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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덕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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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감 Jul 09. 2023

3화 - 씁쓸한 덕질에 대하여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그러니 이번 세 번째 덕질에 무슨 일이 생겨도 괜찮을 거라고,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 덕질의 주인공은 바로 슈퍼주니어다.


출처 : SM엔터테인먼트, 슈퍼주니어 사진

처음에 이름 들었을 때는 '슈퍼'는 엄마가 맛있는 걸 사주는 곳이고 '주니어'가 사람 이름인 줄 알았기에, 그런 슈퍼에 주니어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로 이해했다. 그도 그럴 게 그때의 내 나이가 일곱 살이었으니까. 자기 딴에는 뭔지도 모르는 말을 아는 선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한 결과물 같다.


그런 슈퍼주니어를 처음 본 건 트윈스의 후속곡인 미라클로 활동할 때였다. 사람은 12명에 어딜 보고, 누굴 봐야 될지 몰라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나름대로 무대 보겠다고 열심히 봤다.


노래는 밝았고 따스했으며 빛이 반짝이는 것 같이 느껴졌다. 마치 공주님을 위한 왕자들처럼 말이다.


유일하게 사람보다 노래를 더 좋아했고, 가사도 모르면서 무작정 따라 부른 노래였다.


사람을 좋아하게 된 건 그다음이었다. 그 당시 새 멤버였던 규현의 합류로 13명이 된 그 시점에 U 뮤직비디오를 본 나는 규현과 려욱을 보고 나서부터 사람을 더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다음에 나온 슈퍼주니어 T의 '로꾸거'가 여덟 살의 취향을 적중했고, 나는 누구보다 신나게 따라 부르면서 사람보다 노래를 조금, 아주 조금 더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두 달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나는 잠시 덕질과 멀어져야 했다. 멤버들 모두가 부상을 입는 큰일이 벌어져 병원으로 이송되던 시간, 티비를 보던 우리 가족이 다급하게 채널을 돌렸고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도 모른 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가족들을 살펴봤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시간이 늦었으니 어서 들어가 자라." 하시면서 나를 방으로 돌려보내는 바람에 알 수가 없었지만 채널을 왜 돌린 건지가 궁금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가족들이 혹시라도 어린 내가 상처받을까 걱정돼서 모르게 하려고 애쓰셨던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여덟 살의 내가 알 수 있었던 건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정도였다. 언뜻 슈퍼주니어의 이름이 지나갔으니 슈퍼주니어와 관련된 일이 분명하다는 것을 눈을 깜빡이며 생각했고, 잠이 들었다.


그 일을 알게 된 건 티비를 통해서였다. 좋아하게 된 멤버가 크게 다쳤고, 멤버들도 다쳤지만 다른 멤버들의 상태가 차차 나아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가족들에 의해 꺼진 티비의 어두운 화면을 멍하니 보는 내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해졌다. 점점 더 가득 차오르는 질문들에 견딜 수 없었던 나머지 잠에 들었다. 그 순간에도 질문이 늘어나고 있었지만 어떤 것에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질문을 적지 않은 건, 악의가 없는 순수함이 누군가에게 힘든 상처를 다시 헤집고 꺼내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될까 걱정돼서다.)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가족들에게 물어보자니 가족들도 대답을 못 해줄 것 같아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혼자 끌어안고 지냈다.


그런 내가 어느 때보다 편안해진 마음으로 울었던 건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소식을 알고 나서였다. 그 소식에 물음표로 가득했던 머리도 가벼워졌다.


돈돈 활동 이후로 덕질을 잠시 쉬어가야 했다. 학교에서 받아쓰기 100점 받은 걸 자랑했던 날, 작은 아빠가 잘했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었다. 그날은 분위기가 이상했다. 할머니도, 작은 아빠도 표정이 좋지 않았고 어딘지 모르게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그게 마지막 모습인지도 모르고 칭찬받았다는 생각에 해맑게 웃으면서 좋아했다. 사실 그때, 친오빠의 생일도 같이 있었던 터라 집에서 오빠랑 오빠 친구랑 셋이 조용히 생일을 같이 보냈다. 장례식이 끝나고 가족들은 모두 침통한 마음과 슬픔을 채 추스르지 못한 채 일을 하러 가야 했고, 할머니는 밥조차 거르시며 떠나간 아들을 향해 눈물을 흘리셨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덕질을 한다는 게 불가능했다. 왠지 모르게 하면 안 된다는 마음이 들어서 될 수 있으면 계속 멀리 했다.


다시 슈퍼주니어를 찾아서 보게 된 건 쏘리쏘리로 활동할 때였다. 미인아로 넘어가기 전까지 나도 점점 자라며 사춘기에 가까워지는 나이가 되었고, 춤을 제법 따라 추면서 노래까지 완벽히 불렀다. 그래도 춤은 율동 같긴 했지만 가사만큼은 다 이해하면서 불렀었다.


학원 다니면서 공부하게 됐을 때는 슈퍼주니어를 자주 볼 수가 없었다. 덕질을 조금씩 줄이던 그때의 슈퍼주니어는 미인아부터 미스터 심플, A-CHA로 활동하던 시기였다. 주말이면 그래도 잊지 않고 음악방송을 꼭 챙겨봤다.


그런 내가 덕질을 그만두게 된 건 위에 적어둔 그 시기였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치이고 공부에 치이다 보니 슈퍼주니어의 신나는 노래를 들어도 더는 신나지가 않았고, 봐도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어떻게 치였기에 좋아하는 덕질을 그만둘 수 있는 거냐는 궁금증이 생길 것 같다. 그 궁금증에 대한 답으로 '교실 안에서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는 외로운 시간이었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아마 다른 회차에서 좀 더 보충하여 언급하게 될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있어 슈퍼주니어를 덕질한 시간은 좋으면서도 아팠던 기억이다. 그 아픔이 쓰기까지 해서 더 씁쓸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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