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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덕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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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감 May 31. 2024

62화 - 과몰입한 덕질투어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배우 덕질로 과몰입한 어느 봄날의 덕질투어.

선재 업고 튀어를 보지 않았더라면, 그 배우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일이다.

당일치기로 이틀에 걸쳐 혼자 또는 같이 돌아다니며 걸은 나의 걸음 수는 총 27000보.

이 일의 시작은 3주 전의 어느 날이었다. 감기로 인해 코와 목이 붓고, 목소리는 쥐어짜야 나오던 때라 약을 먹어야만 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다 낫지 않은 염증에 이러고 있다가는 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바로 다음 날, 무기력에 침대와 하나가 된 나의 몸을 일으켰고, 곧바로 문 밖을 나서게 했다. 문 밖을 나서자, 적당히 더운 날씨에 살짝 서늘한 공기와 바람의 온도가 마음을 들뜨게 했다.

산책을 한다는 말로, 집에서 왕복 4시간 거리에 있는 덕수궁 앞에 도착했다. 덕수궁 길은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며 추천해 준 장소였다. 거리 위를 걸어다니는 수많은 사람들과 교대하기 위해 이동하는 문지기, 도로를 빼곡히 채우는 차량까지 다양한 소리와 풍경에 눈이 이리저리 바삐 움직였다.


덕수궁길을 걷다가 한 컷

덕수궁 길을 걷고는 지도를 확인했다. 보지 않고는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는 길치이기에, 지도를 꼭 봐야만 한다. 왔던 길을 되돌아 온 나는 저 멀리 소월길을 걷기로 마음 먹었다. 아픈 와중에 왕복 2시간의 길을 걷겠다고 생각한 내가 신기했다.

알고 보니 같은 소월길이지만, 배우님이 다녀간 곳과는 다른 길로 간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한참을 오르다가 30분 만에 공원을 보고 걸음을 돌렸다. 힘들어서 숨을 가다듬으며 쉬던 나의 시선은 땅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솔방울들이 눈에 들어왔고, 술에 취해 "솔이다~" 하던 선재와 태성이를 생각하며 바라봤다.


바닥을 수놓은 솔방울들 한 컷

다시 걸음을 옮겨 솔방울들을 지나치자, 멀리서 백범 김구 선생님의 동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김구 선생님의 동상이 있는 걸 보고 여기가 어디인지를 짐작했다. 백범 광장까지 볼 수 있어서 꽤나 즐거웠다.

이 날은 무엇을 먹지 않고도 배가 고프지 않았을 만큼 행복했고, 마신 건 이온음료 하나 뿐이었다.


이렇게 돌아다닌 지 1주일도 되지 않은 날이었다. 수원까지 왕복 6시간의 거리인데, 어떻게 가야 하나 싶다가도 여행 간다는 생각으로 버스를 탔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점심에 도착한 나는 벽화마을로 걸어갔다. 같이 다닐 동행자와 벽화마을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거리를 지나 벽화마을에서 만난 우리는 벽마다 보이는 그림들을 둘러보고 걸음을 옮겼다. 수원에 온 이상, 오늘은 기필코 선재 업고 튀어의 촬영지들을 다 돌고 가겠다는 생각으로 가장 오고 싶었던 곳에 먼저 닿았다.


선재의 파란 대문 집과 솔이의 금비디오 가게 앞에서 한 컷씩

선재의 파란 대문집과 솔이의 집이 마주보고 있는 그 골목이 보이자, 심장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도착한 골목길에는 평소보다 적지만, 꽤나 많은 사람들이 파란 대문집과 솔이의 집 대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수요일은 카페의 문이 열지 않는 날이었고, 파란 대문집과 솔이의 노란우산이 걸려 있는 문앞을 찍은 뒤에서야 걸음을 되돌렸다.


카페 몽테드 앞에 놓인 노란 우산 한 컷

배우님이 추천한 플랫 화이트 맛집 카페에 도착했다. 처음 마셔보는 플랫 화이트의 맛이 싫지 않았다. 원두의 씁쓸한 향과 우유의 부드러운 맛이 어우러지는 게 맛있었다. 커피를 마시면 꼭 두통이 오거나 속이 파도를 치는 탓에 디카페인으로 마셨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조금이나마 좋아하는 맛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동행자 역시도 "배우님이 커피잘알이네! 이 집 플랫화이트가 진짜 너무 맛있다."라며 연신 감탄을 한 걸 보니 나까지 뿌듯했다.


카페인 충전을 한 우리는 다시 카페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봤던 익숙한 길을 찾아냈다. 34번 버스에서 내리지 못한 솔이를 향해 달려가는 선재, "우리 같은 버스를 탔었구나!"라며 선재와 그동안 같은 버스를 탔으면서 왜 못 봤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솔이의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지는 곳이었다.


버스 정류장 표지판이 있던 자리와 배경 한 컷씩

솔이와 선재의 등하교를 배경으로 자주 나오던 정류장 길을 지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1주일 사이에 날이 더 더워졌기 때문이다. 주차장 옆에 놓인 길로 지나온 우리는 동북각루, 방화류수정으로 불리는 곳으로 향했다. 이곳 역시 선재가 달렸고, 솔이가 버스를 탔고, 함께 지나간 길이었기에 보면 볼수록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동북각루에서 길을 보며 한 컷

용연과 화홍문을 지나 우리는 계속 걸어갔다. 3시 쯤 되었을 때, 얘기했다. "우리 더 늦으면 저녁 시간이라 밥을 못 먹게 되니까, 근처에서 밥 간단히 먹고 가자."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고민하던 나는, 동행자의 말에 멋쩍게 웃었다. "이미 오늘 내내 덕질하고 있었잖아. 닭볶음탕 먹자. 나도 이제 뭐든 맛있을 것 같아." 내 덕질로만 채워진 하루에, 밥도 안 먹고 돌아다니게 한 게 미안해져서 고민했던 건데, 그래도 좋은 건 감추지 못했다.

닭볶음탕은 나도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지만, 배우님의 최애 음식이기도 해서 더 먹고 싶었던 거였다. 주변 맛집을 검색하자, 근처에 두 군데가 보였다. 하나는 가격이 부담됐고, 다른 한 곳이 노포에 가격까지 괜찮은 곳이었다. 노포라니, 딱 봐도 단골이 가득한 맛집으로 느껴져서 우리는 곧장 길을 찾아서 떠났다.


동행자와 선재 업고 튀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보니, 닭볶음탕이 나왔다. 양이 많았고, 척 보기에도 맛있게 보였다. 배고팠던 나머지 우리는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일어났다.

2층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선재 업고 튀어 마지막회 단체 관람 티켓팅과 티켓팅으로 일어나게 될 불상사들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다. 선재 업고 튀어로 시작해서 끝나버린 어느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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