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 정도 올린 공지글,
흔한 듯 흔하지 않은 걸 보고 생각했다.
'나는 공지사항을 적는 걸 어디에서 배웠을까?'
답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티비 프로그램만 봐도 아래쪽에 길고 반투명한 배경 위로 어떤 프로그램이 결방되었고, 어떤 프로그램이 편성되었다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메시지가 떠있다.
파리 올림픽으로 결방한 프로그램을 봤을 때, 원래 이 시간이면 해야 했을 드라마가 결방되었음을 알려주는 띠 같은 메시지를 봤다. 그 드라마를 기다린 시청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매너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웹툰과 웹소설이다. 나는 주로 카카오페이지의 웹툰과 웹소설을 즐겨 보는 편이다. 웹툰과 웹소설을 보다 보면, 공지글이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연재 지연, 작가님의 휴식, 수술, 연재 중단, 맞춤법이나 장면 오류로 인한 수정본 공지, 시즌 종료와 다음 시즌에 관련된 공지 등 수많은 내용의 공지가 올라온다.
이것 또한 웹툰과 웹소설을 읽기 위해 플랫폼을 방문해 주는 독자들을 위한 매너이자 배려로 받아들여졌고, 작은 소통으로 여겨졌다.
이런 플랫폼이나 방송이 아니더라도 공지는 우리 실생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조금 다른 건 그 공지를 접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다르다는 것뿐이다.
플랫폼과 방송은 티비, 핸드폰만 있으면 어느 나라, 어느 시간에서든지 제한없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지만 일상에서는 그 사람의 수와 범위가 좁아진다.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한 당일이었고, A가 B에게 카톡으로 말했다.
"B야, 나 오늘 배가 너무 아파서 못 나갈 것 같아. 오늘 아침에 병원 갔다 왔는데, 장염이래."
이런 말도 B를 위한 공지가 되는 것이다. A가 말하지 않았다면, B는 약속 장소에서 계속 기다리다가 A에게 전화를 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공지사항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매너, 배려인 것 같다.
공지사항은 별 게 아니다.
그저 나에게 일이 생겼다고 알리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말해주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하나의 진심이다.
이런 공지사항은 어디에서든 누구나 쓸 수 있고, 할 수 있다.
그게 내가 쓰는 공지의 의미이자 쓰게 된 계기이다.
처음에는 쓰지 않고 지나간 적도 있었지만, 문득 깨달았다. '쓰지 않으면 쓰지 않는구나.' 하고 가볍게 넘어갈 수 있겠지만, 매주 주말에 음악방송을 기다리던 나처럼 누군가는 진심으로 좋아하면서 기다릴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공지도 일상에서, 덕질로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