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덤보 Apr 14. 2022

계절의 일각

집 앞에 벚꽃이 펴야 비로소 봄

같은 공간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풍경을 달리한다는 건 경이로운 사실이다. 자연의 속도는 더디고 사람은 무디기 때문에 매일의 변화를 시시각각 느끼지는 못하지만 계절이라는 큰 단위를 통해 체감하곤 한다.


가령 만개한 벚꽃을 보고 절로 사진을 찍었던 4월 어느 날이 그랬다. 매미소리가 귀를 어지럽히던 열대야의 밤이 그랬고 낙엽이 사각하게 밟히던 어느 길이 그랬으며, 붕어빵을 사서 걸었던 언 땅의 공기가 그랬다. 우리는 이런 계절의 조각들을 낭만이라고 이름 붙인 게 아닐까.


우리집 베란다 아래는 커다란 벚꽃 나무가 하나 있다. 겨울을 지나 이곳에 벚꽃이 피면 자연스레 '봄이 왔구나'란 생각을 한다. 한 가지 의문은 특별할 일 없는 똑같은 나무인데 다른 곳이 아닌 이곳에 피어야 비로소 봄이 온 것 같다.


5년 전엔 삿포로로 짧게 여행을 갔는데 한국은 아직 선선한 가을이던 반면 그곳은 초겨울 날씨였다. 뒤늦게 부랴부랴 외투와 비니를 껴입고 여행을 하면서도 지금이 겨울이란 생각을 못했다. 얼마 후 한국으로 돌아와 가을바람을 만끽하니 길 잃은 계절감이 제자리를 찾았다고 여겨졌다.


지구라는 푸른  안에서 그보다 작은 동그라미를 맴돌며 사는 나란 인간은 이토록 자기중심적이다.  반경을 벗어나면 도통 인정하려 들질 않으니 말이다. 지구 반대편 봄이 없는 나라에 가서도 우리 동네 나무에 벚꽃이 폈으니 여긴 봄이라고 우길지도 모르겠다. 낭만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꼬장꼬장 소리를 지르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멀리는 안 나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