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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사의 시 May 14. 2022

단골 카페와 아이와 나

떠나기 전에 할 일이 생겼습니다.


단골 카페의 사장님 딸아이가 참 많이도 컸다.  태어나기도 전부터니까 벌써 몇 년 전인 건지-


갓 태어난 갓난쟁이 때부터 유모차를 타고 걷고 말을 하고 뛰고 어린이집을 가기까지의 시간 동안 참도 귀엽게도 컸다. 나름 단골이라고 자부하는 난데, 내가 가면 항상 손을 흔들어주면서도 말을 한마디 하지 않는다. 나 혼자 그녀에게 친한 척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래도 오늘은 말 한마디 없이도 나와 제법 놀아주고 있다. 열심히 책을 읽으려고 들른 카페에서 아이와 노느라 책은 접어버렸다.


생글생글 웃고 방글방글 뛰고 뾰로통한 표정으로 나와 놀아주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떠나기 싫다는 생각마저 올라온다. 그냥 이렇게 여기서 지내는 게 좋다는 생각마저 든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아이가 너무 예뻐서 이곳이 다시 좋아진다.


7년, 8년의 흔적을 조금씩 정리 중이다. 언젠가는 이곳을 떠날 거라고 했던 나의 다짐이 결국에는 이루어지는 거지만 오늘 같은 마음이면 그 다짐도 글쎄- 의미가 없어진다.


나와 한참을 장난치다 지친 그 아이는 카페 밖에서 혼자 고독(?)을 씹고 있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아이가 벌써부터 혼자인 거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건 아닐까 걱정이 되지만 아이 나름의 고민과 걱정도 있는 거니까 아이는 지금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혼자이지만 여전히 해맑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에게서 나를 본다. 그렇게 나도 여기서 혼자 잘 보냈다. 혼자서 열심히 마음을 열고 관계를 만들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참 잘 보냈다. 혼자서 고독도 많이 씹고 여유도 많이 부렸다.


덩그러니 혼자 앉아서 바람을 맞고 있는 저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클까? 이제는 커가는 모습을 볼 수가 없으니 궁금해진다. 아마도 봄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보고 앉아 고독을 씹고 있는 저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나겠다.


내가 살았던 이곳도 오랫동안 기억나겠지. 그래서 기억이 겹치는 순간이 오면 나는 이곳을 한 번 들러보겠지. 그때 만나게 될 아이가 여전히도 생글생글 방글방글하기를 바라는 건 내 욕심일지도- 그냥 무사 무탈하게 평온하게 지금처럼 잘 커 있기를 바란다. 엄마와 아빠의 사랑 듬뿍 받으면서 말이다.


근데 나 지금 아이의 이름도 모른다. 오늘 아이 이름 알아내기에 도전해 봐야겠다. 떠나기 전에 이름은 아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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