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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Nov 22. 2017

낮술

게으름의 자유

엊그제 일요일 오후부터 겨울의 문턱으로 들어선 듯하다. 한 주에 5일이 목표인 새벽 운동을 하루 쉬려고 했으나 생각을 바꿔 뒷산을 올랐던 것은 날씨 때문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드높이 파아란 늦가을 하늘의 유혹을 이겨내기에는 마음이 너무 물러 터진 탓이다. 30년이 넘도록 꾸준히 이어온 운동 습관이지만 아직도 쉽기 만한 것은 아니다. 날이 차가워지면 더욱 그렇다.


환기를 위해 열어젖힌 창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가 허파에 상쾌하고 기분 좋은 통증을 준다. 침대를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린 후에 재빨리 창문을 닫는다. 뭔가를 쓰려고 컴퓨터를 켰으나 갑자기 귀찮다는 생각이 엄습한다. 누군가의 말대로 돈도 안 되는 일에, 무언가 써야 한다는 의무감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이 뒷산을 향해 아파트를 나섰다. 아파트 입구를 벗어날 무렵 무언가 눈에 띄었다. 네 번을 접은 5천 원짜리 지폐였다. 이곳은 인적도 많지 않은 곳인데, 이게 웬일일까. 두꺼운 옷 대신 얇은 잠바를 걸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높이에 비해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자 숨이 턱에 바치고 흐르는 이마의 땀으로 모자가 흠씬 젖었다. 


정상에 오르자 시야가 탁 트였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언제나 환상적이다. 미국의 어느 캐넌처럼 거대한 경이로움은 없어도, 아기자기하고 몽환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정상에서 맞이하는 차가운 바람에 땀이 식느라 추위가 느껴진다.


어느 방향으로 내려갈까? 정상에서는 내려가는 방향이 서너 군데는 된다. 저수지 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나 길이 너무 가팔라 보여 망설이다가 결국 단념하고 말았다. 지난날 비 오는 한라산을 내려오다가 미끄러져 크게 엉덩방아를 찧은 후로는, 가파른 하산 길은 겁이 나서 발걸음을 빨리 옮기지 못한다. 문득 저 앞 절벽 위에 앉은 여인에 눈길이 닿는다.


그러지 않아도 눈으로 찾고 있던 중이었다. 올라올 때 50미터쯤 앞에 어떤 여인이 혼자 올라가고 있었다. 나처럼 궁상맞게 혼자 올라가는 사연이 궁금해서 기회가 되면 물어보고 싶었는데, 막상 정상에 이르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정상을 약간 넘어간 저곳에 있었던 것이다.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그곳으로 가서 앉았을 것 같다. 그 장소에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떠나간 옛사랑을 회상하는 걸까. 엄숙해 보이는 그녀의 고독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그녀의 분홍색 등산복 등 뒤에 걸렸던 시선을 거두고 돌아섰다.


가장 긴 하산 길을 찾아 방향을 다시 잡았다. 얕은 산봉우리 두어 개 넘어서 내려왔다. 산 아래에 널린 아파트에도 불구하고 산행 두 시간 동안 마주친 사람은 대부분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로 열 명이 채 안 되었다. 바닷가 쪽으로 내려갔다가 주변을 크게 돌아 집으로 돌아갈 때는 바람이 몹시 불었고, 바람 때문인지 내려간 기온 탓인지는 몰라도 얇은 옷이 후회될 정도로 추위가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길 위에 보이는 사람들은 두꺼운 외투에 목도리를 칭칭 감았다.


스마트폰의 운동 앱을 보았다. 두 시간 반 동안 2만 보 이상 걸었으니, 운동량으로는 새벽 운동보다 더 많았다.


적게 먹으려는 노력의 결과일까, 아니면 혼자 사는 사람의 생리 탓인가. 무얼 하다 보면 허전해서 자주 허기를 느낀다. 주전부리로 사다 놓은 강냉이도 떨어졌고 금오도에 사시는 친구에게 가져온 감도 떨어진 지 오래다. 냉장고를 열어봐도 반찬들만 보인다. 먹거리는 잔뜩 있었지만 간식이 필요해서 시장으로 차를 몰았다. 


재래시장 좌판 아주머니들이 무언가 열심이다. 들여다보니 굴 껍데기를 까고 있었다. 좌판 뒤에는 깐 굴 껍데기가 수북하다. 맞아, 11월 말이니 바야흐로 굴 철이 아니던가. 게다가 이곳은 양식장이 흔한 바닷가 여수다. 가격을 물었더니 앞에 놓인 작은 양푼을 가리키며 만 원이라고 한다. 착한 가격이라도 내게는 너무 많았다. 5천 원 어치만 샀다. 어제 주웠던 돈을 건넸다. "아저씨, 아침부터 큰돈을 주시네!" 5천 원인 줄 알고 무심코 주워 지갑에 넣었던 그 지폐는 5만 원짜리였다.


"생으로 드시려면 흐르는 물에 세 번 정도 씻어야 합니다. 초장에 찍어 드세요." 좌판 아주머니의 말을 떠올리며 수돗물에 헹구고, 고추장에 식초를 섞어 초장을 만들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오랜만에 만나는 비린내 섞인 향기의 생굴은 술심을 자극했다. 빈속에 털어 넣는 낮술은 취기가 빨리 오른다. 게다가 혼술이다. 이럴 때 혼자 산다는 사실에 서글픔을 느낀다. 어제도 그랬다. 동행할 사람이 있으면 뒷산 오르기를 주저할 필요가 없었으나, 혼자 나서기가 청승맞다는 생각이 왔다 갔다 했었다. 편함과 자유로움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다. 그래도 한국이라서 다행이다. 미국에서라면 지독한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또 무슨 실수를 저질렀을지 모른다.


낮술의 취기는 졸음을 불렀다. 그래, 게으름을 피워보자! 컴퓨터도 켜지 말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마광수 수필과 박완서 소설도 제쳐두고, 졸리면 자고 깨면 창밖을 내다보며 멍 때리고, 아침에 일어나기 싫으면 운동도 거르고, 그렇게 며칠 지내보자! 무에 큰일을 한다고 의무감에 사로잡혀 모처럼 즐기는 게으름질에 죄책감까지 느끼며 그리 살려하는가.


낮술의 취기가 유혹한 낮잠 속에서, 문득 지난달에 돌아가신 어떤 분이 생각났다. 그분은 금년 초 글에서, 병원에서 치료받은 후에 회사로 돌아가 일할 생각에 기대와 걱정이 된다고 썼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1년도 남지 않았음을 알았더라도 그런 염려들을 했을까. 그분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어도 내 낮잠은 달콤하기만 했다.


▼ 지난 일요일 안심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여수 앞바다와 그 주변 풍경들. 언제 보아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 새벽 운동 중에 불 켜진 여수 소호동 동동다리.


▼ 오늘 아침 베란다에서 바라본 여수 앞바다가 햇빛을 반사하여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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