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고정관념에 사로 잡힌 챗GPT

<메리는 입고 싶은 옷을 입어요>

by 검피


5,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토론 수업을 진행하게 됐다. 초등학교는 40분이 한 시간이라 2차시가 배정되었지만 2개의 주제를 가지고 총 4팀이 각각 토론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실제 토론대회에서도 40분 안에 하나의 주제를 다룰 수 없다. 이 어려운 일을 토론전문 강사로 채용되어 이뤄내야했다. 입론서, 반론서, 질문 등은 담임 선생님과 미리 준비하고 토론 수업 당일에는 실제 토론대회처럼 예행연습하듯이 하기로 했지만 능숙한 토론자들도 40분은 힘든데 어찌해야하나 고민되었다. 고민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어서 당일 상황따라 대처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 수업 토론 주제는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진 행동은 효일까?’와 ‘초등학생 이성교제 찬반’이다. 각 주제와 관련한 PPT를 만들기 위해 파워포인트를 켰다. 심청이 관련 이미지는 포털 사이트에 많았다. 문제는 초등학생 이성교제 이미지였다. 우리나라 포털 사이트에 검색했을 때 나온 이미지는 주로 유아를 대상으로 한 사진이거나 이미지 보다 글이 많았다. 원하는 이미지를 얻을 수 없어 망막할 때 챗GPT가 떠올랐다. 인공지능 AI를 이용해 이미지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챗GPT는 명령어를 구체적으로 주어야 한다는 데 어떻게 할까? 이성교제라는 추상적 상황 말고 구체적 상황인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 하는 모습을 명령어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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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에 남녀 학생이 앉아 있는 거까지는 잘 만들었는데 만족스럽지 않다. 이 그림에서 이상한 점을 못 느끼겠는가? 좌측상단에 이미지가 깨져서 모자이크 나온 거 말고 이상한 점이 없는가? 이 그림에는 성별 고정관념이 반영되어 있다. 남자 아이는 바지에 운동화를 신었고, 여자 아이는 치마에 구두를 신고 다리를 모으고 있다. 초등학생 교과서의 남녀학생의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성차별 모습은 오래전부터 지적되어왔다. 데이터 기반인 챗GPT이 역시나 이런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충실히 반영한 이미지를 생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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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고정관념을 벗어나게 그려달라고 했는데 아니 구두에서 운동화만 바뀌었네? 운동화는 분홍색이고 말야. 차분히 머리띠까지하고 다리를 모으고 앉은 건 여전하다. 그런데 챗GPT는 이 그림이 남학생 여학생 복장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모습으로 그려진 이미지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명령해야한다는 걸 복기하고 이번엔 직접적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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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치마’ 아니라고!! 그런데 여전히 치마를 입혀 놓고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복장이란다. 챗GPT야, 너 공부 좀 많이 해야겠다. 오늘 내가 공부 좀 시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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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이나 시도 했는데 말귀를 못 알아먹는 챗GPT에게 화가 나서 분노의 타자를 치다 오타가 났다. ‘대부분 여학생들도 바지를 입어’라고 해야는데 ‘치마를 입지’라고 했다. 그런데도 이번엔 알아듣고 바지 입은 머리가 짧은 여학생을 그려줬다. 맨 앞의 그림과 비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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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이 치마를 입었을 때와 바지를 입었을 때 분위기와 앉아 있는 모습이 다르다. 치마에 구두를 입은 여학생은 다리도 오므리고 앉아있고 다소곳하고 조신해 보이는 반면 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짧은 머리 여학생은 다리도 남학생처럼 편하게 했고 활발하고 경쾌해 보인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챗GPT가 맨 처음에 생성한 데이터를 볼 때 사회문화적으로 여학생에게 다소곳하고 얌전한 여성을 요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여성에게 코르셋을 입히고 바지를 못 입게 했던 억압을 벗어나기 위해 지금으로부터 220년 전에 투쟁한 메리 에드워즈 워커가 지하에서 통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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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그렇다고 그렇게 옛날은 아니고요) 여자들은 바지를 입을 수 없었습니다. 무겁고 답답하고 허리를 굽힐 수도 없는 드레스만 입어야했지요. 사람들은 이전에 그랬으니 계속 그래야한다고 생각했지만 메리는 아니었어요. 바지를 입은 메리에게 사람들은 계란을 던지고 욕을 하고 항의했습니다. 메리는 어찌해야할지 고민 했지요. 아빠와 상의했는데 아빠는 메리가 선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람들이 남자옷이라고 하는 바지를 입고 나가면 반대시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고, 코르셋에 치마를 입으면 불편한 상황. 메리는 늦은 밤까지 고민하다 결국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입기로 결심했어요. 바지가 좋은 게 더 많았거든요.

메리가 바지를 입고 등교하는 데 전날처럼 학교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메리의 옷을 반대했습니다. 사람들이 계속 이럴까봐 메리는 겁이 났습니다.

“이건 남자애 옷이 아니에요. 난 내 옷을 입었을 뿐이라고요.”

라고 당당하게 외치고 메리는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시위대에게 큰소리쳤지만 교실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줄 알고 메리는 의기소침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메리처럼 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치마를 입은 아이도 있고 바지를 입은 아이도 있고 각자 입고 싶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실존인물인 메리 에드워즈 워커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든 <메리는 입고 싶은 옷을 입어요>그림책 내용이다. 여성이 바지를 입을 수 없던 시대에 최초로 바지를 입은 메리 에드워즈 워커는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잡혀 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바지를 포기할 수 없었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강요되었던 코르셋을 벗어던진 메리의 용감한 행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녀는 여성에게 금기시된 의사가 되었고 전쟁에도 참여했다. 그런 그녀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편안히 바지를 입고 있을 수 있다.


이 그림책은 앞면지에서 치마는 ‘여자옷, 바지는 ’남자옷‘이라고 시작하지만 뒷면지에는 똑같은 그림에 ’여자옷, 남자옷‘에 X 표를 치면서 끝난다. 챗GPT에게 이 책을 추천해줘야겠다. 앞으로 이미지 생성할 때 성별 고정관념에 따르지 말고 너도 좀 배우라고!!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챗GPT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걸. 챗GPT는 기존 데이터에 반영된 성별고정관념을 기반으로 이미지를 생성했을 뿐이라는 걸. 여성이 바지를 입기 시작한지 200년이 넘었지만 우리 사회는 끈질기게 여성에게 치마를 입히려 한다. 갈비뼈를 기형으로 만드는 코르셋을 벗은 거 같지만 여전히 코르셋이 작동하고 있다. 코르셋을 벗어 던지려는 여성들에게 페미라는 혐오의 언어를 씌우고, 못생긴 애들이 페미라는 여성 혐오가 난무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도 꾸밈 노동을 거부하고 꿋꿋이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입겠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이 있다.


2018년 수능을 본 고3학생들에게 제공된 프로그램에 여학생들에게만 메이크업 강의가 안내된 걸 보고 여학생들이 항의를 했다. 외모 관련 강의는 새내기 메이크업, 새내기 패션스타일링, 건강한 몸매 만들기 등 외모 관련 프로그램이 3개나 되었다.이에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학생들이 곧 강의 취소를 요청하는 편지를 교장에게 보내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관련 내용을 공론화했다. 학교는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학교 관계자는 외모 관련 강의를 모두 취소하고 독서와 진로 관련 활동으로 대체했다.(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811281761760241?utm_source=chatgpt.com)

초등학생 때부터 화장이라는 꾸밈 노동이 시작되어 여성에 대한 코르셋이 이전보다 외려 더 강화되는 것 같지만 한쪽에는 여전히 메리 같은 사람들이 있다. 치마 대신 바지를 입고, 화장 대신 맨얼굴을 선택한 그들은 지금, 여성을 다시 쓰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가 축적되면 챗GPT도 탈코르셋한 이미지를 내놓을 거란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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