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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사의 시 Aug 21. 2020

길어진 휴일(With. 게으름)

2019년11월20일

올해 들어서 쉬는 날이 참 많이도 늘었다. 이러저러한 회사의 상황 때문이라고 짧게 이유를 밝힌다. 짧게는 2일, 길게는 5일. 연속으로 그렇게 길게 쉬다보면 참 할게 없다는 현실에 부닥친다. 하루나 이틀은 밀린 잠을 잔다거나, 근처 카페로 책 한 권 들고 나간다거나, 하면 되는데 그 이상 쉬게 되면 참 난감해 진다. 무엇을 해야할지 도무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기는 제주도이니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지난주도, 이번주도 3일씩 쉬고 있다. 책을 읽고, 운동을 가고, 약간의 드라이브를 하고. 쉽게 어딘가를 갈 수도 없는 것이 돈이 많이 드는 인생을 살고 있다보니 어딜 가든, 무얼 하든 돈이 들기 때문이라는 거다. 이제는 날도 점점 추워지고 있으니 나의 생활반경은 더 좁아지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심심한 시간을 글을 쓰며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도 잠은 오지 않는다. 실컷 시끄럽게 혼자서 떠들어대는 TV의 전원을 끄고, 그 이후의 정적이 싫어 음악을 틀고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런 저런 잡다한 것들을.




'미련이 없다'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을 하얗게 불태울 만큼의 노력을 했다는 말,
누군가에게는, 이제 더는 그것을 붙잡고 있지 않겠다는 말,
누군가에게는, 중도 포기를 합리화하는 말,
누군가에게는, 쿨 해 보이고 싶어 내 뱉는 말,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말,
누군가에게는, 홀가분하게 새로이 시작할 수 있음을 알리는 말,
누군가에게는, 그동안 너에게 참 고마웠다는 말.

<마음의 결 written by 태희>




나에게 미련이 없다는 말은 이 모든 의미들의 총합. 그래, 난 미련이 없다. 나의 삶에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러다보니 내 마음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나의 삶에, 또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이기적이지만 합리적인 선택이다. 항상 나와 붙어 다니던 자괴감, 부채감, 부담감 따위에서 벗어나 참으로 평온한 상태를 유지한다. 그리하여 마음에 여유를 가진다. 그래서 나의 기나긴 휴일은 몸과 마음의 평온으로 지난하게 늘어진다. 무엇에도 급할것이 없다.

그래, 급할것은 없다. 나를 조급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스스로 그렇게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렇다고하여 방관 혹은 방치는 아님을 확실히 말한다. 그저 나의 성질이 조급함을 싫어하는 것일 뿐이다. 천성이 게으른 것일 뿐이다. 다른 사람의 다섯걸음이 그저 나의 한걸음일 뿐이다. 나의 길을 나의 속도로 묵묵하게 걸어가는 것 뿐이다.




신나게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뚫고 굳이 시계의 초침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이 세상에서 시간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그 어디에도 없는 듯하다.




밋밋하고, 심심하고, 지루하고, 지난한 나의 휴일이 지나간다. 내일은 또 무얼해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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