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이 쏘아 올린 작은 공
<누가 진짜 엄마야?>

by 검피

정우성이 쏘아 올린 작은 공

<누가 진짜 엄마야?>


24년 11월 24일 밤 9시 24분 남편이 카톡으로 연애기사 링크를 보냈다.

‘정우성, 아빠로서 책임 다 할 것.‘

기사를 읽어보니 정우성이 문단비와 사이에서 생긴 자녀의 아빠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겠단다. 남녀 사이에 아이가 생겼지만 결혼은 하지 않고 자녀에 대한 책임만 지겠단 내용이다.


’정우성 멋지네.‘라고 답했더니

남편이

’정우성이 하면 다 멋지냐!‘

라고 한다.


아니, 내가 정우성이라서 멋지다고 한 게 아닌데 왜 화를 내지? 평소 내가 좋아하던 배우도 아니고 연애하다 애 생겨도 ‘나 몰라라’ 하고 도망가는 놈들도 많은 데 자기 자식에 대해 책임 진다는 거에 긍정한 건데 그게 왜? 남편이 이해가 안 됐다.


며칠 후 남동생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동생 집에 식구들이 모였다. 동생 부인은 아이 픽업 가고 남편은 어서 자고 있었는지 어쩌다 잠시 나랑 남동생만 정우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남녀가 만났다 헤어지고 하는 건 자연스러운 거고 헤어진 사이에서 임신과 출산이 벌어졌을 때 사랑하지도 않고 결혼 의사도 없는 데 아이 ’때문에’ 결혼하는 것만큼 불행한 게 어디 있냐. 그건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위한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가 결혼이란 제도에 너무 목맨다. 정우성이 다양한 가족 형태 중 한 측면을 공개적으로 보여주고 인정하는 모습>이라는 의견에 동생과 나는 대체적으로 동의했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나와 남편, 남동생과 동생 부인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 다시 정우성 이야기가 나왔다. 이때 나와 동생 그리고 동생 부인과 나의 남편으로 의견이 갈라졌다.


‘결혼 안 하는 게 무슨 책임을 지는 거냐?’


남편이 화를 낸 건 이 이유였다. 본인은 정우성이 책임을 지지 않고 얍삽하게 피해 간다고 생각하는 데 내가 무조건 긍정한다고 생각한 거다. 동생 부인은 사랑하지 않아서 결혼 안 하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여자한테 너무 피해가 가니까 이혼을 하더라도 결혼을 했다 이혼을 해야 한단다. 뭐라고? 이건 또 어느 나라 이야기인가. 동생 부인의 말은 여성이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는 게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큰 피해를 받는 지를 보여준다. 비혼 상태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여자에게 가해지는 사회문화적 차별이 크기에 저런 상상이 가능하다. 비혼이든 기혼이든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아이 생성에 기여한 남녀가 각자의 역할을 다 하면 될 텐데 이혼을 하더라도라니. 아이고 두(頭)야.


결혼 제도 안에서만 아이를 낳아야 하고 그럴 경우에만 아이 인권이 보호받을 수 있고 양육자가 떳떳할 수 있는 사회문화 풍토는 인구절벽시대에 맞지 않다. 프랑스는 기혼이든 비혼이든 아이를 낳으면 동일한 혜택을 준다. 차별적 시선도 없다. 출산율이 증가하는 데 한몫한 제도다. 출산율을 위해서 이런 시선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인구절벽이라는 현실 관점에서도 그렇다는 거다.


결혼할 마음이 없는 데 애 때문에 결혼하면 그 가정이 더 불행하다는 나와 남동생 의견에 동생부인이 어느 정도 동의가 됐는지 이번엔 다른 이야기를 했다.


‘애만 불쌍하죠. 아빠 없는 애로 자라는 거잖아요.’


아빠가 왜 없어. 있잖아. 정우성!! 아빠가 없는 게 아니라 아빠랑 함께 생활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걸 텐데 이건 이미 한 부모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는 여러 아이들을 비정상으로 보는 시선을 담은 폭력이고 차별이다. 동생 부인은 이게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말했을 거다. 엄마, 아빠 모두 있는 가정에서 화목하게 자라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해서. 이성애 중심 정상가족 모델을 내면화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지극히 평범한 반응이다. 하지만 이런 가정의 모습을 정상에 놓고 바라보면 앞서 말한 비혼자가 자녀를 출산하는 건 모두 비정상이 돼버린다. 이혼해서 한 부모 가정이 되는 경우,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한 부모 가정이거나 부모 없이 자라는 아이들도 모두 비정상이 된다. 이때 정상과 비정상은 누가 정하는 가? 누가 정하고 누구에게 차별적 시선이 던져지며 누가 피해를 보는 가? 과연 그것이 옳은가? 아이들이 선택하지 않은 비혼 가정, 한 부모 가정인데 그 아이들이 왜 차별적 시선을 견뎌야 하는가. 아이들은 어떤 양육자와 자라든 충분히 사랑받고 화목한 울타리 안에서 자라면 되는 거지 그 울타리가 꼭 엄마, 아빠일 필요는 없다. 엄마, 아빠가 있지만 학대받는 아이들을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말이다.

사유리가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오고, 고등학생들이 엄마, 아빠가 되어 사는 모습이 방송에 나오면서 가족의 다양한 모습이 우리 사회에 조금 받아들여지는 줄 알았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입양 가족 이야기, 한 부모, 조부모 가족 이야기도 나오고 하니(다문화도) 그런 줄 알았다. 정우성이 쏘아 올린 비혼출산 관련한 논쟁을 보며 아직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아니지만 정우성으로 인해 교과서보다 방송 매체보다 다양한 가족의 모습으로 가는 변화의 시계가 크게 앞당겨졌다. 사람들이 비혼 출산에 대해 이야기하고 앞으로 그런 일이 생길 때 정우성을 생각하며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됐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정우성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이전에 미국 드라마 ‘모던 하우스’의 동성애 부부와 같은 모습을 한국에서 보여준 커플이 있다. 김규진 씨와 김세연 씨 부부는 2019년 5월 미국 뉴욕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같은 해 11월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2022년 12월 김규진 씨는 벨기에의 한 난임병원에서 기증받은 정자로 인공수정을 통해 임신에 성공했다. 비혼 상태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하고 육아를 하고 있는 사유리와 같은 케이스다. 다만, 김규진 씨와 김세연 씨는 동성부부인 게 다를 뿐 임신 과정은 같다. 김규진 씨와 김세연 씨 부부는 2023년 8월 30일 새벽 4시 30분에 딸 '라니'를 출산했다. 이들 부부의 이야기는 한겨레 신문에 기사로 나와 있다. 하지만 정우성만큼의 파급력은 없어서 사람들이 잘 모른다.


만약 이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면 남동생 부인과 같은 이성애 중심 정상가족 모델을 내면화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애만 불쌍하지.”


정말 애가 불쌍할까? 이 집이야 말로 아빠가 없어서?


누가 진짜 엄마야.JPG


어느 날 니콜라스가 엘비에게 물었어요.


“두 분 중에 누가 너희 엄마야?”


엘비는 둘 다 엄마라고 합니다. 하지만 니콜라스는 진짜 엄마를 말해달라고 합니다. 배 속에 엘비를 담고 있었던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요. 엘비는 알았다며 스무고개를 시작합니다.

청바지를 입은 사람, 머리카락이 어두운 사람이란 힌트는 둘 다에게 해당되어 소용이 없습니다. 엘비는 엄마가 한 손가락으로 물구나무서기를 할 수 있고 고릴라와 말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변장한 해적이며 용의 발톱을 물구나무 선 채로 스파게티 먹으며 까ᆞ갂아 줄 수 있는 엘비의 엄마. 한참을 듣다 니콜라스는 짜증을 내며 그냥 누가 진짜 엄마인지 알려달라고 합니다. 이에 엘비는

“내가 무섭다고 하면 날 안아 주는 사람. 나를 침대에 눕히고 재워 주는 분, 자기 전에 잘 자라고 뽀뽀해 주는 사람이 진짜 우리 엄마야.”라고 답합니다. 그제야 니콜라스는 두 사람 다 엘비의 엄마임을 알게 됩니다.

동성애 부부가 아이를 키우는 가정을 보여주는 그림책 <누가 진짜 엄마야?>의 내용이다.(동성애 부부가 그림책에 나오다니 그야말로 획기적이다.)

니콜라스는 뱃속에 아이를 품었다 낳는 사람이 엄마라고 생각한다. 이는 표준국어 대사전의 사전적 정의와 일치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엄마’를 검색해 보면 ‘어머니를 격식을 갖추지 않고 부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다시 ‘어머니’를 검색하면 ‘자신을 낳아준 여성을 부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나를 낳지 않으면 엄마가 아닌가? 입양가정도 있고 재혼가정의 경우는 어떻게 되는 거지? 니콜라스도 처음엔 엘비를 낳은 사람이 엄마라고 생각했지만 그림책 끝에 가서 변화를 보였듯이 표준국어대사전의 ‘엄마, 어머니’의 정의를 다시 해야 한다. (아빠, 아버지도 마찬가지)


이 그림책 속 엘비처럼 김규진, 김세연 씨 부부의 딸 라니는 살아가면서 ‘누가 진짜 엄마야?’라는 질문을 수없이 들을 것이다. 그때 라니가 두 엄마와 함께 이 책을 보며 세상엔 다양한 가족이 있음을 확인하며 위로받길 바란다.


린드그렌상을 수상한 백희나 작가는 그림책 속에 정상 가족 모델인 엄마, 아빠, 아이로 구성된 모습을 그리지 않는다. 아빠만 등장하거나 엄마만 등장한다.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기에 한 부모 가정일 수도 있고 단순히 한쪽 부모만 등장한 걸 수도 있다. 백희나 작가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현실의 다양한 가족을 담기 위해서라고 했다. 어린이들이 그림책을 읽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일은 성장의 밑거름이다. 그림책이 엄마, 아빠, 아이 모델로만 그려질 때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없고 소외될 아이들을 배려하는 백희나 작가님. 이렇게 그림책은 언제나 우리 사회가 말하지 않는 것, 거대 담론에 가려져 발화되지 못하는 소수의 이야기를 담아 왔다.


정우성의 아들은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읽고, 라니는 <누가 진짜 엄마야?>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찾으며 자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유연하고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고 만들어갈 것이다. 꼭 이래야만 하는 삶은 없다. 기존의 규범과 틀에 존재를 가두어 놓는 것은 폭력이다. 폭력이 아닌 다양한 삶을 보여주는 그림책의 세계처럼 세상도 변화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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