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우정은 좁고 단단한 법이다
“If a man should importune me to give a reason why I loved him, I find it could no otherwise be expressed, than by making answer: because it was he, because it was I.”
— Charles Cotton, The Essays of Montaigne
“그를 왜 사랑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다.
그는 그였고, 나는 나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관계의 넓이를 힘이라 믿어왔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알고,
더 많은 자리에 참석하고,
더 많은 연결을 유지하는 것이 능력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오십에 이르면 조금 다른 풍경이 보입니다.
이름이 많다고 해서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수많은 인연 속에 서 있으면서도
정작 기댈 곳은 선명하지 않은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모두와 원만한 사람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깊은 사람은 될 수 없습니다.
관계를 넓히는 일과 관계를 남기는 일은 서로 다른 선택입니다.
우리가 관계를 넓히려 애써 온 이유는
어쩌면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관계가 줄어들면 존재의 자리도 줄어들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
사람이 떠나면 나의 가치도 함께 희미해질 것이라는 생각.
그러나 관계의 수는 존재의 크기를 증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리할 수 있는 용기가 중심을 증명합니다.
몽테뉴는 우정을 길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한 문장으로 남겼습니다.
“그는 그였고, 나는 나였기 때문”이라고.
이 문장에는 조건과 이익이 없습니다.
역할도 없습니다.
존재만이 남습니다.
오십 이후의 인간관계는 확장의 단계가 아닙니다.
정리의 단계입니다.
누구를 더 만날 것인가보다,
누구와 끝까지 남을 것인가를 묻게 되는 시기입니다.
모두의 친구가 되려는 태도는 안전합니다.
그러나 안전은 깊이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모든 관계에 같은 온도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결국 자신을 분산시킵니다.
깊은 우정은 많지 않습니다.
대신 오래갑니다.
설명이 필요 없고, 침묵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직함이 사라지고 이해관계가 정리된 뒤에도
함께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
굳이 애쓰지 않아도 편안한 사람.
그 한 사람이 있다면 관계는 충분합니다.
관계의 넓이는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 집니다.
그러나 깊이는 남습니다.
그리고 삶을 지탱합니다.
오십 이후의 인간관계는
넓히는 일이 아니라 남기는 일입니다.
[아리에르 부티크 : 관계의 밀도를 선택하는 시간]
당신의 관계를 나열해 보십시오.
연락을 유지하는 사람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구분해 보십시오.
같은 자리에 두지 않는 것부터가 정리입니다.
조건이 사라진 뒤에도 남을 이름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관계에 시간을 쓰십시오.
깊이는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선택의 축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