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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카테리나 Jul 29. 2023

4화:귀부인을 닮은 노토

바로크의 수도

시칠리아에서 여행하는 동안 버스를 타기도 하지만 기차가 있으면 기차 이용을 우선으로 했다. 'trenit'이라는 app을 휴대전화기에 깔아 자주 이용했다. 기차 시간표와 목적지가 잘 나오기 때문에 일정을 짜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연착이나 특정한 날 운행 여부까지도 알아볼 수 있다. 물론 숙소를 구시가지 오르티지아에 잡으면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까지 1km 이상을 걸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긴 하지만 그것을 감내해도 좋을 만한 곳이 오르티지아다.      

노토는 시칠리아에서 바로크양식의 3 총사로 꼽히는 세 도시 중 하나이다. 누구는 황금빛 도시라 하고 누구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소도시라고도 했다. 시라쿠사에 머무르는 동안 하루 짬을 내어 다녀오기 딱 좋은 도시였다. 

노토로 가는 기차는 시라쿠사 중앙역에서 10시 30분에 첫차가 있다. 중앙역은 신시가지에 있고 숙소에서 역까지 가려면 1.4km 정도 걸어가야 한다. 숙소를 구시가지인 오르티지아에 잡았기 때문이다. 버스가 있다고는 하나 버스 기다리는 시간과 타고 가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걷는 게 빠를 수도 있다. 캐리어 없이 간단한 슬링 백 하나만 메고 가니 부담도 없었다. 천천히 구경하며 걸어갈 셈으로 9시쯤 숙소에서 나섰다. 4월이라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다.     

시라쿠사에서 30~40분 정도의 거리로 아주 가까운 편이다.

역에서 내려 언덕길을 15분쯤(1.1km) 올라가면 아치형의 문(Porta Reale o Ferdinandea)이 나오고 곧바로 중심가인 Vittorio Emanuele 거리로 이어진다. 노토는 아주 작은 도시이다. 돌아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지만 걷다 보면 매력에 빠지게 된다.     

노토는 1693년 대지진으로 시칠리아 동쪽의 도시와 마을들이 초토화된 후 당대의 유명 건축가들에 의해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된 도시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도시가 북쪽의 약간 높은 지역과 남쪽의 평탄한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심이 되는 대성당을 포함한 메인 스트리트는 남쪽에 위치한다.     

사실 노토는 중심거리인 비토리오 에마뉘엘 거리에 성당이나 시청 등 주요 건물들이 많아 그 거리만 구경해도 충분하지만 숨겨진 보석이 몇 군데 있다. 그중 미리 검색해서 위치를 알아둔 곳이 있다. 비토리오 에마뉘엘 거리에서 한 블록 북쪽, 즉 대성당 북쪽에 scalinata Fratelli Bandiera라는 긴 계단이 있다. 계단의 챌판(계단 수직면)에 그려진 멋진 그림을 보여주고 싶었다. 친구들을 데리고 자신 있게 갔는데 빈 계단뿐이었다. 

아니 이런! 

있어야 하는데...      

긴 계단에 그려진? (아마도 하나의 큰 그림을  잘라서 계단 수직면마다 붙인 듯) 그림이 있어야 하는데. 혹시나 잘못 왔나 싶어 구글 지도와 사진을 다시 확인해 봤지만 틀림없는 이 장소였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멋진 사진이 나올 수 있는 장소였는데 못내 아쉬웠다. 사실 난 작년에 여기에 왔었다. 그리고 매력에 빠져 이번에 친구들을 데리고 두 번째로 방문했다. 작년 6월에 왔을 때 봤던 풍경이 매우 예뻐서 포토존이라고 친구들을 데려갔던 것인데 갑자기 거짓말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왜 그림이 없을까를 생각해 봤다. 그림이 있는 멋진 긴 계단은 5월의 꽃축제 무렵에 장식을 했던 것이 1년 동안 이어진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멋진 장식을 보려면 5월 꽃축제 이후에 가야 할 것 같다. 또 한 가지 팁은 시청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면 계단의 그림이 더 멋지게 보인다. 

아쉽다. 4월에 갔더니 그림 계단을 보지 못했다.     

다음엔 전망이 좋은 Montevergine 교회에 올라갔다. 교회 내부 관람은 무료지만 종탑에 올라가려면 2.5유로를 내고 티켓을 끊어야 한다. 종탑이 높진 않지만 자체가 높은 지대에 있어 노토 구시가지가 잘 보인다. 전망이 아주 좋다. 게다가 종탑이 반원형으로 오목해서 어느 쪽 풍경이든 잘 보인다. 왼쪽으로는 위엄 있고 장엄한 대성당이 보인다.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잘 나오는 포토존이다. 여기서 인생 최고 장면을 건질 수도 있다.

종탑 올라와서 아름다운 전망을 보고 인생 최고 장면을 건지는 것만으로도 노토에 온건 성공이라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꾸준히 올라왔다. 공간이 좁아서 오래도록 머물 수는 없었다. 풍경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고 내려와 점심 먹을 식당을 찾아 나섰다.     

교회에서 한 블록 내려와 비토리오 에마뉘엘 거리의 Cassaro Bistrot에 들어갔다.

정어리 회향(펜넬), 잣, 건포도를 곁들인 스파게티, 감자, 퀴렐과 야채 볶음을 곁들인 소고기 등심, 마요네즈 소스를 곁들인 문어를 주문했는데 세 가지 음식이 다 맛있다. 혹시 나의 지인이 노토에 간다고 하면 추천해 주고 싶은 맛집이다. 구글 지도에 저장해 두었다. 후식으로 그라니따 맛집이라는 caffe classica에 가서 아몬드와 커피 그라니따( 슬러시와 유사)를 주문해서 먹어본 결과 내 입맛에는 아몬드 그라니따가 좋았다.

몇 군데 들르지 않았는데도 시간은 훌쩍 흘렀다.      

돌아오는 길에 대성당에 들렀다. 대성당은 노토의 중심가에 있고 높은 계단 위에 지어진 성당이라 위엄이 있다. 햇빛을 받은 노란색 건물은 화려하게 차려입은 귀부인의 모습 같다. 그러나 과하지 않다. 성당 내부는 1996년 붕괴 이후 재건한 것이라 예스러움은 느껴지지 않지만 단아하다. 간단히 둘러보고 나왔다. 외관은 노란색 석회암으로 지어진 바로크양식 건축물인지라 외관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      

긴 계단 한 군데 앉아 해바라기 하며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여행자의 낭만인 것 같다.

 한두 시간에 볼 수 있을 만큼 작은 도시이긴 하지만 시간이 있다면 하루쯤 시간 내서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시청 내부 관람+시청 테라스+nicolisi 성당 통합권을 5유로에 끊어 시청 테라스에서 시내를 둘러보는 것도 추천한다. 골목을 천천히 둘러보며 산책하고 기념품 가게 구경도 하고 예쁜 카페에 앉아 젤라토나 그라니따를 먹으며 즐기는 것도 좋은 것 같다. 

혹시라도 다음에 다시 온다면 5월 꽃축제 때 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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