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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덕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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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감 Sep 05. 2023

20화 - 메마른 귤껍질은 사랑이었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이 지치고, 점점 메말라가는 게 느껴진다. 그러다 썩고, 다시 땅에서 자라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된다.


스무 번째 일기의 주인공은 마이네임(MYNAME)이다.


마이네임(인수, 건우, 세용, 준Q, 채진) / 출처 : I.M.G. -  Without You 앨범 자켓 사진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환희 님이 만든 아이돌로 화제가 되어 주목을 받았었다. 그때는 궁금한 게 많았다. 어떤 사람들일지, 무슨 노래로 나올지, 가사는 어떨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궁금했다.


메시지로 데뷔했을 때, 직설적이고 현실적인 가사의 노래에 호기심이 일었다. "A Message 난 오늘도 밤을 새지 문자 좀 씹지 마 답장을 난 기다려"라는 부분이 정말 거침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노래가 재밌었고, 시원한 마음도 들었다. 마음속 사이다 같은 느낌이었다.


Hello & Goodbye는 지금도 가끔 찾아서 듣는 노래다. 잘 지내는지 궁금한 마음이 있어서 듣는 것도 맞지만, 노래가 솔직하고 시원해서 답답할 때 듣기도 했다. "Hello and Goodbye 아파도 잠깐이면 괜찮아 오버하지 마 나 없이 살아갈 수 있잖아" 너 없으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구구절절 늘어놓을 필요 없이 딱 잘라 말하는 게 편안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세상과 사람 모두 잘 살아가고, 잘 굴러가는 모습을 자주 접해서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까짓 거는 처음 들었을 때, '그동안 너무 시원하게 나와서 탄산의 양을 줄인 건가?' 싶었다. "너답지 않게 왜 그래 난 이거면 됐어 쿨하게 끝내 이제서야 알았어 너와 같이 있으면 나만 손해"라고 하면서도 "그까짓 거 그만 끝내자 그까짓 거 붙잡지 말자매일 다짐해 봐도 속고 속아도 다시 또 너를 찾는다"라고 하는 걸 보면 그까짓 거라고 치부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답답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면서도 마음이 말을 듣지 않는 그 심정을 솔직하게 잘 풀어냈다는 거에서 시원함이 느껴졌다. 탄산이 묵직한 게 맥주 같았다.


Day by day는 듣자마자 입덕하게 된 노래였다. 초반에 인수오빠가 독무를 하는데 그게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 뒤에 이어지는 준규오빠의 목소리도 더 멋있게 느껴졌고, 턴까지 하니까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칠 마음으로 손을 들고 있었다. 건우오빠는 잘 부르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노래랑 잘 어울려서 그런지 더 좋았다. 세용오빠는 그냥 하나부터 열까지 멋있어 보였다. 그 순간 최애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채진오빠는 귀여운 인상의 막내였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귀여움이 노래랑 만나서 서로를 잘 보듬어준 느낌이었다.


그때 학원에서 친해진 친구와 출발 드림팀 시즌 3의 녹화 방청을 갔었다. 누가 나오는지 모르는 상태였고, 친구가 블락비를 좋아해서 같이 보러 간 거였다. 거기에서 세용오빠를 보게 됐다. 근처가 블락비 팬들이 있는 자리였어서 세용오빠가 자주 지나다닌 덕에 나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쉬는 시간에 귤을 나눠주러 팬들에게, 찾아와 준 시민들에게 돌아다니고 있는 세용오빠와 마주쳤다. 자리에서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서 본 오빠는 화면과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보고 뭐로 봐도 잘생겼다는 뜻이다.


받아서 자리로 돌아온 뒤 찍은 귤

귤을 받고 도망치듯 돌아온 기분이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못한 거 같기도 하다. 귤 받고 "감사합니다." 한 마디 하면서 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 어떤 분이 팬들 기다리겠다고 얼른 가보라고 하셔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당황한 것도 있었다. 오빠가 갈 때쯤 자리로 돌아오니 친구는 여전히 팬석에 와서 귤을 나눠주고 있는 블락비 멤버를 보고 있었다.


녹화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귤을 소중히 올려놨다. 먹기가 아까워서 냉동실에 얼려버릴 생각도 했지만 그냥 먹는 게 귤한테 더 좋을 거 같은 상태여서 껍질을 까게 됐다.

 

9일이 지난 뒤의 귤 상태

귤 받은 지 9일 만에 먹어본 귤은 껍질에 수분이 없고 메마른 상태였지만 달고 맛있었다. 신기한 건, 곰팡이나 썩은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는 거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에 신곡이 나왔다! 너무 very 막은 신나고 재밌었다. 골머리를 앓고 흔들릴 정도로 엄청나게 좋아하는 마음이 딱 그때의 상태 같았다. 들뜨고 설레는 기분으로 노래를 들으며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를 가볍게 날릴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딱 말해로 컴백했다. 가장 눈에 띄는 가사가 있었다. "오늘 잠이 오겠습니까 뭐라고 좀 말이나 해봐 답답해서 죽겠습니다 어떡하면 좋을까 엄마"하는 부분이다. 딱 말해!라고 말하기까지 얼마나 참고 참았을까 싶어서 같이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괜히 찔리기도 했다. 가족들이 뭔가를 물어봤을 때, 생각하느라 답이 늦어지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하고 이해하게 됐다.


이 이후로 인수오빠가 군입대를 하고, 네 명의 오빠들이 아이돌 리부트 더유닛에 나오는 걸 봤었다. 투표해 주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투표 수와 인원이 제한되어 있어서 다 눌러주지 못했다. 그래도 꾸준히 눌렀던 사람은 세용오빠였다. 파이널까지 갔지만 유앤비로 데뷔 못한 게 아쉬웠다.


가끔 드라마나 예능에서 오빠들을 보면 반갑기도 하고, 완전체로 활동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체로 활동한 마지막이 2015년이었으니까 완전체의 모습을 못 본 지도 8년을 지나 9년을 향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문득 겉을 감싼 껍질이 메마를 때까지 아깝다고 먹지 않은 채 놔둔 귤이 떠오르게 된 것이다. 해체를 하지 않은 것도 알고 있고, 서로 맞추기 힘들 거라는 것도 알지만 완전체로 활동해 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군대, 개인의 일, 하고 싶은 음악, 방향, 스케줄, 소속사까지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겠지만 의견을 하나로 통일해서 모은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이해한다. 그렇기에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완전체로 돌아오게 된다면 고마웠다는 말 한마디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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