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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사의 시 Feb 09. 2024

확실하게 헤어지자

분주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쓰는 글


밤 10시. 전화가 울린다. 얼마전 퇴사한 회사의 상사 전화였다. 울먹이고, 훌쩍이고, 목소리가 좋지 않은 걸 보아하니 무슨 일이 생겼다. 얼굴을 보자고 나를 부르기에 한달음에 달려가 본다. 목소리를 듣고 짐작했던 것 보다는 사람이 멀쩡하다. 다만, 술을 많이 못 마시는 사람이 맥주를 7병이나 마셨다고 하니 사무실에 무슨 일인가 생긴게 분명하다.


나는 2024년 1월 31일부로 1년3개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무려 내 나이 41살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말이다. 간혹 나를 붙잡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미련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국가 혹은 지방 보조금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는 사회단체의 유지 및 관리를 하는 직장에 다녔다. 굳이 직장명을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냥 직전의 직업을 한줄로 요약을 하자면 직원은 딸랑 2명 뿐이고 모셔야하는 '회장'만 40여명인 회사의 신입사원이자 막내였다.


두 번의 이력서 지원과 두 번의 면접을 통해 입사하게 된 회사였고, 그래서 크게 내키지 않는 회사였으나, 상사의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되고, 주업무는 컴퓨터 서류업무(회계)라는 말에 어렵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고 입사를 했다. 휴식기라는 핑계로 5개월을 놀면서 부모님의 눈치가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나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한건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순간부터 였다.


출근 첫날인 2022년 10월 25일. 상사분 혼자이던 사무실에 내가 입사를 해서 직원이 2명이 되고 보니 어색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모셔야하는 회장님만 40여명에 관리해야하는 회사 통장만 60여개, 나에게는 낯선 회계업무를 보아야 한다고 하니 뒤통수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입사 후 일주일만에 나의 상사는 회사일에 스트레스를 심각하게 받아 더이상은 못하겠다고 그만둬야겠다 말하고 퇴근을 해 버렸고, 그 순간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것도 몰랐다. 물론 나의 상사도 말만 그렇게 했을 뿐 진짜 퇴사를 하진 못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업무는 2022년 연말과 2023년 연초를 지나면서 쉴 틈이 없었다. 2022년도 1년치 서류를 정리하고, 2023년도 회의를 준비하는데 퇴근도 없이 밤을 지세우고, 주말도 없이 출근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정신도 없이 일을 한지 3개월만에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두라고 말씀을 하셨다. 내가 생각해도 나의 사회생활에서 이렇게나 빡쎈 회사는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버텼다. 아버지의 퇴사 권유에도 책임감 없이 너무나 이르게 포기를 하는 기분이 들어서 견뎌 보겠다고 생각했다.


2023년 연초가 지나가고 바쁜 행사들이 지나가고, 조금 여유로워지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고소, 고발을 하겠다는 말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사업비를 지원받아 진행되는 사업에서 이해관계로 얽힌 업체가 나의 업무처리를 가지고 고소, 고발을 하겠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내가 한거라고는 상사의 지시하에 많은 '회장'들에게 사업관련 공지를 몇 줄 올렸을 뿐이었으나 공지글은 내가 작성을 한 것이었으니 나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었다. 결과만 이야기 하자면 고소, 고발은 걸리지 않았고, 얼마간의 시간은 걸렸어도 더이상의 잡음 없이 업체와도 이야기를 마무리 하게 되었지만 고소, 고발의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부터 확실히 깨달았다. 이곳은 무서운 곳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를 믿었다. 큰 잡음은 있었으나 어떻게든 업무는 처리가 되었으니까. 물론 고소, 고발 이야기에 이번엔 엄마가 노발대발해서 진정 시키느라 애먹었지만.


그러고 나니까 이번엔 '회장'들 수발이 시작되었다. 회장들을 모시고 참석해야 하는 행사 일정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럴때 마다 매번 행사 참석을 준비한다고 짐을 바리 바리 쌌다 풀기를 반복했다. 사무실에 앉아서 서류만 보면 된다던 말은 말 그대로 말일 뿐이었고, 한 달에도 몇 번씩 대형버스에 나의 몸이 실려있어야만 했다. 회장들을 수발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회장 한 명 한 명 상대해가며 참석확인을 받아야 하고,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했으며, 버스안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보낸 날은 돌아오면 녹초였다.


그런 생활들의 반복, 그리고 회장들의 요구와 상처되는 말들의 스트레스. 그럼에도 1년의 계약기간있으니 버티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버티지 못하였다. 다른 이들을 위해 쓰이는 나의 노력과 나의 최선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업무를 힘들게 치뤄냈어도 사람들은 만족을 하지 못하였고, 뱉은 말에 책임을 지지않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불신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그저 누군가를 괴롭게 만들 목적으로 쉴새 없이 상처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적나라함을 맨몸으로 상대하면서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나를 매일 발견하게 되는것이 너무 싫었다.


말로 죄를 짓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말로써 참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쌓여버린 스트레스를 그렇게 거칠게 풀고 있었다. 그런다고 풀리지도 않을 스트레스 였지만......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면서 그래도 많이 단단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나는 그렇게 단단한 사람은 아니다. 나의 상사나 나 둘 중 그들을 상대하기에 적합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나의 상사는 정말 마음이 다인 그런 사람이었고, 나 역시 그들을 상대하기에는 유약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사무실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렇게 2023년 연말이 되었고 나는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2023년 12월 31일부로 퇴사를 결정했다고.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나를 붙잡아야만 했고, "상사 혼자 업무를 처리하기에 일이 너무 많고 불가능하니 바쁜 일 끝날때 까지만 도와 달라고, 상사가 불쌍하지 않냐고 -" 나의 상사까지 팔아가며 나를 붙잡기에 2024년 1월 안에 바쁜 업무들을 모두 마무리할거라 약속을 받고 2024년 1월까지 근무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퇴사를 하기 직전까지도 사무실은 정신없이 바빴으며 마무리하겠다고 약속했던 업무들은 제대로 진행도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더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내가 살아야했기 때문이다. 나의 상사에게 제일 미안한 마음이었다. 어찌됐든 나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였으니까. 그리고 혼자 남겨두었으니까.


그런 상사의 부름에 시간이 늦었다는 핑계를 갖다대기가 미안했다. 그래서 그녀를 만나러 갔던 것이다.


보자마자 눈물 바람, 콧물 바람. 내가 상사의 앞날을 책임을 져주지 못한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그동안은 그저 참고만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화가나서 그냥 퇴사하라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진심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지만 나의 상사는 조만간 그럴 생각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어딜가나, 무얼하나 사회생활은 다 그렇다고. 글쎄, 과연 그럴까?

 

몇 번의 퇴사를 경험하면서 나는 이 말도 옳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험상 이렇게 꽉 막혀서 바늘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무엇보다 관계의 가장 기본인 대화, 소통이 되지 않는 회사는 처음이었다. 계속 매듭만 지어지고 묶인 매듭이 풀리지는 않는 그런 회사는 진정 처음이었다. 그리고 일부러 상처를 주고, 상처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적나라함이 너무 꼴보기 싫었다.


지금은 2024년도이다. 어딜가나 무얼하나 사회생활이 다 이렇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구시대적 발상이다. 내가 늘여놓은 일련의 상황들은 변화시켜야 하는 구시대적 관습들이다. 문제는 나는 그걸 알면서도 그들을 변화시키지 못했고, 그럴 의지도 없었다는 거. 그리고 그들은 변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오늘 만난 나의 상사는 내가 퇴사 이후의 벌어진 일련의 일들 이야기 해 주었다. 퇴사 이전과 그다지 달라진 것들은 없다. 오히려 나의 퇴사가 하나의 이슈거리로 추가 되어 그들 사이에서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다시 불러들이려 한다고. 괜한 노력하지 말라고 이야기 했다. 나는 나를 망가지게 두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다.


우리 서로 여기까지만 하자. 이참에 확실하게 헤어지자.




PS. 퇴사이후 몇 일간 자유롭게 생활하면서 그동안의 거칠던 말과 행동들을 다스리고, 다독이고 있었는데 또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말았다. 상사와 이야기 하면서 또 한바탕 성질을 부리고 말았다. 이래 저래 사람 참,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밝혀두는데 이 글에 등장하는 소위 '회장'들 모두가 그렇다는 걸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항상 일부, 그 중 일부가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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