 빛을 본다.”라고 했으며, 비관론자 셰익스피어는 “노년은 망각일 뿐이며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표현했다.(255쪽)


저명한 언론가 고 마빈 배럿(Marvin Barrett)은 78세에 이렇게 기록했다. "노년은 끝없이 아득하게 펼쳐진 평원에 서 있는 것과 같다. 눈앞에 보이는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걸어온 발자취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저 그곳에 할 말을 잃고 서 있을 뿐이다. 스무 살 이후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 막막함과 공포에 질린 채로 말이다."


맬컴 카울리는 <여든에 바라본 세상>에서 이렇게 썼다.

"노년에는 약상자 속에 약병 수가 점점 더 늘어난다.

손에서 발까지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진다.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낮잠을 잔다.

뼈마디가 쑤시고 아프다.

밤 운전은 더 이상 엄두도 못 낸다.

신발을 짝짝이로 신는다."


그러나 카울리의 부인은 83세에 <내 인생의 척도 The measure of my days>에서, "노년은 매우 강렬하고 다양한 경험들로 가득 차 있다. 노년은 기나긴 패배인 동시에 승리다. 나의 70대는 매우 즐겁고 평화로웠으며, 80대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나의 열정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강렬해진다."라고 표현했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스스로의 노후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처럼 -심지어 부부라도- 다르다. 세계보건기구(WHO) 창립자들은 1948년, “건강이란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히 행복한 상태를 말하며, 단순히 질병에 걸리지 않은 상태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정의했다.(260쪽) 성인발달연구는 800명이 넘는 대상자를 70년 넘게 연구하면서 정답은 아닐지라도 정답에 근접할 수도 있는 최소공배수나 최대공약수를 아래와 같이 요약했다.


먼저, 긍정적으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사랑과 기쁨, 그리고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다. 과거에 얽매어 자신의 생각에 고집스럽게 집착하는 것은 스스로도 힘들고, 주변 사람들까지 괴롭게 할 뿐이다. 다음으로 인간의 말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경제적 빈곤이 아니라 사랑의 빈곤이다. 인생에서 성공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는 돈이 아니라 자기관리와 사랑이기 때문이다.


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성공적인 노후를 살다 간 사람들의 사례들이다.


아낌없이 베풀었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한 터먼 그룹의 엘런 켈러는 50년 동안 매일 담배를 1갑씩 피웠으며, 70살 이후에도 8개비씩 10년 이상을 피다가 주치의로부터 6개월 정도 더 살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떠난 뒤 가족들에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베풀며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237쪽)


'잘 사는 것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잘 늙는 것이다'라고 정의를 내린 그랜트 집단의 에릭 캐리는 젊었을 때 소아마비에 걸린 후에 반평생을 불구로 고생하며 살았으나, 63세의 길지 않은 인생을 소아과 의사로 지내며 역동적인 삶을 보냈다.(251쪽)


2,500년 전 그리스의 극작가 소포클레스는 89세 때, 유산을 탐낸 아들로부터 노망 들었다며 고소당한다. 원로원의 재판관 앞에 선 그는 자신이 쓰고 있던 희곡을 낭독하여 노망이 들지 않았음을 증명했으며, 90대 후반에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예기치 않은 사건이나 불행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노후의 행복과 만족이 결정된다.


<후기>

정신과 의사인 베일런트 박사가 말하는 미성숙 방어기제의 예로는, 편견이나 흠잡기에 열중하는 투사(Projection), 사디즘이나 마조히즘 같은 수동 공격성(Passive Aggression), 과음이나 무관심으로 나타나는 분열(dissociation), 범죄행위나 아동학대를 하는 행동화(Acting out), 자기도취 또는 자위 증상의 환상(Fantasy)입니다.


또한 성숙한 방어기제의 예로는, 승화(Sublimation), 유머(Humor), 이타주의(Altruism), 억제(Suppression) 또는 금욕(Stoicism)이 있습니다.


실제로 어려움을 당한 분들이 이런 사례를 응용할 수 있도록, 책을 나름대로 해석한 것에 사례를 적용하여 쓰고 있습니다. 도움이 되는 분이 한 분이라도 있다면 보람이겠습니다. 왜냐면 저는 이미 십수 년 전 이민생활 중에 예기치 못한 사건을 만나, 당황과 분노로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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