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배틀쇼 〈사기꾼들〉 [역사 이야기꾼들]
감상문
1, 2회의 공통 주제는 ‘사기’였다.
사기란 누군가를 속여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뜻하는 단어다.
첫 번째 강연자는 한국사 강연가 최태성 선생님이다.
‘파락호’란,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몰락시킨 난봉꾼을 뜻하는 말이다.
김용환 선생님은 딸의 혼수자금과 땅문서까지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모두 도박자금으로 써버리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도박판에서는 자정이 되면 판을 엎고 난동을 부릴 정도로 주변 사람들에게는 진상 중의 진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행동은 일제강점기 시대에서, 독립자금을 운용하기 위한 철저한 눈속임이었다.
독립운동가 여섯 명을 제외하고 그는 모두를 속였다.
그의 사기는 개인의 이득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살아남기 위한 변명이 아니라 역사를 이어가기 위한 선택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보자면 발각되는 순간 고문과 죽음으로 이어졌을 반역 행위였지만,
이러한 사기가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멈추거나 아예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는 분명 필요한 사기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두 번째 강연자는 김지윤 박사다.
그녀는 데마라가 벌인 사기 행각을 중심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데마라는 ‘위대한 사기꾼’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인물이다.
무면허 상태로 수술을 감행했고, 그 과정에서 실제로 사람을 살려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한 일이
과연 ‘위대함’이라는 말로 포장될 수 있을까.
변호사로 위장해 사기를 치던 시절,
한 의사가 도움을 청했고 데마라는 그 의사의 이름과 삶을 가져와 살아가게 된다.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자리.
그는 재능과 독학으로 그 자리를 수행했고
결과적으로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 성공은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한 결과였다.
칭송받는 위치, 긴장감, 권위.
그 모든 것이 데마라에게는
도덕적 책임이 아니라 도파민의 대상처럼 느껴진다.
성공했기에 위대한 사기꾼이라 불렸을 뿐,
만약 결과가 달랐다면
그의 손에서 부상자들이 죽어 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이름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세 번째 강연 주자는 썬킴 선생님이다.
히틀러 정권 아래, 나치의 독재가 이어지던 시기.
유대인이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하던 그 시대에
나치가 되어 체제 안으로 들어간 사기꾼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오스카 쉰들러였다.
발각되는 순간 죽음이었지만,
쉰들러는 수용소로 향하던 유대인들을
자신이 운영하던 공장으로 끌어들여 살려냈다.
그 이름들이 기록된 문서가 바로 ‘쉰들러 리스트’다.
처음부터 숭고한 의도로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유대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사용했고 아내와 함께 끝까지 그 선택을 이어갔다는 점이다.
그의 마음만큼은, 적어도 그 목적만큼은 정직했다고 생각한다.
나치였다는 이유로 후에 고생하다가
결국 유대인들이 있는 곳에 안치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사기’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사기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사기는
왜 같은 말로 불려야 하는 걸까.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사기라면,
그것은 범죄가 아니라 ‘보호’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마지막 강연자는 표창원 선생님이다.
그가 다룬 인물은 ‘진짜 사기꾼’인 조희팔이었다.
표창원 선생님은 뉴스에 보도되었던 내용들을 바탕으로, 프로파일러의 시선에서 조희팔이 살아 있다면 어떤 의혹들이 ‘사망’이라는 결론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드는지 설명했다.
조희팔은 성공욕이 매우 강한 인물이었고,
이런 유형은 패턴상 신분 세탁이 가능하며
정·재계로 뻗어 있는 인맥과 제자들에 의해
생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에게 붙은 사망 원인, ‘심근경색’이라는 단어는
피해자와 피해자 유가족들에게 가장 절망적인 말이었을 것이다.
그가 사기로 가로챈 금액은 총 5조 원.
수많은 사람들은 빚더미에 시달리다 삶을 잃거나,
누군가를 끌어들였다는 죄책감에 짓눌리며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국가가 환수한 금액은
그중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여기서 질문이 남는다.
국가는 누구를 위한 곳인가.
국가는 국민이 없다면 성립될 수 없다.
그럼에도 ‘사망이 확인되었으니 여기까지’라는 결론은 피해자들의 피땀과 삶을 어디에서도 돌려받을 수 없게 만든다.
이 사건은 국가 시스템이 개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영향력만 있다면, 그 시스템이 얼마나 쉽게 느슨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기는 사람들의 불안을 먹고 자란다.
그리고 시스템은 그 불안의 틈을 알고 있으면서도
묵인하고 있다.
이 강연들을 통해 나는 사기가 단 하나의 단어, 단 하나의 뜻으로 묶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기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누가 그 위험을 감당했는지,
그리고 시스템은 어디까지 방관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이름을 가져야 한다.
문제는 이 모든 경우를 ‘사기’라는 단어 하나로 뭉뚱그린 언어와, 그 언어를 그대로 작동시키는 우리 사회의 구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상시]
큐브
하나씩 뜯어서
붙이는 네모난 것
한 줄씩 돌려서
색을 맞추는 모양
한참을 쥐고서
조각조각 잇는 것
하나의 형태가
누구를 위한 건가
하나의 조각은
누구의 것이던가
큐브라는 이름
그게 내 땅이었나
아무리 돌려도
맞춰지질 않는다
큐브의 조각은
사라지면 보인다
세상의 한 조각
보이기는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