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코스미안공모전 출품 당선작(2019.09)
10년 혹은 20년전의 과거가 현재 삶의 발목을 잡는다.
최근 유명 연예인들의 학교폭력과 관련된 기사들을 접하면서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관계설정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서로의 사회적 위치는 굳이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상처를 받은 피해자가 있으니 어딘가에는 상처를 준 가해자도 있는 것이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든 상관없이 피해자는 잊어버릴수가 없고, 시간이 많이 흘렀기에 가해자는 잊어버린 체 살아간다.
그러고 보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상관관계는 상당히 일방적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가 어떻게 일방적이기만 할까 싶지만 지금까지의 사실들만 보면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너무나 잘 살아가고 있고, 그에 반해 피해자들은 많이도 아프고, 힘들고, 괴롭다하니 일방적이지 않다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피해자들의 호소를 시작으로 가해자가 드러나고 사실이 밝혀지며 비난여론이 형성되는 일련의 동일한 과정들. 결국 피해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내어놓지 않는 한 피해자만 존재할 뿐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린다. 가해자들이 먼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수순은 어디에도 없다. 이것은 또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결국에는 드러나버린 진실앞에서 시간을 핑계삼아 변명을 하고, 장난 혹은 오해라고 발뺌한다 한들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이 사라지지 않는 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선은 명백하게 그어진다. 그렇게 가해자가 된 사람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탄을 받게 되고, 그리하여 자신의 과거가 자신의 현재와 미래의 발목을 잡는 참담함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억울함, 자괴감, 자기연민 등과 같은 감정들로 피폐해지는 피해자들의 삶은 겪어보지 않더라도 누구나 일정부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공감이 피해자에게는 위로와 응원으로, 가해자에게 지탄으로 표출되어지는 것이다. 가해자는 이러한 지탄에 대해서 겸허히 받아들이고 자기반성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보여주기식의 사과가 아니라 시간을 들여 조용히, 자신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여다 보아야 한다. 피해자에게 사과는 반드시 해야하겠지만 그 이전에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스스로가 정확하게 알아야만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이 생략된 사과라면 언제든 똑같은 잘못을 반복할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평생 가해자의 삶을 살 수 밖에는 없다.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관계설정은 비단 유명 연예인들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사건들이 크게 부각되는 것일 뿐, 평범하게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보통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들일 것이다. 나부터도 그런면에서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가해자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가해자이기 보다는 피해자이길 원하고, 그러다보면 피해의식이라는게 생겨나서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스스로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듯 하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내가 가해자인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은 본인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그 판단은 피해자의 몫이라는 점이다.
"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라면, 상처를 받은 피해자가 되어버린 누군가의 삶에서 나는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죄인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렇게 나를 죄인으로 가둬버린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시선 속에서 나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결단코 행복해 질 수도 없을 것이다.
삶의 한 순간, 한 순간들이 우리에게 중요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어쩌면 '타인의 기억' 이라는 감옥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함이 아닐까?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떳떳하게 자유롭기를 원한다면, 그렇다면 지금 이순간 적어도 가해자의 삶은 살지 말아야하지 않을까? "
여기까지. 나의 이 글은 여기까지 쓰여지려 했다. 그런데 개인의 삶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히 구분되어지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친구의 말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경험칙상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받은적도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살다 보면 어느 누구든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친구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니다. 사람은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하나 더, 나도 누군가에게는 가해자일 수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가해와 피해의 크기를 저울질 해 가며 마음의 죄를 상쇄시키고 싶은 생각도 없다. 분명 그럴 수 있는 일도 아니거니와.
그렇다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하게 구분되어지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차이는 무엇인걸까?
학교폭력과 같이 가해자가 명확한 경우는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물리적인 힘을 쓰기도 하기 때문에 법적인 처벌을 받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는 보통 도의적인 부채감을 느끼게 되는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어느쪽이든 가해자라는 위치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직접 혹은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명확한 가해자이든 그렇지 않은 가해자이든 상관없이 적어도 가해자의 삶을 살아가지 않도록, 결국에는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학교폭력 사건의 위험성이 오랜전부터 등장하였지만 또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면 학교폭력이라는 사회 문제에 대해서 대한민국이 오답만 써 내려가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학교폭력 사건들로 사회는 간혹 한번씩 자정의 목소리들을 내지만, '청소년'이라는 시기에 '학교'라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자정의 목소리를 내어야 할 사람들은 이미 학생의 위치를 벗어난 어른들 보다도 현재 '학교'라는 곳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학생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은 어리다는 이유로,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본인들이 추체인 학교폭력 문제에서 그들을 배제시킨다면 아마도...... 학교폭력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또 학교폭력 사건이 사회 이슈가 되었다. 몇년전에 학교폭력과 관련해서 썼던 글을 공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