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옥상을 찾아 올라가는 이유를 알아
지치지 않을 수 없어서 지쳐버렸지만 그렇다고 무너져 내린 것은 아니어서 나는 또다시 살아가기를 선택할 거야. 그러니 나의 순간순간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않기를 바라. 나는 그냥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이야.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서도 아니고, 걱정을 바라서도 아니야. 그냥, 지금 나는 이렇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뿐이야. 사실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일 뿐인데 그 이야기를 그저 글로 옮겨 놓은 것일 뿐이야. 누군가의 걱정 속에 내가 존재한다고 하면 그것에 대해 보통 감사하다고 말은 하지만 그 속내는 민폐와 잉여로 남겨진 스스로에 대한 슬픔으로 여기게 돼. 이래 저래 더욱더 못난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지. 그러니까 내 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야. 나는 또다시 살아가기를 선택할 거야. 나약하지도, 우울하지도, 슬프지도 않은 감정들로 잘 살아갈 거라고 말을 하는 거야.
사람들이 옥상을 찾아 올라가는 이유를 나는 알 것 같아.
나의 마음이 너의 걱정이 된 이유는 모두 이 한 문장 때문이었지. 나에게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문장이었는데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랍지 않은 세상을 살다 보니 이제는 모든 일들이 '별 일'이 되어버려서, 그저 한 줄의 글귀에도 사람들은 놀라워하더라. 이미 오래전 몸소 터득하고 익숙해져서 현실이 답답할 때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어 뱉어지는 문장이라 나에게는 그다지 무겁지 않은 글귀임에도 너의 걱정을 통해 누군가에게는 오해의 소지를 남길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 '옥상'이라는 장소가 주는 이미지 혹은 뉘앙스가 너무 부정적으로 왜곡이 되어 있다는 것도 참 슬픈 현실이고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사람들이 높은 곳을 찾아 올라가는 이유가 아래를 보기 위해서만은 아니야. 그저 멀리 보고, 하늘을 보기 위해서인 경우가 더 많아. 적어도 나에게는 그래. 멀리 보고, 높이 보고, 숨 한 번 크게 내어 쉬고, 또다시 기대와 희망을 품어보기 위해서지. 생각해 봤는데 사람들이 괜히 오해하지 못하도록 한 줄의 글귀를 덧 붙여 볼까 해.
하늘도 별도 달도 빛도, 그리고 세상 모든 긍정도 그곳에 있더라고.
그러니까 내 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