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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Jun 29. 2017

거짓말

거짓이 진실을 이기는 세상

한국으로 돌아온 지 2주가 되었다.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뉴스에 대한 관심도다. 전에는 뉴스가 너무 재미있어서 오후에는 각종 시사프로그램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었는데, 대통령이 바뀐 탓인지는 몰라도 돌아와서는 뉴스가 영 별로다. 심지어 운동하거나 잠들 때 자주 들었던 팟캐스트조차 중단된 것도 있고 드문드문 올라와서 들을 게 없다. 


그런데 지난 대선 때 국민의 당 안철수 후보 측에서 퍼트린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 씨의 특혜의혹이 조작된 거짓으로 밝혀지는 바람에 흥미가 다시 생겼다. 지지율 급락으로 당선 가능성이 없어지자 극적으로 승부를 뒤집기 위해 녹취를 조작해 거짓으로 제보처럼 꾸몄다는 것이다. 거짓말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발상이 무섭기만 하다. 


그뿐이 아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와 바른정당 정병국 사이의 진실게임도 주목을 끈다. 분명한 것은 이들 중 하나는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명은 경남지사를 지냈고 대선후보였던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5선의 국회의원에 장관까지 지낸 인물이다. 성완종 리스트에 올라 1심과 2심을 거쳐 상고심에 있는 홍준표의 거짓말로 보이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도덕심 해이가 심각하다. 


만일 이들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유미라는 젊은 여성은 거짓말의 대가로 일등공신이 되어 정부 요직을 차지하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을 것이며, 그녀를 본받아(?) 진실보다는 거짓이 덕목이 되고 거짓말이 횡행하는 사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출세와 성공의 밑거름이 거짓말이 되는 사회와 국가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아니, 이미 그런 사회인지도 모른다. 국정농단으로 재판 중인 인사들을 보면 그렇다. 유죄를 선고받은 그들의 표정에서 죄책감이나 수치심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재수가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했을까, 오히려 당당함이 엿보인다. 모르고 했고 시켜서 했을 뿐이라는 게 그들의 변명이다. 자신은 전공이 뭔지도 몰랐고 엄마가 시켜서 한 일이라는 변명으로 일관한 정유라는 구속영장이 기각되기도 했으니까.


흔히들 미국의 정신을 ‘프런티어 스피릿(개척정신)’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17, 18세기 때의 일일 뿐이고, ‘정직’이 미국의 정신이라고 - 까지 말할 수는 없어도 미국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이라는 것을 - 그곳에 살면서 생각했다. 감추고 거짓말했을 때가 부끄러웠지 정직했을 때는 어떤 행위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영주권을 받을 때도 시민권을 심사할 때도 그들은 내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1983년 미국에 처음 발을 디딜 때 가방 속에 음식물이 잔뜩 들어있었지만, 음식물이 전혀 없다고 표시한 세관신고양식을 믿었는지 가방을 뒤지지 않았다. 지난 4월 미국에 들어갈 때는 음식물이 있다고 표시했고, 어떤 음식물이냐고 물었을 뿐으로 아이들에게 줄 고춧가루와 선물용 인삼차라고 답에 웃기만 했다.


지난 글에서 썼듯이 2002년 마사 스튜어트가 실형을 선고받았던 것도 그녀의 거짓말이 원인으로, 사전 정보에 의한 주식거래는 벌금형으로 끝날 일이었으며, 앤론의 조직적인 회계부정은 최고 경영자들에게 24년이라는 엄청난 중형과 회계감사를 담당했던 미국의 거대 회계법인이었던 아서앤더슨이 해체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을 탄핵 직전으로 몰고 간 것도 그의 거짓말 때문이었다. 유사한 일이 한국에서도 있었으나 어떤 처벌이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


그런 미국의 정직이 최근 위로부터 흔들리고 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가 지난 2∼5월 전 세계 37개국에서 실시해 금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세계 시민의 신뢰도는 평균 22%로 집계됐다. 74%는 트럼프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 며칠 전에는 뉴욕타임스가 신문의 맨 뒷면에 깨알 같은 글씨로 트럼프 대통령의 거짓말을 광고했다. 심지어 달력을 이용하여 매일 같이 쏟아낸 거짓말을 색깔로 표시했으며,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은 날이 3월 1일이라고 조롱했다.

 

불과 십몇 년 사이에 거짓말이 일반화되었다는 것일까, 수년 동안 계속된 트럼프의 거짓말에 익숙해진 것인가, 아니면 힐러리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정치인의 거짓말은 용서될 수 있다는 것으로 미국인들의 의식이 바뀐 것일까? 그런 거짓말쟁이 트럼프를 묵인하는 미국 사회가 이해되지 않는다.


거짓말은 인간사회를 갈등과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그런 이유로 지도층 인사들의 거짓말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의식으로 더욱 엄격하게 다루어졌던 것이 선진국이자 문명사회가 대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지금껏 인간사회를 건강하게 유지시켜 주었던 의식이, 강한 나라 미국에서부터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나이 40이 되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다. 사람이란 그만큼 쉽게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진실인지 가식인지를 판단하기 힘들 때는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면 된다. 도널드 트럼프의 지난 인생과 반대되는 인물로 브라질의 전 대통령 룰라가 있다.


한때 국민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으며 브라질에서 가장 정직한 인물로 칭송을 받았던 룰라가 최근 부패 의혹에 휩싸여있다. 원인은 간단하다. 룰라에 이어 대통령이 된 호세프가 연방경찰의 자율권을 보장하는 바람에 기득권과 결탁한 경찰력이 부메랑이 되어 호세프는 탄핵되었고, 룰라까지 부정부패로 내몰리게 되었다. 검찰에게 자율권을 최대로 보장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로와 많이 닮았다. 하지만 룰라나 호세프의 인생역정을 보면 그들이 부패했다고 믿기 힘들다, 노무현처럼. 지금의 브라질 대통령 테메스는 확실하게 부패에 관련되어 있지만, 그는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다.


포스트 트럼프 시대가 오면 거짓말이 당연시되고 불신이 만연하는 사회가 될까 두렵다. "대통령도 그랬는데, 뭘!"하면서 말이다. 기회주의 대통령을 본받아 대한민국에 기회주의자가 만연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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