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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사의 시 Feb 23. 2024

결항, 그 후-

'한때의 영광'의 모습들

제주도로 오는 여정이 3일이 걸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결항. 

나는 알지 못하는 생경함에 먼저 무엇을 해야 하나 어영부영거리다 제주도로 오기까지 3일이 걸려버렸다.


어렵게 힘들게 도착한 이곳은 비와 바람이 나의 계획을 망쳤고 나는 숙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책을 읽고, 

'글'이라는 것을 대충 끄적이다,

축구 혹은 드라마를 보다가,

근처 식당에서 배를 채우고, 

아는 카페에 가서 또 책을 읽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내가 보았던 공항과 내가 타고 왔던 비행기에는 제주도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의 숙소는 정적으로 조용하기만 하다. 그래서 좋다.


빗소리, 바람소리가 다 들려온다. 그리고 숙소에서 틀어주는 잔잔한 음악까지. 책을 읽어도 한 줄은 더 읽어야 만 할 것 같고, 글을 써도 한 페이지는 더 써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한량 짓거리도 이런 한량 짓거리가 없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게 좋아서 뭐, 불편한 생각들은 접어두기로 한다.




육지로 올라가기 전까지 근무했던 갤러리를 찾아갔다. 이제 그곳은 제주도에서의 나의 필수 코스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가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 갤러리 상황이 자꾸만 나빠지고 있단다. 오랜만에 찾은 제주도는 '한때의 영광'같은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지만 갤러리만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데 갤러리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당장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 되어버린 듯싶어서 마음이 좋지 않다. 


작년까지만 해도 유지되고 있던 가게들이 지금은 간판을 내렸고, 또 많은 곳들이 업종을 변경하면서 사라져 있었다. 많은 것들이 너무나 빠르게 변해버리는 지금을 살면서 나는 변하지 않는 것도 있음을 제주도에서 확인하고 싶었지만, 너무나 빠른 트렌드의 흐름을 가장 빨리 쫓아가는 곳이 어쩌면 이곳 제주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산업이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제주도이다 보니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는 관광객들의 요구(Needs)들을 파악해야 하고 그 요구들에 맞추어야 하는데, 휴양지로서의 제주도는 그래서 천편일률적으로 변해간다. 사진 찍기에 예쁜 카페, 사진 찍기에 예쁜 식당, 사진 찍기에 예쁜 숙소. 사진 찍기에 예쁜 장소. 단기적으로는 관광객들의 눈길과 발길을 끌지만, 오랫동안 유지시키기에는 어려운 가게들은 그렇게 '한때의 영광'으로 사라진다. 그럼에도 제주도는 천편일률의 변화를 거듭하면서 유지가 될 것이다. 


어떤 의미와 어떠한 가치들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라는 현실만이 그저 아쉬울 뿐인 거다. 


내가 좋아하는 나의 갤러리만이라도 의미와 가치를 지닌 체 조금은 더 오랫동안 버텨주기만을 바라본다.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 변하지 않고 우두커니 유지되는 어떤 의미와 어떠한 가치도 분명 존재함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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