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생각보다 비싸면 어떡하지
체육관을 다니겠다고 다짐한 날, 곧바로 체육관으로 향했다. 다짐했을 때 바로 실행하지 않으면 결국 고민만 하다가 일주일이 가버리고, 한 달이 지나고 결국에는 아예 처음 목표와 두근거림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일상에 묻혀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오랜 실패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에 있는 체육관에 들어가기 위해 계단 앞에 서자, 운동하는 사람들의 기합인지 비명인지(?) 모를 활기찬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체육관에 들어가기 위한 유리문. 저 얇은 문만 통과하면 어쨌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인데 그 한 발짝을 내딛기가 늘 어렵다. 이번에도 역시 문 앞에 서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코치님이 무서우면 어떡하지? 비용이 생각보다 비싸면 어떡하지? 시간이 안 맞으면 어떡하지? 등등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문제들을 가지고 발을 동동 구르며 고민한다. 대부분 결심한 행위의 목적에 맞지 않는 걱정은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 즉, 그냥 핑계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나는 내 한 몸을 스스로 구하기 위해 문 앞에 섰는데, 돈과 시간을 걱정하며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겁이 나서 핑계를 대고 있는 거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괜히 머쓱해져서 유리문을 밀고 체육관에 들어갔다. 유리문은 생각보다 쉽게 열렸다.
음... 주 3회로 할게요
걱정하는 일들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는다. 코치님은 굉장히 강인해 보였지만, 웃는 얼굴로 운동 스케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고, 가격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저렴했다. 운동 시간도 내가 알아서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서 걱정했던 모든 것들이 아무 문제 없었다. 그러나 막상 실제 상황에 부딪혀 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이 발생하게 된다.
내가 다니려고 하는 체육관은 헬스장처럼 혼자 운동을 시작하고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닌 코치님들과 개별로 수업하고 거기에 더해 체력 훈련을 하는 구조라서 주 3회를 다닐지, 5회를 다닐지 선택해야 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 나의 열정은 언제나 내 능력을 능가하기에 계획대로라면 당연히 매일 운동을 할 예정이었다. 더군다나 주 3회의 가격이 1이라면 주 5회 가격은 1.2 정도로 가성비도 상당히 좋은 상황. 당연히 주 5회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었지만,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이유는 내 뒤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비명과도 같은 기합 소리 때문이었다.
잠시 자리에 서서 고민하고 있자 코치님은 아무래도 초보자분들은 운동에 적응하기 전까지 주 3회를 추천한다고 말씀하셨다. 어쨌든 내가 돈을 더 내는 것이 체육관 입장에서는 이득일 텐데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믿음이 갔다. 문득, 대학 시절 한 달만 헬스장을 다녀보려다 가성비라는 함정에 빠져 육개월을 등록하고 세 번 방문한 후 환불도 받지 못하고 포기했던 사건이 떠올랐다. 때로는 온갖 좋은 말로 열정에 부채질하는 것보다 냉정하지만 현실적인 조언이 더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지금 내 앞에 계신 코치님의 성난 팔뚝을 본다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게 될 테지만 말이다.
아, 잠깐만 이거 좀 이상한데
우선 주 3회로 3개월을 등록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라는 조상님들의 격언처럼 등록하자마자 바로 첫 번째 수업에 들어갔다. 운동복으로 환복을 하고 고무바닥이 깔린 체육관에 들어서니 먼저 운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땀방울을 머금어 바깥보다 몇 도나 높은 온도로 인해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나도 곧 저렇게 열심히 운동할 수 있겠지? 어쨌든 옆에 있는 사람들이 뛰고 있으면 눈치를 보며 따라 뛸 수밖에 없다.
간단하게 몸을 풀고 본격적으로 운동에 들어갔다. 우선 내 몸의 현재 상태를 알기 위한 체력 측정을 위해 코치님을 따라 한 동작씩 어설프게 따라 하기 시작했다. 잠깐만... 이거 좀 이상한데?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는 있는데 너무 힘들다. 호들갑 떠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웬만하면 힘들어도 묵묵히 견디려고 하는 편인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하다. 원래 체력 측정을 이렇게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다리가 풀릴 때까지 하는 건가? 체력은 한계에 다다랐는데,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힘든 건 둘째 치고 어지러워서 서 있을 수가 없다. 체면이고 뭐고 주저앉아 호흡도 제대로 못 하고 있자 코치님께서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고 하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날 했던 운동은 평소의 절반도 안 되는 기초 운동이었다) 맡은 일은 책임감 있게 끝내고자 하는 성격이라 이를 악물고 끝까지 할 법도 한데, 오늘은 예외다. 책임감도 일단 내가 살아야 지킬 수 있는 법이다. 이건 안된다. 진짜 몸이 이상하다. 대답도 못 할 정도로 탈진해서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코치님은 내 옆을 떠났지만,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다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겨우 벽을 잡고 일어나 탈의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온몸에 땀이 범벅이 되어 옷을 벗기조차 힘들었다. 그로부터 약 20분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와서 코치님과 다음 수업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다음날 일어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라 이틀 후로 수업을 잡고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계단을 올라 지상으로 나왔다. 환한 빛을 보며 조금 안심한 나는 난간을 잡고 헛구역질하면서 운동을 등록하기 전 대화를 나눴던 코치님의 정직함에 대해 생각했다. 운동 초보자에게 주 5회가 아니라 주 3회를 추천하는 이유는 여지를 줌으로써 하루 만에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고. 어쨌든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의식이 조금씩 돌아오자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실이 기억나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 나 집까지 10분 더 걸어가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