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망 Sep 27. 2023

프롤로그

한 달은 지나치게 짧았고, 일 년은 지독하게 길었다

한 달, 고작 한 달이었다. 최소 3년은 다니면서 경력을 쌓겠다고 끈질기게 엄마를 설득하여 상경한 내가 일을 그만두게 된 시간 말이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정말, 정말로 짧았다. 내린 결정을 얼마든지 번복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문제는 일단 시작하면, 일을 빠르게 처리해 버리는 나의 성향이었다. 이미 짧은 한 달 사이에 서울에 집을 월세로 2년을 계약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서울에 올라왔음을 떵떵거리며 알려버린 것이다. 그렇게까지 일을 저질렀다면 이를 악물고 버텼으면 될 일을 한 달 만에 그만두게 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서울에 올라오게 된 것은 선배의 동업 제안 때문이었다. 사실 말이 동업이지, 나는 돈을 투자하지도 않았으며 경력 없는 신입에 불과하였기에 직원 1에 불과했다. 다만 이 회사가 안에서는 대표님이라고 부르고 밖에서는 형이라고 부르라던 선배와 나, 둘 뿐인 회사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제 막 회사를 차린 대표님은 이것저것 처음 자리를 잡는 것이 너무 바빴고, 나는 그 내려오는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신입 새삥 직원이었다.


내가 시간 안에 일을 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야근하고 밤을 새우는 것쯤은 괜찮았다. 처음에는 당연히 힘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을 실수해서 혼이 나거나 욕을 먹는 것쯤은 괜찮았다. 내가 실수하면 결국 대표님이 일을 다시 해야 했기 때문에 나였어도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도저히 참지 못했던 것은 함께 5평 남짓한 좁은 사무실에서 하루 10시간 이상을 같이 있으면서 나에게 수시로 던지는 농담을 가장한 비난의 말이었다.


그중에서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아 나를 수시로 찌르는 말은 어느 날 대표님이 출근하자마자 나를 보고 툭 던진 말이다. "나는 일이 힘들고 작업이 어려운 건 다 괜찮은데, 너같이 재미없는 애랑 한 공간에 있는 게 너무 힘들다." 제 딴에는 농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머리를 긁적거리며 습관처럼 내뱉은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상황이 무마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대표님 앞에서 억지웃음도 짓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서야 진짜 내 마음이 부서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른이니까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서진 마음을 매일 다시 뭉치고 모아 연명하던 도중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어느 날 대표님이 나를 부르더니 이런 말을 했다. "에휴 니 5년 뒤 모습이 눈에 뻔히 보인다. 한심하지 않냐, 진짜." 나는 지금도 그 사람이 문장을 뱉어내며 나를 내려보던 표정과 말투까지 전부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표라는 사람의 눈을 정확하게 노려봤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의 짧은 직장 생활이 끝났다. 분명히 한 달은 짧은 시간이었다. 더 이상 회사에 나가지만 않는다면 금방 잊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정도로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그 이후로 내가 온전히 나로서 다시 일어나기까지 무려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물론 1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스스로를 사랑하면서 다시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1년은 참 지독하게도 긴 시간이었다.


2021년은 나에게 참 아픈 시간이었다. 그때의 나는 누구보다 재미없는 사람이었으며 매일 실수하는 사람이었고, 5년 후의 모습이 정해져 있는 패배자였다. 모든 문장은 나를 잘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제멋대로 뱉어낸 것이었지만, 그 사실을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려워 모든 사람과 연락을 끊고 홀로 침잠되었다.


다행히 생존 본능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너무 우울해지자 내가 첫 번째로 결정한 행동은 술을 끊는 것이었다. 알콜의 힘을 빌려 숨지 않고, 현실에서 고통받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나는 힘들어도 맨정신으로 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하루가 얼른 끝나기를 기다리던 암흑과도 같던 시간이었지만, 그 덕분에 조금 더 일찍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나를 밖으로 꺼내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이 있다. 특히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던 친구 J는 이상할 정도로 나를 자주 불러내어 카페든 음식점이든 데리고 다녔다. 내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된 후에 J에게 당시 나를 왜 그렇게 자주 불러냈었냐고 물어봤다. J는 나를 보며 조금 슬픈 표정으로 대답했다. "니 죽을까봐"


이렇게 나는 갚아야 할 것들이 많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살면서 의도하지 않게 끝도 없이 깊은 구덩이에 빠진 사람이 어떻게 구덩이를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에 대한 솔직한 기록이자 경험담이다. 이야기의 시작이 어둡다고 해서 긴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에는 힘들었던 시간을 견뎌낸 내가 두 다리로 온전하게 서서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으니.


지금 나는 굉장히 행복하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그 이유이자 증거다. 혹여 2021년에 나와 연락이 끊긴 지인들에게는 이 글을 빌려 사과하고 싶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를 챙길 여유도 없었기에 누군가에게 다정할 수 없었다는 것을 변명으로 남겨본다.


서른을 코 앞에 두고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급격하게 무너졌다가 일 년이라는 긴 시간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재기한 경험을 솔직하게 담아낸 글이 누구에게나 언제든 갑작스레 다가올 수 있는 불운을 담담하게 마주하고 또 이겨낼 수 있는 힌트를 제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