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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사의 시 Aug 21. 2020

내 글의 시작

'책'이라는 종류의 욕구불만

어렸을 적 나의 집에는 책장도 책도 없었다. 그 흔한 역사 전집도, 위인전도, 동화책도 없었다. 그래서 책과는 친하지 않았다. 아니, 친해지지 못했다.


어린 시절의 내가 이모 집에 놀러 갔을 때 사촌 동생들을 위한 책장과 책들이 부러웠던 것도 분명 사실이다. 그 기억이 오래도록 이어져서 나는 '책'이라는 종류의 것에 대한 욕구불만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고, 돈을 벌게 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그러니까 20대 후반 즈음이 되어서야 나는 책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내 능력껏 책을 사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장도 마련했다.

내 기억 속에서 가장 처음 접했던 책은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이라는 시집이었다. 중학교 1학년 즈음인가 학교에서 시 한 편을 외워오라는 숙제를 주었고, 그것을 위해 엄마가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다 준 유일한 책. 지금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그 책은 손 때가 참 많이도 묻어 내 책장 속의 책들 중에서 가장 낡아버렸다. 덕분에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은 잊어버리기도 어렵게 되었다.


나의 첫 책이 시집이어서 일까? 나는 '시'라는 글이 참 좋았다. 단어 하나하나의 뜻이 그저 단순하지 않았으며, 문장의 의미를 한 줄 한 줄 해석해야 하는, 그래서 짧아도 강한 여운을 남기는, '시'가 참으로 멋있다. 그리하여 나도 써보고 싶어 졌다. 내 나름의 '시'를. 내가 가진 마음을 하나의 단어로, 한 줄의 문장으로 남겨보고 싶었다. 나의 글은 그렇게 하여 쓰이기 시작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글을 쓰면서 말로 하지 못했던 나의 솔직한 감정들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솔직한 마음이 표현되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나에게 있어 글을 쓴다는 행위는 온전한 나를 나 스스로에게 보여주는 정체성의 거울이 되어 있다.


애초에 성질이 모가 난 사람인지라 어디서도 솔직하지 못했으며, 누구에게든 눈치라는 것을 보았고, 스스로에게 참으로 모질었던 나는 글을 쓰고,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를 고쳐나갔다.


어떠한 자질도, 기술도 없는 그냥 낙서 같은 일기들을 시작으로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자신이 쓴 글을 자신이 읽는 행위는 처음에는 참으로 민망하기만 했다. 지금도 그러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사실은 나의 글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솔직한 감정들이 나열된 글을 읽으면서 나는 나를 반성한다. 나의 잘못이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고,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려보기도 하고, 내가 왜 아프고 힘든지도 고민해 본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그리하여 1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글은 나에게 위안과 치유로 남았다.

시로 시작된 나의 글이 이제는 에세이가 되어 쓰인다. 지금 나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의 종류들도 에세이들이다. 시도 여전히 좋아하고. 내가 가장 읽지 않는 책의 종류는 자기 계발서와 소설. 읽지 않는 이유를 굳이 말해 보자면 자기 계발서의 경우는 그대로 따라 할 자신이 없어서이고, 소설의 경우는 나를 일깨워주는 경우가 드물어서 정도.
사실 나는 책에 대한 편력이 조금 있다. 하지만 나는 이 편력을 고칠 생각은 없다. 편력을 고쳐보겠다고 책을 읽다가는 책에 싫증이 날 것도 같아서 굳이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내 집 책장에는 에세이들이 유독 많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참 신기한 점들이 보인다. 작가들의 삶이 참으로 비슷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더 신기한 점은 비슷한 삶을 살았음에도 느끼고 깨닫는 바는 또 달라서 조금씩은 다른 삶들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내가 에세이를 편애하는 확실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삶에 대한 생생함이 있고, 글쓴이의 깨달음을 내가 배울 수 있으며, 그로 인하여 내가 성숙할 수 있어서.

 
그럼에도 많은 에세이들을 읽다 보면 내용들이 비슷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에세이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진리들이 주된 이야기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떠한 상황에 대해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들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으며 작가도 사람이기에 그렇게 쓰이는 글들의 주된 감정선은 비슷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에세이는 분명 매력적이다. 누구나 알고는 있으나 쉽게 행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진리를 일깨워 줌으로 인하여 내 삶이 새롭게 환기가 되기도 하니까.

어쩌면 나는 지금 활자중독에 걸려있는지도 모르겠다. 글자만 보면 읽어야 하고, 여백만 보이면 글을 써야 하는.
자기 위안에 자기만족을 위하여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그래서 책에 대한 욕구불만도 여전하고.


그 욕구불만의 표출을 위해 나에게 '내 집'이 생기면 집의 한쪽 벽면 전체에 책장을 놓고 그 책장을 빼곡하게 채워보고 싶은 바람이 있다. 그리고 그 책장에 꽂힌 책들 속에 나의 이름이 박힌 책도 한 권 정도는 있었으면 하는 꿈도 가지고 있다. 그걸 이루기 위하여 쉬지 않고 글을 쓸 생각이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루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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