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그림자를 지우지 않고 안는 법
“I do not repent of the past... for my life has been a movement, and I do not correct my first imaginings by my second.” — Charles Cotton, The Essays of Montaigne
“나는 과거를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 삶은 끊임없는 움직임이었으며,
두 번째 생각이 들었다고 해서 첫 번째 생각을 교정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조금 다정해지려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지나간 일들입니다.
그때 왜 그렇게 말했을까.
왜 그 선택을 했을까.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마음을 부드럽게 하려는 순간,
과거의 장면들이 다시 고개를 듭니다.
오십이 되면
이런 기억이 적지 않게 쌓여 있습니다.
살아온 시간이 길어진 만큼
아쉬운 장면도 함께 늘어납니다.
우리는 그것을 성찰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같은 장면을 반복해 돌려보며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몰아세우는 일일 때도 있습니다.
몽테뉴는 과거를 고쳐 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의 마음이 끊임없이 변한다고 보았습니다.
어제의 생각과 오늘의 생각이 다른 것은
실수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생각이 들었다고 해서
첫 번째 생각을 틀렸다고 단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때의 나는 그때의 조건 속에서 선택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는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과거의 나를 지금의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지금 알게 된 것을 그때도 알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건 공정하지 않습니다.
그때의 나는 그만한 정보와 경험 속에서 결정했습니다.
부족했을 수는 있지만, 대충 살지는 않았습니다.
오십 이후에 필요한 것은
과거를 고치는 힘이 아니라
과거를 받아들이는 힘입니다.
같은 기억도 “왜 그랬을까”로 남겨 둘지
“그래서 내가 배웠다”로 바꿀지는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어제의 그림자를 억지로 지우려 하지 마십시오.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오래 걸어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후회와 멀어지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그때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때도 나는 최선을 다했어”
이 한 문장이 마음을 조금 가볍게 만듭니다.
지나간 장면에 매달려 오늘을 잃지 마십시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해석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석이 바뀌는 순간,
삶의 무게도 조금 달라집니다.
[아리에르 부티크 : 후회와 화해하기]
‘후회 목록’을 다시 써 보십시오.
마음에 남아 있는 사건 하나를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그 일 덕분에 배운 점을 한 줄로 적어 보십시오.
실패로만 남아 있던 기억이 경험으로 자리를 바꾸는 순간이 있습니다.
‘하루의 마침표’를 찍어 보십시오.
잠들기 전, 오늘의 실수와 아쉬움을 정리해 보세요.
“오늘 일은 여기까지.”
이렇게 마음속으로 말해 보십시오.
하루를 그날 안에서 끝내는 연습이 내일을 가볍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