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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망 Sep 28. 2023

일부러 10분 떨어진 체육관에 다닙니다

목적과 목적 사이에 있는 과정의 시간을 즐깁니다


내가 없어도 괜찮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

일을 그만둔 뒤, 매일 같은 일상의 반복이다. 알람도 없이 아침에 자동으로 눈이 떠질 때 눈을 떠서 몇 시인지 핸드폰을 켜 시간을 확인해본다. 나를 부르는 곳도, 가야하는 곳도 없으니 허리를 일으켜 몸을 바로 세울 이유가 없다. 핸드폰을 보면서 지난 날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확인해본다. 딱히 내가 제 몫을 하고 있지 않아도 세상은 문제 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지난 날,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며 세상은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있었을 때 만나는 친구들에게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다. 결국 그룹을 이탈하는 사람은 잘되는 사람이 아니라, 못되는 사람이라고. 그러니 우리는 열심히 살아서 무리를 이탈하는 사람 없이 끝까지 함께 하자고.


어쨌든 내가 그 이탈자가 될 거라곤 꿈에도 몰랐던 나로써는 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스스로 동굴에 갇혀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전 세계적인 재앙을 가져다 준 코로나19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동굴에 숨을 수 있는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주었다는 점은 지금 생각해도 참 애석한 상황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말과, 코로나19라는 핑계를 번갈아 사용하며 나의 5평 남짓한 방에서 창 밖으로 해가 뜨고 지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말도 안해주고 사라지는 하루를 원망한 것이 수십번.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기로 했다


시간이 지난 후 과거를 되짚어보면 사람이 변했던 지점은 의외로 한 순간이다. 너무 누워 있어서 아픈 허리를 붙잡았던 순간이었던가, 핸드폰 만보기에 찍힌 하루 걸음 수가 30보가 채 되지 않았던 숫자를 봤던 순간이었던가. 아, 지금 생각해보니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 펑펑 울고 일어난 다음날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쨌든 한 달만에 내가 다시 움직여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기력과 좌절감에 뒤덮여 있던 내가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당장 할 수 있었던 행동은 바로, 이런 나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다시 시작한 헌혈과, 스스로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운동뿐이었다.


서울 시민으로 살아가며 느낀 장점 중 하나는 슬리퍼를 질질 끌고 스타벅스에 갈 수 있고, 집 근처에서 햄버거 브랜드를 골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인프라가 주변에 많다는 뜻인데, 헬스장도 예외는 아니다. 후드티를 눌러쓰고 집에서 나오자마자 눈에 보이는 곳에 경쟁하듯 화려한 색들로 할인율을 강조하며 펄럭거리는 현수막을 달고 있는 헬스장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나는 일부러 10분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체육관을 선택했다.


일부러 10분 떨어진 체육관에 다니기로 했다


가는데 10분, 오는데 10분. 횡단보도를 건너기도 해야 해서 신호가 걸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꼬박 30분이라는 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했지만, 나는 내가 향하는 목적과 목적 사이에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그 과정의 시간이 좋았다.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쓰고 걸어야 했고, 운동이 힘들었던 날에는 집까지 다시 걸어오기가 버겁기도 했지만 매일 즐겁게 걸음을 옮길 수 있었던 이유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지난 일을 기억하고 , 앞으로 있을 일을 상상하는 과정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일주일 3회, 평균 20분씩 투자하며 기억하고 상상했던 이야기들을 가능한 바로바로 일기장에 적었다. 모두가 결과에 집착하여 경쟁하듯 속도를 낼 때, 오히려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느라 경쟁 없이 여유를 가지고 과정의 시간을 즐긴 덕분이다. 어느덧 운동을 시작했던 처음 마음가짐을 확인하려면 지난 일기장을 뒤져봐야할 정도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미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기에 현재의 결과가 나를 증명하고 있지만, 지난 시간을 투자하여 기록해두었던 과거의 흔적들을 돌아보니 그제야 내가 걸어왔던 길이 보였다.


그러니까 결국 이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체육관에 가서 뒹굴고 구르며 1시간씩 땀을 흘렸던 순간보다 10분씩 걸어서 체육관과 집을 왔다 갔다 했던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나는 굳이 10분을 걸어서 체육관으로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여태껏 그래 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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