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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덕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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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감 Aug 01. 2023

10화 - 덕후의 직감은 정확하다

직감은 어느 곳에서나 꼭 필요한 거라고 생각한다. 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본능이자 경험으로 비롯된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번 일기의 주인공은 씨엔블루(CNBLUE)다.


출처 : Bugs! 씨엔블루

씨엔블루는 정용화, 강민혁, 이정신. 세 명으로 이루어진 밴드다. '근데 왜 사진 속에 셋이 아니라 네 명의 사람이 있는 거지?'라는 궁금증이 들었을 것이다. 탈퇴 전의 씨엔블루는 네 명이었기 때문이다.


출처 : FNC엔터테인먼트, 이정신, 정용화, 강민혁

이번에는 앞에서 써왔던 일기들과는 좀 다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노래 말고, 소제목과 씨엔블루에 대해서 말이다.


데뷔 초의 씨엔블루를 본 나는 보자마자 정용화에게 반하다시피 좋아하게 됐고, 정용화의 목소리와 씨엔블루의 노래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FT아일랜드가 아이돌에서 밴드로 넘어갔다면, 씨엔블루는 아이돌과 밴드의 중간 지점을 오갔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씨엔블루는 데뷔 때부터 꽃미남 밴드라는 타이틀로 인기가 대단했고, 이 이후로 아이돌 밴드가 더 많이 늘어나게 됐다.


분명 노래방에서 노래도 따라 부르고 (어디에 뒀는지 모르겠지만) 용돈 모아서 FIRST STEP 앨범을 살 정도로 씨엔블루를 좋아했고, 팬이라면 보기 힘든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용서 부부'로 불리던 모습까지 좋아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정용화, 강민혁, 이정신의 모습 또한 좋아했다. 정용화와 강민혁이 같이 나왔던 <넌 내게 반했어>, 이정신이 나왔던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 그리고 세 명이 꾸준히 쌓아온 필모그래피까지 다 챙겨볼 정도였다. 


<넌 내게 반했어>를 보다가 생긴 일화가 하나 있다. 드라마에서 정용화가 한 대사의 내용이 예쁜 사람 아니면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말이었는데, 오빠가 나한테 "예쁘다고 생각해? 정용화가 좋아해 줄 것 같아?"라고 했었다. 지금 들었다면 "오빠는 지금 그게 동생한테 할 소리야?" 하고 얼굴에 '나 지금 심기불편하니까 건들지 마세요'를 써놨을 테지만, 13살의 나는 그런 말을 뱉어낼 줄 몰라서 가만히 듣다가 상처받은 채 속으로 꿍얼꿍얼 생각하고 투덜거렸다.


이렇게 얘기하면서도 언급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탈퇴한 그 멤버가 떠올랐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고 본다.


그 한 명에게 끝까지 정을 주지 않은 채 덕질하고 넘어갈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내 직감에 의해서였다. 순전히 외모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거나 취향이 아니었다거나 목소리가 듣기 싫었다는 건 아니었다. 목소리는 오히려 노래와 잘 어울려서 듣기 편했다. 외모도 괜찮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게 싸한 느낌이 들었어서 꺼려하긴 했다. 그게 마음이 편한 적은 없었던 것 같고, 오히려 더 불편하게 느껴진 적이 많았다. (이유 없이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것 같다는 어린 마음에 이런 나 자신이 실망스럽고 싫기도 했다.)


같은 팀의 멤버니까 계속 봐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보고 듣기는 했지만, 내 직감이라 믿는 것 밖에 답이 없었다. 노래 듣다가 울기도 하고 그랬지만, 왜 좋아할 수가 없는지를 몰라서 답답하기도 했다. (확실하고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라 더 그랬었다.)


사랑은 비를 타고 라는 노래에서 정용화도 정용화지만 그 멤버의 목소리에 잠시 흔들린 적이 있다. 흔들림이 멈췄던 건 그 사람의 눈이었다. 엄청난 특훈을 받지 않은 이상 눈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시에서도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비유할 정도였으니까.


그 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짧은 순간에 티비를 통해서 강하게 와닿았다. 좋아하면 나중에 큰일이 생길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 들고 나서부턴 씨엔블루의 노래를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솔로곡이나 정용화의 목소리가 다인 노래만 찾아서 듣고, 불렀다.


그 직감은 몇 년이나 더 지속되었고, 일이 터지기 전보다 앞서서 덕질을 그만두게 되었다. 왜 그만뒀을까 생각해 보면 복잡하다. 싫어해서라고 단순히 하기에는 좋아해 온 시간에 비해 너무 짧고 간단한 게 정 없이 느껴지니까.


덕질을 그만둔 후에도 주변에서 불러달라고 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부르지도, 듣지도 않을 정도로 멀리 했다.


탈덕한 뒤로 얼마가 지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서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어느 날 뉴스에 나온 걸 본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나 자신조차 설명할 수 없던 그 직감이 맞았다는 게 증명이 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좋아했더라면, 분명 많이 후회하고, 싫어하고, 미워하면서 덕질했던 순간들을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 싶어 했을 것 같다.


더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미워할 마음조차 없다고 생각하니 몸에서 힘이 조금씩 빠져나갔다. 싫다, 좋다가 아닌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는 거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증오하는 생각으로 밤잠 설치거나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다.


아마도 내 직감은 내가 행복하려고 시작한 덕질이 나쁜 기억으로 물들지 않기를 바란 것 같다. 그런 덕후의 직감은 이유를 알 수 없었어도 정확했다.


소제목부터 꾸준히 나온 직감은 씨엔블루의 노래이자 내가 샀던 앨범 FIRST STEP의 타이틀곡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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