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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Mar 10. 2017

'Better Life'를 찾아서(5)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나이가 들면 생기는 대표적 노화현상이 노안이다. 가까울수록 더 흐릿해 보이는 노안은 눈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 기억력에도 와서, 어제 일보다는 수십 년 전의 일이 더 생생하게 기억나기도 한다.


청소년 시절 정말 재미없게 읽은 책이 하나 있다.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이란 자전적 소설로, 내용도 지루했지만 내용도 난해해서 억지로 읽었다. 소설 속의 '나'인 싱클레어와 데미안과의 대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어머니', '자연' 그리고 커다란 새 '아프락사스'가 무슨 연결성이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재미없는 그 지루한 소설에 집착한 이유는, '이런 책 하나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무식한가?'라는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아둔한 나는 오기로 몇 번을 읽어도 이해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친구들 중에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 같은 과 동기가 있었다. 논어, 주역 등 사서삼경부터 온갖 종류의 책을 섭렵하는 독특한, 이 친구는 적성에 맞지 않는 이공계 대학에 들어와서 진짜 고생을 많이 했다. 요즘도 대학 친구들 모임에서 가끔 보는 그 친구는 상투 틀고 도포 차림을 하고 다니는 기인이다.


그 친구에게 책의 난해함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일목요연하게 요약해 주어 내 나쁜 머리를 도왔다.


- 헷세가 데미안을 통해서 이야기하려 했던 것은 자연이야. 자연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존재라는 거지. 거기에는 '진·선·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위·악·추'도 존재하거든. 자연에는 아름다운 것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 만약에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세상은 그건 완전한 세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거야.


- 헷세가 보는 관점은 '진·선·미'만 추구하는 세상은 반쪽짜리 세상이라는 거지. 종교도 그렇고. 완벽한 존재인 자연과 가장 가까운 이미지를 '어머니'라고 해석하는데,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아프락사스'라는 가상의 개념을 도입한 거야. 즉, 자연, 어머니, 아프락사스는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돼, 이 책에서는. 그걸 데미안이라는 친구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는 거지.


- 새로운 세계, 완전한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는 '껍질이 깨지는 아픔과 고통'이 필연적이라는 거지. 새로운 세상을 그렇게 쉽게 만날 수는 없잖겠어.


4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어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친구의 해석이었다. 비슷한 소설로는 이문열 씨의 '사람의 아들'이란 책이 있다. 신의 아들인 '예수'와 대비시켜,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의 아들 '아하츠 페레츠'가 등장한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대가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대가 없는 고통' 없고, '고통 없는 대가'는 없다. 고통을 겪고 나면 세상이 달라 보이고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 선배,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니까 세상이 달라 보이더라고. 예전에는 중요하게 생각되던 것들이 하찮게 느껴지고,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 갑자기 중요해지는 거야.


직장생활을 하면서 친하게 지냈던 후배를 십수 년 만에 만났다. 직장에서 받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심장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았던 경험을 말하면서 덧붙였다. 'Better Life'를 위해 이민자로서 겪어야 했던 고통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창모는 그래서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라고 열창하지 않았던가! 이민이라는 것은, 살고 있는 곳에서 이룩한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전혀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환경에 익숙한 식물을 뿌리째 떠다가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이다. 완전히 다른 토양에서 뿌리내리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잎이 시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 다른 세상에서 아무런 고통 없이 편안하게 정착하여 사는 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미국에 환장한 놈


친구가 일갈한 대로(첫 번째 글에서 소개) 나는 미국에 환장한 놈이었는지 모르겠으나, 1983년 해외연수로 방문했던 플로리다 해변의 모습이, 파라다이스로 뇌리 깊숙이 새겨졌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잊고 지냈다. 아니, 그것을 기억하고 동경하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이민을 생각하기에는 가진 것도 없었고, 부모님을 포함해 장애물이 너무 많아서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플로리다의 멜번(Melbourne)에 있는 ‘해리스(Harris Control Division)’라는 회사를 다시 찾게 된 것은 10년이 지난 1993년 말이었다. 자회사로 자리를 옮긴 후, 사업부장이라는 자격으로 그 회사가 새로 개발한 시스템을 구매하기 위하여 제작과정을 답사한 것이다. 가격이 300만 불정도 되었지만, 아직 개발이 완전히 끝난 상태가 아닌 미완성 시스템이었으니 그들이 내게 한 대우가 어떠했는지는 상상에 맡긴다. (이 회사는 나중에 GE에 합병된다.)


이 회사의 타블로이드판 사보를 회의실에서 우연히 보다가, ‘Mr. Valdez’라는 General Manager(사장)가 회사를 떠난다는 이색적인 기사가 있어 자세히 읽었다. 50세에 은퇴한다는 것으로 은퇴 이유가 젊었을 때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즉 젊었을 때 50세까지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보내겠다고 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민 직전까지 4년간 몸담았던 그 회사는, 1년이라도 직장을 더 다니기 위해 치사한 사람들이 많았다. 모회사에서 높은 직위로 정년을 하고 난 후, 자회사의 임원으로 자리를 옮겨 자리에만 연연하는 비굴해 보이는 분들을 많이 보았던 터였다. 훨씬 나중의 일이지만 이유를 깨달았다. 한국의 높은 자리는 스트레스는 아래에 전가하면 되는 군림하는 자리였고, 미국에서는 높은 자리일수록 책임을 져야 하는 스트레스가 많은 자리였다.


‘게리(Gary Breeker)’라는 '아시아 태평양 담당 영업부장'이 나를 담당했었다. 흰 수염이 붉은빛이 도는 얼굴에 가득한 60대 초반인 그는 재혼한 말레이시아 여인과 함께 호주에서 산다고 들었다. 그는 승진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그는 업무상 해외출장이 많이 하는 직책에 있지만, 승진하게 되면 Director(이사)로 회사에서만 있어야 하는 것이 이유이었다.


그는 7~8월 한두 달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서 휴가를 보낸다고 하는데, 아예 전화도 안 되는 그런 곳으로 갔다. 생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들을 그들은 하고 있었다. 당시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내게는 상상해보지 못한 이야기들뿐이었고, 'Better Life'를 넘어선 'Dream Life'처럼 들렸다.


일주일이면 3~4일을 술을 마셨다. 접대하기도 했고, 받기도 하면서 룸살롱을 다녔다. 무언가 일을 하려면 온갖 곳에서 압력이 들어왔다. 일이 힘들다기보다는 주변 인물들의 눈치가 더 힘들고 두려웠다. 부서가 커나가자 많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 기웃거리며 만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식사를 거절하면 차라도 하자고 했다. 심지어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청탁이나 부탁이 들어왔고 내가 가진 기득권이 전혀 커 보이지 않았다. 휘둘릴 수밖에 없는 자신이 한없이 작게만 보였다.


아이들은 이런 세상에서 살게 하지 않겠다는 '소박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퇴근하면 집에 돌아와, 파란 잔디가 깔린 뒷마당에서 아이들과 뒹굴며 사는 것을 꿈꿨다. 내가 갈망하는 'Better Life'는 비효율적이며 비생산적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내게 '주어진 일'만 하면 되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보는 것과 달리 그런 세계는 어디에도 없었다. 한국에도 미국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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