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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Mar 07. 2017

가짜 뉴스 (Fake News) (1)

10년 전 회사 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짝퉁시장을 간 적이 있다. 가짜 상품으로만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큰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여자 핸드백을 포함한 가방류, 시계, 보석, 장신구 같은 온갖 액세서리류, 아이팟 같은 전자제품류, 구두, 지갑, 벨트 같은 가죽제품류 등 몇 종류 되지 않는 상품들의 엄청난 양이 그 넓은 시장 골목골목과 빌딩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을 눈앞에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제대로 돌아보려면 하루로는 부족할 것 같았다.


중국지사에서는 젊은 여직원을 시켜 나를 안내하도록 했다. 키가 나와 비슷했던 꺾다리는 내가 관심을 보이면 나를 대신해 물건 값을 흥정했다. 주인이 3~4백 위안을 호가하면 무조건 백 위안으로 흥정을 시작했고 가격도 대충 그 근방에서 결정됐던 것이 기억난다. 그 신기한 광경을 구경하는 게 재미있어서 두어 시간을 보냈는데, 그녀는 짝퉁에 관심을 보이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장난 삼아 집사람과 딸에게 줄 선물로 짝퉁 아이팟을 샀고, 직원들 줄 선물로 사서 나눠주고 남은 손톱깎이 세트는 지금도 갖고 있다.


가짜 상품을 짝퉁이라고 알리고 팔거나, 알고 사는 것은 불법일지는 몰라도 속이는 치팅(Cheating)은 아니다. 짝퉁을 선물로 줄 때도 물론 진짜라고 말하지 않았다. 재미로 산 가짜니까 고장 나면 아까워하지 말고 버리라고 했다. 워낙 싸니까 버려도 아까울 게 없다. 문제는 가짜를 진짜처럼 속여서 팔 때 발생한다. 속여서 파는 사람은 수십 배의 폭리를 취하고, 속아서 사는 사람은 헛돈을 쓰는 셈이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을까. 속이는 사람만 나쁘고 속는 사람은 결백할까. 속아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속이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닐까.


속이는 사람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의도다. 속는 사람은 비싼 제품을 싼 가격에 사려는 욕심이 없었다면 속았을까. 프라다 핸드백을 사고 싶으면 노드스트롬 백화점이나 공항 면세점에서 제값 주면 된다. 명품을 싼 가격에 살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속는 것은, 제값 주고 사기는 싫고 명품은 갖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아니면, 나처럼 명품을 조롱하거나 1등 제품을 좋아하지 않는 변태 성격을 갖던가.


전 세계가 가짜 뉴스에 몸살을 앓고 있다. 작년 6월 세계를 놀라게 한 브렉시트도 가짜 뉴스가 크게 기여했다. 51.9%의 찬성투표로 통과된 브렉시트에서 가짜 뉴스의 활약이 없었다면 결과도 바뀌었을지 모른다. 작년 11월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에 크게 기여한 것도 가짜 뉴스였다. 물론 가장 큰 공헌자는 적은 득표에도 당선자로 만든 미국의 독특한 선거제도겠지만, 심지어 트럼프의 당선이 순전히 자신이 만든 가짜 뉴스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등장할 정도로 가짜 뉴스가 성행했다.


▼ 훨씬 적은 득표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 막바지에 접어든 한국도 이런 세계적 유행에서 뒤처질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조직과 규모 면에서 미국과 영국을 능가한다. 몇 백만 부씩 신문의 형식으로 인쇄해서 설날 귀성객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아파트 우편함에 배달하기도 하며, 전직 판사나 검사를 지냈던 법조인들까지 앞장서서 가짜 뉴스를 인용하며 대중을 거짓 선동하고, 법정에서까지 증거로 제출하는 코미디 아닌 코미디를 연출한다.


나라와 목적은 달라도 가짜 뉴스로 진실을 왜곡하고, 정확한 정보를 가짜로 호도하려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인종차별과 보호무역 등 배타적 정책을 주장하는 극우주의자라는 것이다. 가장 강력하게 브렉시트를 지지한 영국인들과 도널드 트럼프 당선을 도운 미국인들은, 이민자들에게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저학력 백인 연장자들이었다. 스카티시 같은 영국 변방이 아닌 주류인 잉글리쉬들이었으며, 미국 중부 내륙의 오래된 러스트 벨트 주(州)에 거주하는 백인 노동자들이었다는 것이 증거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The Great British)'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노인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미국에 대한 기억의 끈을 놓지 못하는 노인들이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아니었다. 잊을 수 없는 향수와 기억에 대한 보증(Endorsement)이야말로 이들이 원하는 것이었다. 믿고, 듣고, 보고 싶었던 것을 듣고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동안 젊은것(?)들에게 인터넷과 컴퓨터에 무지하다고 얼마나 멸시받았던가. 길거리에 넘쳐나는 일본차와 한국차 때문에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던가. 젊었을 때는 눈도 못 맞추던 니거(Nigger, 흑인을 비하하는 호칭)가 대통령이 되고, 칭키(Chinky, 아세안을 비하하는 호칭)들이 감히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는 세상이 올 줄이야!


▼ 미국에서 백인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을 비하할 때 사용하는 비속어. 트럼프의 당선으로 교민들의 아이들과 손주들이 학교에서 이런 말을 공공연하게 듣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들의 상처 난 자존심은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으로 나타났다. 석유로 돈을 벌어 떵떵거리는 중동의 이슬람 국가 몇을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을 찍어 미국 입국을 막아버린 것은 또 얼마나 통쾌했던가. 우리 시대에는 NAFTA, FTA, TPP 없이도 얼마나 잘 살았던가. 몇십 년 후에는 백인도 소수로 전락할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을 트럼프가 해결해줄 것 아닌가.


그들에게 이민자들이 미국에 얼마나 기여하는가는 관심사항이 아니다. 히스패닉 불법체류자가 사라지면 캘리포니아의 농산물 값이 얼마나 비싸질지도 관심사가 아니다. 어차피 살날이 길게 남지도 않았으니, 죽고 난 다음의 일이야 무슨 상관이랴. 그동안 갈수록 팍팍해지는 살림살이에 불편하고 소외됐던 마음만 달래주면 그뿐이다. ABC, NBC, CBS에서 하는 방송이나 뉴욕타임스에 기고하는 학자나 정치인들의 주장은 어차피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차라리 트럼프의 독설과 가짜 뉴스가 훨씬 듣기도 좋고 마음에 위로가 된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젊은것들은 부모나 어른, 위아래도 몰라보고 예의도 없어. 너희들이 6·25를 경험해봤어? 가난을 알아? 배를 곯아봤어? 보릿고개를 알아? 이것들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가난이고 배고픔이야! 사흘만 굶어봐, 남의 집 담 안 넘는 놈이 없어! 그걸 해결해준 분이 박정희 대통령이야. 박정희 대통령이 없었으면 니들이 지금처럼 살 수 있을 줄 아니? 사람이 왜 사람이니? 사람의 도리를 해야 사람이지. 은혜를 모르면 사람의 도리가 아닌 거야. 박근혜는 그 박정희 대통령의 친딸야. 박근혜 대통령이 잘못은 조금 했겠지! 그렇다고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하면 그래서는 안 되는 거야. 사람이라면 사람의 도리를 해야 사람이지, 인두껍을 썼다고 다 사람이 아냐!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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