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어릴 적에 좋은 그림책을 읽어 주려고 그림책 정보를 찾다 알게 된 네이버 카페가 있다. 초6이 된 아이가 더이상 그림책을 즐겨 보지 않지만 내가 읽고 있고, 그 카페에서는 그림책 외에 다양한 어른 책 모임도 있고 해서 여전히 활동중이다. 요즘 다들 인스타하는데 무슨 카페냐며 옛날 사람 인증인다. 그래서 그런가 카페에 새로운 신규 회원은 안 들어오고 이미 애들 다 키운 오래된 멤버들만 남아 있다. 오래된 멤버들끼리 고전읽기, 두꺼운 책 읽기, 글쓰기 등 온갖 방법으로 어른책 관련 모임을 하고 있다. 그림책 카페인데 왜 이러고 있냐고~~~ 그렇지만 요즘엔 워낙 꽃, 책, 그림 등 무용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귀하다ㅂ니 이곳에서 카페 제목과 상관없이 사람들이랑 어른책 가지고 놀고 있다.
그림책 카페에 10개 넘는 어른책 모임 가운데 그림책 카페 간판을 유지하게 하는 그림책 모임이 딱 하나 있다. 한 달에 한 번 카페에 공지되는 프로젝트 주제에 해당하는 그림책을 가지고 만나서 함께 그림책을 읽는 모임 '낭만'모임이다. 코로나 전에 각 지역 별 로 운영되던 낭만 모임이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았다. 이후 흐지부지 됐던 모임인데 경기남부 지역에 사는 내가 그림책은 함께 봐야 맛이지 싶어 다시 부활시켰다. 작년부터 시작해 어느 덧 일년이 되어간다. 모임 멤버도 정착되었고 매 월 셋 째주 월요일로 만나는 시간도 확정되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 달 6월 경기남부 낭만 모임에 갈 때 있었던 일이다. 5월 달에 에이프릴 님(우리는 카페 닉네임으로 서로를 호명한다.)이 요가라고 쓰여진 오렌지색 이쁜 가방을 메고 왔다.
센스가 좋은 에이프릴 님 물건은 모두 탐나지만 그 가방에 눈이 번쩌였다. 내 눈빛을 받아 안은 에이프릴 님이 같은 디자인의 하늘색 스위머 가방이 있다며 구매 사이트 좌표를 알려줬다. 접영이 안되는 수영인이지만 수영인에게 딱인 그 가방은 내게 안성맞춤이었다. 가방을 구입하고 다음 달 모임에 같이 가방 메고 만나자면 약속했다. 그러고 한 달 뒤 낭만 모임 날 아침이다.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하늘색 스위머 가방과 어울리는 의상 착장은 청바지에 흰티로 미리부터 정해놨다. 샤워하고 나와도 긴 머리 때문에 바로 땀이 나서 얼른 선풍기를 켜고 속옷을 입은 뒤 옷장을 열었다. 어떤 흰티를 입을까 고르려고 서랍장을 연 건데 어랏!! 얇은 면으로 된 원피스가 맨 위에 있다. 6년 전인가 7년 전에 산 면 원피스인데 여름이면 집 앞 가게 갈 때도 밥 먹으러 나갈 때도 휘뚜루마뚜루 잘 입는 옷이다. 시원한데 몸에 닿는 촉감도 부드럽고 살에 달라 붙지 않아서 좋다. 그래서 5월 초 베트남 여행 때도 함께 다녀왔다. 생각해 보니 그 이후로 이번 여름에 잊고 있었다. 그러다 서랍장에서 갑자기 눈에 띈 거다.
'어? 그래. 이 옷이 있었지. 오늘은 이걸 입어야지.'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이었다. 머리를 말리고 대충 썬크림과 팩트를 바른 뒤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모임 시간에 간당간당하게 도착할 것 같았다.
지하에 구내 식당이 있는 도서관에서 모임을 해서 모임 후 점심 식사까지 야무지게 하고 모임을 마쳤다. 집으로 가는 길 엘레베이터 앞에서 에이프릴 님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헉… 가방!! 그제야 생각났다. 내가 스위머 가방을 들고 오려 했다는 걸.
핸드폰 손에 들고 핸드폰을 찾는 이야기가 남 이야기가 아닌 지 오래 되었지만 이번 일은 실로 어이가 없었다. 아니 어떻게 의식의 흐름이 이럴 수 있지? 이건 흡사 ADHD 수준인데 말이다. 물 한 잔 마시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눈에 고기가 보여서 삼겹살을 구웠다 뭐 그런 거 아닌가 말이다.
이야기가 여기까지면 그나마 한 번쯤 그럴 수도 있지 싶은데 다음 날 다른 일이 또 있었다.
습도가 높아서 꿉꿉한 날씨에 거실 바닥이 발바닥에 쩍쩍 달라붙는다. 혼자 있는데 에어컨 틀기도 뭣하고 해서 아침부터 도서관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걸어갈 수 있는 곳에 도서관이 있다 해도 차로 갈 판인데 가까운 도서관이 차로 15분 거리라 이것저것 챙겨 지하주차장으로 갔다. 운전석 차문을 열었는데 '엇, 이게 뭐지?' 운전석에 책이 쌓여있다.
이유인즉, 전날 저녁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게 운전석에 있는 거다. 왜 운전석이냐고? 조수석에 있는 책을 주차 후 내려서 돌아가 꺼내기 귀찮아서 한 번에 운전석에서 내리려고 머리를 썼다. 일단 엉덩이를 좀 치우고 책을 운전석으로 옮겼다. 내가 내린 다음 꺼내기 편하게 말이다. 그래 놓고는 그냥 몸만 내린 거다. 몸만 내리고 까맣게 잊고 다음 날 운전석을 열고 알게 된 거다. 두 번 일 안 하려고 머리를 쓰면 뭐하나 뒤돌아 까먹는 걸.
컬투쇼나 여성시대 이런 데 나오는 엄마들의 재미난 에피소드 들이 있다. 냉장고에서 발견된 핸드폰이라든가 치킨너겟을 치킨너구리라고 하는 엄마들 말이다. 그 엄마들 이야기에 깔깔 웃었는데 이젠 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나로 인해 누군가 깔깔 웃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지만 사라진 총기에 씁쓸한 마음이 든다.
세계지도를 외우고 주요 도시의 중심산업까지 외우던 총기까지 바라진 않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사는 건 지양해야겠다. 사는 대로 생각하지 말고, 생각하는 대로 살기 위해 여유를 가져야겠다. 흰티 대신 원피스를 입을 때는 모임 시간에 쫓겼고, 차에서 내릴 땐 한 번에 일을 처리하려는 욕심이 불러온 일이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견과류를 챙겨 먹으며 남아 있는 총기를 붙잡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