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벚꽃이 펴야 비로소 봄
같은 공간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풍경을 달리한다는 건 경이로운 사실이다. 자연의 속도는 더디고 사람은 무디기 때문에 매일의 변화를 시시각각 느끼지는 못하지만 계절이라는 큰 단위를 통해 체감하곤 한다.
가령 만개한 벚꽃을 보고 절로 사진을 찍었던 4월 어느 날이 그랬다. 매미소리가 귀를 어지럽히던 열대야의 밤이 그랬고 낙엽이 사각하게 밟히던 어느 길이 그랬으며, 붕어빵을 사서 걸었던 언 땅의 공기가 그랬다. 우리는 이런 계절의 조각들을 낭만이라고 이름 붙인 게 아닐까.
우리집 베란다 아래는 커다란 벚꽃 나무가 하나 있다. 겨울을 지나 이곳에 벚꽃이 피면 자연스레 '봄이 왔구나'란 생각을 한다. 한 가지 의문은 특별할 일 없는 똑같은 나무인데 다른 곳이 아닌 이곳에 피어야 비로소 봄이 온 것 같다.
5년 전엔 삿포로로 짧게 여행을 갔는데 한국은 아직 선선한 가을이던 반면 그곳은 초겨울 날씨였다. 뒤늦게 부랴부랴 외투와 비니를 껴입고 여행을 하면서도 지금이 겨울이란 생각을 못했다. 얼마 후 한국으로 돌아와 가을바람을 만끽하니 길 잃은 계절감이 제자리를 찾았다고 여겨졌다.
지구라는 푸른 점 안에서 그보다 작은 동그라미를 맴돌며 사는 나란 인간은 이토록 자기중심적이다. 내 반경을 벗어나면 도통 인정하려 들질 않으니 말이다. 지구 반대편 봄이 없는 나라에 가서도 우리 동네 나무에 벚꽃이 폈으니 여긴 봄이라고 우길지도 모르겠다. 낭만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꼬장꼬장 소리를 지르면서.